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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0

hherald 2010.11.03 13:58 조회 수 : 3901


공기펌프 속의 새에 대한 실험/ 죠셉 라이트
An Experiment on a Bird in the Air Pump/ Joseph Wright

 그림.jpg

 

실험실 안의 청개구리들

 

과학은 모두 믿어야 하는 것인데 반해 예술은 모두 믿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모두 믿지 않으면 맥 빠지는 게 과학인데 반해, 모두 믿으면 김새는 게 예술이다. 실험과 증명을 통해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과학인데 반해, 혈액형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게 예술이다. 과학이 발전하여 아무리 떼돈을 벌었다 하여도 쓰러져가는 예술의 집 한 채를 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과학의 번쩍이는 첨단 복장은 예술 안에서만큼은 초라한 남루에 불과하다. 과학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예술은 어이없는 청개구리다. 시대의 흐름에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저 혼자 뒤뚱거리는 고문관이다. 예술의 시각으로 바라본 과학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범동화의 하나가 영국화가 죠셉라이트의 ‘공기펌프 속의 새에 대한 실험(1768, 내셔널갤러리)’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그림이다.

 

죠셉라이트(1734~1797)는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라는 과학의 전설을 사실감 넘치게 표현한 화가다. 극도의 명암법(Chiaroscuro)을 이용하여 계몽시대의 캔버스를 장식한 화가다. 더비(Derby)에서 태어나 더비에 묻힌 그는 산업혁명의 치열한 현장이었던 잉글랜드 중부지방에서 생생한 과학 발전의 현장을 스케치해냈다. 그는 젊은 시절 한때 바스(Bath) 지방에서 활동하며 게인스버러 같은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더비로 돌아왔다. 흔히 산업혁명의 화가로 불리는 그의 그림들은 과학의 여러 가지 모습을 빛과 어두움의 조화를 통해 보여 주었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과학의 모습을 과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라이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과학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이다. 음영 넘치는 다양한 반응들의 드라마다.

 

빛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인간군들을 그린 대표적 화가는 바로크 시대의 거인 카라바죠였다. 그래서 이런 그림들을 카라바죠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실험가운을 입은 장발의 과학자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마법사 같은 그의 모습에서 나는 락커(Rocker) 같은 불균형을 느낀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결코 세상답지 못한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그가 관객들 앞에서 증명하려는 실험은 진공관 원리인 듯 하다. 유리펌프 속에 앵무새를 넣고 공기를 서서히 빼냄으로써, 희박해지는 산소 속에서 앵무새가 버틸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체의 체적은 압력에 반비례하며, 진공상태에서는 소리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보일의 발견은 이 그림보다 약 백 년 전인 십칠 세기에 나온 것이다. 결코 싱싱한 최첨단의 실험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산소가 생명체에 절대적이라는 것이 오늘날처럼 불변의 고정관념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그림이 재미있는 것은 낡은 시험을 증명하려는 과학자의 집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과학의 원리가 사람들의 감성마다 서로 다르게 작용하고 있는 흥미로운 모습이다.

 

 

아빠의 설명을 듣는 오른쪽의 어린 두 소녀, 언니는 눈을 가린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차마 죽어가는 앵무새를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의 옷고름을 잡고 있는 동생은 호기심 어린 슬픈 눈동자를 앵무새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한 중년의 사나이는 철학자 같은 심각한 자세로 앉아 인생무상의 상징인 해골(Vanitas)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과학자의 조수인듯한 소년은 밧줄로 새장을 붙들고 있다.  실험의 성공을 바라는 일상적인 표정이다. 이 실험의 가장 진지한 관객들은 왼편에 앉은 부자로 짐작되는 사내와 소년이다. 그들은 공기를 빼내고 있는 과학자의 손과 죽어가는 앵무새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 실험의 가장 특이한 관객은 왼쪽에 서 있는 젊은 연인이다. 그들은 클라이맥스를 향하는 실험의 순간에도 마주 보며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애당초 그들의 관심은 실험 따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이상한 공연이 그들에게는 심야데이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듯 하다. 오른편 창문으로 구름에 가린 보름달이 보인다. 이 실험 공연은 어느 달 밤에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빛과 어두움이 신랄하게 배치된 사실감 넘치는 그림은 분명 인간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자연과학의 원리를 증명하는 실험 장면이다. 앵무새라는 실험용 생물을 통해 모든 인간이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원리를 함께 확인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과학이 인간의 감성에 전이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누구도 과학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미술이라는 예술의 형식이 잡아낸 과학의 표정은 다양하며 자유롭고 분방한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과학의 지배를 받지만 과학이란 예술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술의 시각으로 바라 본 과학은 역시 진지하지만 슬프고, 사랑스럽지만 심각한 것이었다. 과학은 인간의 모든 생활을 지배할 능력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모든 감정을 통제할 권리는 없어 보인다. 예술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려는 우리들의 몸부림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여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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