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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93
세 마리아/ 카라치
The Three Maries/ Annibale Carracci

 

우리에게 오랫동안 머물던 아름다움

세상의 모든 것이 거의 다 그렇듯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에도 두 가지 종류의 느낌이 있다.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사로잡는 뜬금없는 느낌이다. 느닷없이 우리를 사로잡는 아름다움, 파격적이고 공격적이며 날카롭고 충격적인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황홀하고 아찔하다.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머물던 아름다움의 기준에 입각해 우리에게 나타나는 느낌이다. 학습과 경험에 의해 우러나는 아름다움, 안정적이고 단단하며 우아하고 부드러운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즐겁고 흐뭇하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물론 유기적이고 상호보완적이다. 미술 감상에도 이 두 가지 유형의 감정이 공존한다. 어떤 그림은 우리에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충격적이지만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어떤 그림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름다움이라는 세상의 보편타당적 미에 부합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여 준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감정을 극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대조적인 화풍을 보여주었던 화가들의 대표적인 예로, 이태리 바로크의 두 대가 카라바조(1573~1610)와 안니발레 카라치(1560~1609)를 이야기하고 싶다. 두 화가의 대조적인 모습은 매우 다채롭고 흥미롭다. 
카라바조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미를 보여주었다면, 카라치는 안정적이며 단단한 미를 보여주었다. 카라바조가 ‘본 것’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선배 화가들이 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무리한 실험을 하였다면, 카라치는 ‘아는 것’에 대한 믿음을 수행하기 위하여 선배 화가들의 여러 가지 장점을 실험하였다. 카라바조가 빛의 교묘한 행로를 표현하였고, 추하고 더러운 진실을 표현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면, 카라치는 색감의 차분한 변화와, 안정적인 구성을 표현하였다. 카라바조가 대담한 미를 추구하는 자신의 미술처럼 변칙적이고 곡절 많은 거친 생을 살아야 했다면, 카라치는 안정적 미를 추구하는 자신의 미술처럼 순탄하고 규칙적인 생을 살았던 것 같다.
두 화가는 그 대조적인 화풍에도 불구하고 바로크미술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크의 특징인 감정의 깊은 표현, 보다 역동적인 구도 등에서 그들은 르네상스 미술과 구별된다. 그러나 카라바조가 거칠고 화려했다는 자신의 성격을 그림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반면, 우울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 카라치의 모습을 그의 그림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카라바조가 바로크의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 화가로 대단한 평가를 받는 반면, 카라치는 미술사 속의 정거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대가로 머물고 있다.
카라치의 그림으로 런던을 빛내고 있는 대표작은 내셔널 갤러리의 ‘세 마리아(1604)’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 카라치의 필력과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술박람회였던 ‘맨체스터 박람회(1857)’에서 영국인들을 열광케 한 그림의 한 점으로 기억되고 있다. 맨체스터 박람회는 무려 1,6000점의 그림이 전시되었으며, 당시 맨체스터 인구의 네 배에 달하는 백삼십만의 관객이 관람하였다는 전설의 미술전이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모 마리아와 세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이다. 세 마리아란 통상 일곱 귀신 들렸다가 그리스도의 고침을 받고 끝까지 따랐던 여인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한의 엄마였던 마리아 살로메,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의 최후를 함께한 여인들로 알려져 있다.
하얗게 쓰러져 있는 그리스도의 근육들은 마치 미켈란젤로의 필력이 그린 것처럼 우아하게 늘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있는 여인이 성모 마리아인 듯하다. 차가운 청색 옷을 입은 그녀는 거의 실신 상태의 모습인데 마치 코레조의 세심함이 그린 것처럼 생생하다. 붉은 옷을 입고 두 손을 든 채 오열하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일 것 같은데, 그녀의 표정은 마치 라파엘로의 통찰력이 그린 것처럼 깊이를 보여준다. 어둡게 처리된 배경의 왼쪽 위로 드러나는 나무들과 하늘, 마치 티치아노가 그린 것처럼 우울하고 마치 조르조네가 그린 것처럼 음산하다.
카라치가 모든 거장들이 지닌 장점을 모방하려 했다는 비평가들의 평가를 곰브리치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카라치가 그런 계획을 실제로 세웠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어리석고 졸렬한 생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자신에게 존재했던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방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 그림의 조화로운 구도와 장엄한 구성, 그리고 우아한 색감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머물렀던 어떤 절대적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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