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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아버지와 아들

hherald 2010.09.20 17:35 조회 수 : 9825

 

아들놈을 보면 그냥 좋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들놈은 그런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 때는 나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느새 내 키와 같아진 아들놈이 대견하다. “녀석 키가 나랑 같다!”며 아버지는 귀가 입에 걸리도록 껄껄 웃으셨다. 내 바지를 입어보며 “아빠는 거인 같다”던 아들놈의 어린시절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의 바지를 입고 걷다 넘어진 나를 번쩍 들어올리시던 아버지...

 

 

아들놈과 운동을 하는 것은 뭔가 특별하다. 겨울방학이 되면 나를 깨워 동네 스케이트장으로 달려가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함께 농구를 할 때나 골프를 칠 때, 아들놈은 나를 이겨보려고 기를 쓰며 달려든다. 멋지게 얼음을 지치시던 아버지를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추격하던 내 모습을 닮았다. 이젠 아들놈을 이기기도 쉽지 않다. 여유 있게 달리시던 아버지의 이마에 어느 날부터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녀석이 친구들과 운동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스케이트를 타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싫은 모양이다.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 때는 왜 그렇게 싫었을까... 아들놈은 명문공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고등학교 시험 발표가 있던 날, 통닭을 사 들고 들어오셨던 아버지는 나보다 더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계셨다. 녀석이 켐브리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 서울대를 가면 평생 소원이 없겠다던 아버지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아들놈은 내 생각과 전혀 딴판이다. 눈 높이가 낮아지는 내 모습을 보며 마른멸치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처럼 살지 말아야 하는데... 돌아보니 그것은 아주 오래된 아버지의 푸념이었다.

 

 

녀석은 언제나 제 엄마 편이다. 나도 언제나 어머니 편이었다. 서운하다.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아내와 다툰 날은 아들놈이 베게를 들고 싱글벙글하며 엄마 품으로 기어든다. 어머니의 품이 왜 그리 좋았을까! 아버지의 품이라는 말은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다. 뭐가 필요한지 열심히 제 엄마를 설득하고 있다.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에서 여행을 떠난 아들놈이 전화를 했다. “아빠... 엄마 있어?” 영국에서 전화를 걸면 아버지의 첫마디는 늘 똑 같았다. “네 엄마 바꾸랴?” 난 그래도 그 놈이 좋다. 아버지도 나를 그렇게 좋아하셨다는데...

 

녀석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다니는 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이었다. 함께 쇼핑을 나가면 아들놈은 ‘각자 쇼핑을 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한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에 나도 아버지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늘 “그러자”고 말하지만 사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자”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은 늘 그러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녀석이 엄마는 쫄랑쫄랑 잘 따라다닌다. 장바구니를 들어드려야 한다며 나도 어머니를 잘 따라다녔다.

 

 

영국에서 자란 놈이 식혜를 좋아한다. 식혜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지 아버지를 닮았다”고 그러셨다. 건축과를 가겠다며 미술을 선택한 아들놈이 못마땅하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내가 미술부를 그만 둔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린 놈이 벌써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깊이 패인 내 이마의 주름살은 아버지를 닮았다.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까지 닮는다. “하필이면 그런 것까지 아버지를 닮느냐”며 속상해 하시던 어머니... 아내도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구두가 망가졌다. 언제부턴가 내 구두를 신고 학교를 가기 시작하더니 그 구두를 신은 채로 공을 찼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신발을 망가뜨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들놈이 구두를 새로 샀다. 지난 주일에는 그 구두를 신고 교회를 갔다. 내 신발을 신고 나가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들놈과 신발을 같이 신는 것도 이제 잠깐 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신발은 너무 작아 신을 수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아들놈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관악산 꼭대기를 잊을 수가 없다. 내 평생에 아버지의 손을 그렇게 많이 잡아봤던 날이 또 있었을까... 아버지가 그립다. 그 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아버지의 희망이자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마른멸치를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동상처럼 내 마음 한 복판에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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