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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83
키클롭스를 죽이는 아폴로/ 도메니치노
Apollo killing the Cyclops/ Domenichino

 

난쟁이가 쏘아올린 다양성


런던이 명화의 도시인 것은 영국인들의 안목과 무관하지 않다. 안목은 열정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는 지성의 흔적이다. 런던이 가장 균형 잡힌 명화의 도시인 것은 영국인들의 문화에 대한 열정의 산물이다. 르네상스의 흔적을 발상지인 이탈리아 다음으로 요령 있게 찾아 볼 수 있는 도시가 런던이다. 인상파라는 혁명의 잔해들이 프랑스 다음으로 응집되어 있는 도시가 런던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아름다운 원석들이 네덜란드 다음으로 많이 뒹구는 도시라던지, 미래파의 치기 넘치는 습작들이 이탈리아 다음으로 모여 있는 도시라던지, 표현주의의 초창기 징후들을 독일 다음으로 살펴보기 수월한 도시라던지, 이런 것들은 단지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런던은 서양미술 오백 년의 도읍지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그 오백 년을 가장 단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는 지구상의 도시임은 분명하다. 가장 밸런스 있게 명화들을 보유하고 있다. 런던이 뉴욕을 능가하는 다양성을 지닌 몇 가지 부분중의 하나가 서양미술사가 아닐까 한다. 런던의 다양성은 마니어 문화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산물이며 마니어문화는 깊이 교육이 가져다 준 영국의 강력한 경쟁력의 하나라고 본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프레스코를 볼 수 있다는 놀라움은 런던의 다양성을 경험하는 자들에게 배달된 또 하나의 선물일 것이다. 도메니치노(1581~1641)의 ‘키클롭스를 죽이는 아폴로(1616~18)’는 그 중의 한 점이다. 알도브래디니 추기경의 집을 치장하기 위하여 도메니치노가 제자들과 함께 그린 프레스코였다고 알려져 있다. 프레스코는 일종의 벽화법으로 회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회벽과 함께 마르게 하는 기법이다. 그림을 마치 건물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벽과 하나가 되게 하는 프레스코는 기원전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8세기 프레스코를 완벽하게 떼어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부의 프레스코는 벽에서 떼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도 접착제에 의해 교묘히 떼어져 1840년경 내셔널갤러리로 흘러 왔다.
도메니치노는 볼로냐 출신으로 바로크 시대 로마 최고의 화가 안니발레 카라치(1560~1609)의 명성을 이어간 그의 수제자의 한 명이다. 카라바지오파의 반대편에서 라파엘의 수려한 미를 발전시키려 한 화풍을 보여준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유화의 걸작을 보고 싶다면 내셔널갤러리의 화제작 ‘사도요한’의 감상을 권하고 싶다. 현재의 바로크방에서 단연 돋보이는 그림의 한점이다. (하마터면 미국으로 넘어갈 뻔한 이백억짜리 그림이다. 소장가가 내셔널갤러리에게 2011년 8월까지 빌려준 그림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보다 큰 감동을 주는 것은 현실을 어떤 식으로든 직시하려 했으므로 보다 창의적으로 보이는 카라바지오풍일지도 모르지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카라치풍의 그림들이 지니는 미술사 속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도메니치노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를 화폭에 많이 옮긴바 있는데 이 그림도 신화 속의 이야기다. 
제우스에게 벼락을 선물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아폴로가 자신의 주무기인 활로 죽이고 있는 장면이다. 죽이려는 이유는 복수심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 벼락에 죽은 것에 대한 복수다. 벼락을 줌으로써 원인 제공을 했으니 책임을 지라는 황당한 복수의 모습이다. 이미 하나의 키클로스는 바닥에 쓰려져 있고 하나는 활을 맞기 일보 직전이다. 키클롭스는 삼형제로 알려져 있다. 도메니치노는 두명의 키클로스만을 그리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이미 죽었거나 앞으로 죽을 것이다. 다른 한 명의 생사가 궁금한 사람들은 그림 구석구석을 숨은 그림 찾듯이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혹시 나무 뒤에 숨어서 다가오는 공포를 엿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상력은 화가들이 원했던 바를 이행하는 순순한 복종의 미학에 속한다.) 아폴로는 키클로스를 모두 죽이고 양치기가 되어 속죄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아폴로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폭력적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이 재미있는 것은 그림 안의 또 하나의 그림이라는 매력적 구성 때문이다.(라파엘이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벽에 걸린 신화 그림 앞에 서있는 난쟁이는 이 그림이 그려진 추기경 집의 하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쇠사슬을 찬 채 벌을 서는 중인데, 그의 표정은 마치 자신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애교 섞인 호소의 표정이다. 아니면 이 어이없는 복수극을 바라보며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의 어이없음을 되새기며 모든 것을 용서하라는 애교 섞인 권유의 표정이다. 이 난쟁이에 관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한가지 전해지고 있다. 완성된 그림을 본 난쟁이 하인이 그 수치스러움 때문인지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였다고 한다.
런던의 다양성을 쏘아 올린 난쟁이, 그의 애교 섞인 표정은 아슬아슬하게 벽화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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