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나는 런던-84
뿔 술잔이 있는 정물/ 빌렘 칼프
Still Life with the Drinking-Horn of the Saint Sebastian Archers’ Guild, Lobster and Glasses/ Willem Kalf
사물의 꿈
웨일즈 출신의 주정뱅이 시인 딜런토마스(1914~53)는 통찰력의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통찰력을 존경했던 짐머만이라는 창백한 유태계 미국청년은 자신의 예명을 딜런이라고 지은바 있다. 그가 바로 대중가요 노랫말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초유의 천재 음유시인 봅딜런이다. 딜런토마스에게 문학상을 주지 않은 것을 노벨상의 수치라고 말하는 영국인들이 존재한다. 술꾼 딜런토마스가 자주 술을 마셨다는 런던 시내의 펍 ‘밀다발(최근에 이름을 바꾼 것 같다.)’은 코딱지만하지만 아름다운 런던의 선술집이다. 조그만 액자 하나가 덜렁거리며 딜런 토마스의 흔적으로 걸려진 그 곳을 정말 좋아했었다. 딜런토마스의 대표작 ‘내가 쪼개는 이 빵은’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쪼개는 이 빵은 한때 귀리였다……’ 딜런토마스의 엄청난 통찰력은 식탁 위에서 뒹구는 흔하디 흔한 빵 한 조각에서 시작되었다.
사물의 질감과 형태에 집중력을 보이는 정물화는 고대부터 있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장르화된 것은 르네상스부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양미술사에 있어 정물화가 본격적인 장르로 깊이 있게 연구되고 발전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때이다. 종교혁명, 그리고 새롭게 탄생되는 중산층들의 기호가 맞아 떨어지면서 정물화는 화가들의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다.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빵, 과일, 그릇, 장식품 등의 일상적 사물이 소재가 되는 정물화는 화가들의 집중적인 관찰력을 요구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물의 형태나 질감이나 구성만이 정물화의 묘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게 된 것이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정물화들이다. 사물들이 지니는 상징성까지를 연상할 때 정물화는 단순한 베끼기 수준을 넘어설 수 있었다. 예컨대 사과를 보면서 우리는 사과라는 과일이 지니는 선악과라는 인류 역사의 발전과 궤도를 같이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듯이 말이다. 황금시대의 정물화들이 특히 매력적인 것은 바로 그런 알레고리까지 연결되는 인간 상상력의 도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딜런토마스라는 대시인이 식탁에 놓인 빵 한 조각을 바라보며 인류 문명의 대차대조표를 들이 밀었듯이 말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정물화의 대가 빌렘 칼프(1619~93)의 ‘뿔 술잔이 있는 정물(1653)’은 아마도 내셔널 갤러리를 한번이라도 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그림일 것이다. 이 그림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물론 그 생생한 질감의 표현 때문이다. 적당히 반짝이는 싱싱한 랍스터와 뿔로 만든 술잔의 매끄러운 윤기, 그리고 부슬한 카펫의 표면, 어느 것 하나 잊을 만큼 어설픈 게 없는 정물화다. 은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물소뿔로 만든 잔은 현재 암스테르담의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당시 유명 상인조합의 상징이었다.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유한 상인들의 기호품들을 보여주고 있는 듯 귀한 수입품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껍질을 벗긴 이탈리아산 레몬, 동양에서 가져온 카펫, 중국 도자기, 어느 바닷가에서 잡아온 랍스터 등을 어두운 배경 속에 모아 놓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산물들이다. 특별히 당시로서는 귀하고 값비쌌을 엑조틱한 물건들을 그림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배치한 듯 하다. 이 그림에서 내가 집착하며 바라보는 것은 윤기과 그림자의 오묘한 조화다. 마치 한 곡의 교향곡을 연주하듯이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빛과 어둠, 그 사이에서 색채는 깊은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빛이 만들어내는 표면의 광택들 그리고 역시 빛이 만들어주는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는 교향곡. 그것은 사진처럼 정교하지만 결코 사진이 가질 수 없는 오묘한 리듬과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세상 어떤 사물과도 교감해야 할 자랑스러운 이름, 인간의 눈이 만들어내는 침착한 통찰의 시작점, 관찰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지만 빛나는 사물들을 거느리고 산다. 그것들은 인간들이 자연을 모방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창조물들이다. 그것들의 오묘한 조화를 통해 인간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삼백여 년 전 네덜란드의 값진 물건들을 바라보며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값진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화가가 무엇을 왜 그렸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시대와 우리들이 감당해내야 할 시간들이다. 우리의 시간에 맞춰 해석하는 그림은 언제나 시간을 연결해주는 정물처럼 빛날 것이다. 정물화를 사물의 꿈이라고 부르고 싶게 만드는 산뜻한 명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