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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그 어느 날 에피소드

hherald 2010.07.15 14:42 조회 수 : 1278

 

벌써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날도 역시 아들녀석 때문에 시작 된 싸움이었다.
초를 다투는 바쁜 아침, 그 짧은 시간에 아내와 나는 집안내력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얼굴을 붉혔다. 마음이 상한 아내가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 올리며 차에 오르더니 시위를 하듯 평소보다 거친 소리로 시동을 건다. 그렇지 않아도 레이디 오너를 만나 달리지 못해 환장을 하던 자동차가 ‘터보Turbo’ 특유의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나면 ‘내가 참을 걸 그랬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지만, 아내는 겨우 두 세 시간도 참지 못하고 먼저 ‘괜찮냐’며 전화를 걸어온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먼저 한마디를 해야 일이 손에 잡히는 사람인데 그 날 따라 맘이 몹시 상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이 눈치를 보며 책상에 앉는다. 돌아오면 교복도 벗지 않고 먼저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아빠의 표정을 보니 ‘알아서 기지 않으면 쥐어터지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건 나쁘지 않았다. 아이에게 가끔씩은 그런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심부름을 하나 시켜보니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런 아들녀석의 마음과 태도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라다가도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는데...
이른 저녁을 먹여 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 이미 날이 어두워진 어느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그 때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는 아내에게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그 때까지 단 한 번도 문자를 보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가 잘 못 된 것인지 알파벳을 단어의 순서대로 누르는데 전혀 다른 글자들이 들어와 박혀버리고 만다. 당혹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Predictive Text’라고 불리우는 ‘T9 Text Input’ 기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으니, 전화기가 고장 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당시의 나 자신이 뭐 그리 망신스러울 것도 없다.“I am sorry. It was my fault. I love you.”라고 문자 한 줄을 보내는데 무려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성공적으로 문자를 보낸 후에 큰 일을 해 낸 것 같은 기분으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는데 자동차가 ‘갤갤갤갤~’ 신음소리를 몇 번 토해내더니 그냥 퍼지고 만다. 가뜩이나 배터리가 시원치 않아서 조심스러웠었는데 문자를 보내느라고 쌩쇼를 하는 동안 깜빡 잊고 헤드라이트를 켜놓았던 것이다.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온 이목사님의 차에 점프 선을 연결했지만 전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목사님~ 제 차도 배터리가 약해서 그런가 봐요. 아마 새것을 사서 갈아보시면 괜찮을 겁니다”
결국 차를 캄캄한 골목길에 세워둔 채 이목사님의 차로 아들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자소동에 자동차 소동으로 십중팔구 장기전이 될 뻔한 부부싸움이 한나절 만에 끝이 났다. 역시 좋은 팀워크는 상황이 나빠질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차가 속을 썩히니 아내와 아들이 싹싹해진다. 아마 다들 그런 재미로 세상을 살게 되는 모양이다.
다음 날 이목사님의 말씀대로, 퍼진 자동차에 배터리를 새로 사서 갈아 넣었더니 단 번에 시동이 걸린다.
어이없는 에피소드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
사람들은 제 몸 하나 부지하기도 버거운 삶을 산다. 스스로는 시동이 걸려 겨우겨우 굴러다니지만 방전된 다른 차를 점프해서 살릴 수 없었던 이목사님의 ‘시트로엥’ 자동차를 떠올리게 하는 시원치 않은 인생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홍익인간-humanitarianism’의 이념이나, 대학 다닐 때 동동주를 퍼 마시며 토론하던 ‘Humanitarianism-홍익인간’의 의미 따위는 이제 한인촌 안에서 더 이상 소용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살다 보니 세상은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게 유익한 것이 옳다’고 우리를 끊임없이 설득하기 때문이다.
목사들마저도 복음이라는 이유를 붙여가며 세상의 논리에 설득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구촌 곳곳마다 이민교회를 깨뜨리는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목사들의 ‘거룩한 거짓말’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나눈 교회로 목회만 잘 하면 그것이 ‘거룩한 소명’이 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둔갑이 되는 것이다.
선배목사님의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박목사... 교회를 잘 깨는 것도, 거룩하게 보이는 재주도 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일세... 그거 아무나 하나?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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