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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92
어떤 공연/ 브루겐
The Concert/ Hendrick ter Brugghen

 그림.JPG

보이지 않는 미소
인생이 한편의 코메디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은밀하고 엄숙한 우리의 인생은 그 내면의 서글픔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웃음을 유발시키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어서 웃고, 기가 막혀서 웃고, 힘들어서 웃고, 웃기지도 않아서 웃고…… 인생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는 웃음이 존재한다. 그걸 찾아내는 일은 서글픈 숙명을 잊으려는 인간들의 매우 선한 동작이 아닐까. 인생이 한편의 코메디라는 말이 타당하다면, 그림이 한편의 코메디라는 말도 유효할 것이다. 인생이 없다면 그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심각한 동작 자체가 웃음을 유발시키도 하고, 웃기려는 마음이 코딱지만큼도 없는 화가의 붓질이 코딱지 할아범만큼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심각한 화가의 주제가 뜻밖의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코메디 모음집이다. 무슨 사명이라도 지닌 냥 미술관에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을 응시하는 것도 일종의 고난도 코메디에 해당한다. 코메디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일 테니 말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나를 웃겨준 많은 고마운 그림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때로 웃기려는 화가의 의도가 드러나기도 하고 한다. 그런 경우에는 나의 행동수칙상 비교적 크게 웃어도 좋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웃기려는 화가의 의도를, 안경을 쓰거나(근시다.) 벗거나(노안이다.) 찾을 수 없거늘, 한사코 나를 웃겨주는 그림이 있다. 그런 경우는 나의 행동수칙상 소리내지 않고 미소를 머금는 편이다. 숙명적으로 웃기는 놈들인 인간답게 미소를……
브루겐(1588?~1629)의 ‘어떤 공연(1626)’이 그런 대표적 그림이다. 부르겐은 네덜란드 화가로, 이태리의 악명높은 바로크시대의 천재 화가 카리바조의 추종자였던 인물이다. 위트레흐트라는 도시에 많았던 그런 화가들을 ‘카라바지스티(Dutch Caravaggisti)’라고 부른다. 그들은 로마를 방문하여 카라바조를 연구하였는데, 특히 ‘음영의 마술사’였던 카라바지오의 빛을 표현하는 테크닉이나 소재, 주제 등을 열렬히 답습하기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브루겐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많이 그린 것은 그런 영향으로 볼만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뒷모습을 보여주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들을 마주보고 한 소년이 악보를 든 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의 가운데에는 촛불이 타오르며 빛나고 있다. 소년의 뒤에는 램프가 있다. 이 두 개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빛과 어둠의 조화를 묘사하고 있다. 바로 카라바조가 즐겨 그렸던 빛과 어둠의 공간과 유사하다. 인물들의 복장 역시 카라바조 스타일이다. 여인은 집시풍의 옷에 두건을 두르고 있으며, 남자는 서커스 단원 같은 복장에 제법 품격 있어 보이는 모자를 쓰고 있다. 소년은 오른 손을 들고 박자를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장식 없는 벽도 로토에게서 영향 받은 카라바조의 단골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탁자 위 촛불 옆에 포도 송이를 담은 그릇이 놓여져 있다.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으나 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소년은 악보를 보고 있으므로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의 한쪽씩 보이는 눈동자는 대단히 위력적이다. 그들은 음악을 멈추지 못하고 약간 뒤를 돌아보고 있는 어색한 자세다. 
화가가 우리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나는 이 그림의 기발한 포착에 늘 미소로 화답하곤 하였다. 이런 상상이 주효했다. 
한 부부가 있었다. 가난한 부부였다. 절은 시절 음악을 사랑했던 부부는 어느 3류 클럽의 연주자들이었다. 피리와 류트를 연주하며 만난 둘은 사랑을 전 재산으로 결혼하였다. 그러나 생계를 위하여 음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닥치는 대로 맞벌이를 하였다. 남편은 공사판을 전전하였고, 부인은 식당의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부부는 드디어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부부는 자신들의 못 이룬 꿈을 아들이 이루어주기를 열망했다. 어느덧 아이는 자라 학교에 입학하였다. 부부는 아이에게 합창단에 가입하기를 강권했다. 그러나 아이는 박자에 둔감한 절대 박치였다. 오호라, 우울한 부부는 아이에게 지옥훈련을 시킬 것을 합의한다. 월세 단칸방에 살던 가난한 부부는, 어느 날 주인영감이 잠든 것으로 추정되는 밤 1시경, 수십 년 전 자신들이 삼류클럽에서 입고 연주했던 철 지난 무대복을 꺼내 입고 아들과 특훈에 돌입한다. 음악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가능한 벽에 바짝 붙어서 연주하는 그들, 사랑스런 아들은 자신의 취약점인 박자에 치중하며 노래를 부른다. 부부는 자꾸만 뒤를 돌아 본다. 혹여 주인영감이 깨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들의 노래가 무르익을 즈음, 오호통재라, 섬칫한 인기척을 느낀 부부는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무겁게 뒤를 돌아 본다. 그때 부부가 귀를 의심하며 들은 목소리,
“오 밤중에 들으니 더욱 아름다운 노랠세 그려~ ”, 주인영감의 미소 머금은 중얼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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