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박목사 에세이

친구에게

hherald 2010.07.26 16:12 조회 수 : 10142

친구에게

물론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은 이해가 되지만 자살까지 생각했다니... 그것도 자식 줄줄이 딸린 아빠가...
갑자기 난감하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잠을 설쳤다. 밤 늦게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한 밤중인데도 점점 더 또렷해지는 생각과 근심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한 원인을 말하자면 뜬금없이 걸려온 네 전화 때문이다.

 

민석아!
우리나이가 벌써 50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몇 년만에 듣는 네 목소리와 함께 3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갑자기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된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수원에서 만나 둘이 꼭 해보고 싶었던 그 일을 하고 싶어진다.

생각나지?
몇 조각 되지 않는 KFC(켄터키 후라이드 치킨)를 함께 먹으며, 목구멍에서 닭똥 냄새가 나도록 ‘한 번 원 없이 KFC를 먹어봤으면 좋겠다’던 그 날 말이다. 아쉬운 마음에 너나 나나 오도독뼈까지 다 뜯어먹었던 그 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역시 사람이 꿈꾸는 행복은 과거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원 없이 KFC를 먹는 꿈’이 이제 더 이상 우리들의 행복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로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 지 난감했다. 목사인 내가 그렇게 난감했던 이유는 ‘목사’가 아닌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복잡한 네 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석아!
한밤중에 갑자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메일을 쓴다. 물론 너도 알고 있는 이야기겠지만 지금 그 사람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랜드 샌더스 (Harland David Sanders)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일곱 살부터는 삯바느질을 하던 어머니를 도와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고 초등학교마저 중퇴를 했다. 재혼을 한 어머니가 가정을 떠난, 10살부터 농장에 나가 일을 시작하면서 페인트공, 대장장이, 외판원, 유람선 종업원을 전전하며 고단한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겨우 황혼의 나이에 주유소를 겸한 괜찮은 식당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렇듯이 지뢰밭 같은 악재를 만나게 되어, 1년도 되지 않아 경제대공황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그 때가 그의 나이 65세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사회보조금 105달러와 나이든 몸뚱아리가 전부였다.
65세의 노인이 105달러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은 그 돈으로 낡아빠진 트럭을 한 대 구입했다. 그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개발했던 음식을 팔아보기로 작정을 한 것이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재정후원자가 절실했다. 그는 2년 동안 재정후원자들로부터 1,008번의 거절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009번째 만에 첫 후원자를 만나게 된다. 드디어 그의 요리법을 사겠다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노인은 이동식 트럭에서 하던 닭튀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바로 그 노인이 ‘켄터키 할아버지’로 유명한 KFC의 창업주이자 CEO였던 할랜드 샌더스 (1890-1980)이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65세가 넘도록 포기하지 않았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전설 할랜드 샌더스의 고백이다.

 

민석아!
우리나이 50은 아직 65세가 되려면 15년이나 더 여유가 있고 넉넉한 나이다. 더구나 평균수명도 길어졌으니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인생을 살다 보니 결단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살이니... 이혼이니... 도피니... 그런 결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노인의 말대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 말이다. ‘이 나이에...’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는 결단이지. 

 

민석아!
목사로 살고 있는 나 역시 지뢰밭 같은 인생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밤 잠을 설친 고민과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앞으로 3년을 지난 30년보다 값지게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3년 후에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고려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친구가 아닌 목사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건강까지 나빠졌다니 이번 주부터 담배는 끊고, 그 동안 끊었던 교회를 다시 나가보도록 하자. 그 길만이 살 길이다. 

-런던에서 박목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