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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엄마

hherald 2010.07.17 20:24 조회 수 : 1110

Conservatory에 앉아 있다가 가든으로 나가려는데, 환기를 시키려고 열어놨던 파티오도어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정신 없이 뛰어든다. 웬 난리인가 싶어 가든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더니 덩치 큰 여우 한 마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이제껏 영국에 살면서 봐왔던 수천 마리 여우 중에 가장 큰 놈이었다. 불과 3미터 앞에서 나를 보고는 아쉽다는 듯이 어슬렁거리며 돌아선다. 사람과 마주치는 것쯤은 이제 전혀 부담이 없다는 듯이 태연한 걸음으로 담장을 향해 걸어가더니 그 높은 담장을 단 1초 만에 뛰어넘는다.

지금까지 고양이와 여우가 싸우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지난 3월에 교통사고로 죽은 마샤는 담을 넘어 가든으로 놀러 온 여우와 나란히 앉아 서로 소 닭 보듯 무관심할 때가 많았는데, 여우가 고양이를 추격하다니... 정말 별일이다.

그런데 분명히 엄마고양이 미씨와 새끼고양이 앰버가 함께 가든에 나갔었는데, 여우를 피해 집안으로 뛰어든 것은 단 한 마리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기도 했지만 워낙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뛰어드는 바람에 누가 누구였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새끼 고양이 앰버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혹시라도 미씨였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뿔싸... 놀라서 몸을 숨겼던 미씨가 숨을 돌린 후에 얌전한 걸음으로 이층계단을 내려온다.
집안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아들녀석은 볼멘소리로 앰버가 여우에게 잡혀 먹힌 것 같다며 허둥댄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 식구가 온 집안을 이 잡듯이 뒤지며 이름을 불러봤지만 앰버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겨우 100일 된 어린 고양이가 여우에게 쫓겨 어둑어둑한 집밖으로 뛰어 나간 것이라면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가든 구석구석과 동네주변에 숨을 만한 곳이나 갈만한 곳을 찾아 샅샅이 뒤져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두 세 시간이 흘렀다. 날은 이이 저물어 캄캄해졌다. 아들녀석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내의 표정도 엉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모든 책임이 내게로 전가되어 결국 융단폭격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멍청한 고양이 새끼 같으니라고…”
앰버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우에게 쫓기는 새끼를 두고 저 혼자만 살겠다고 먼저 집으로 뛰어든 미씨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런 것을 이심전심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 때까지 태연하게 이리저리 뒹굴던 미씨가 갑자기 ‘야옹~’거리며 새끼를 찾기 시작한다. 아래 위층을 오르내리며 부산을 떨더니 캄캄한 문 밖으로 뛰어나가 새끼고양이를 부른다. 가든은 이미 수십 번도 넘게 수색을 당한 뒤라 그렇게 처량하게 부른다고 새끼가 뛰어나올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미씨가 차고를 개조한 창고방으로 달려가더니 문 앞에서 ‘야옹~’댄다. 창고방도 벌써 서너 차례나 뒤져본 후였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어느 구석에 숨어있었는지 엄마고양이 미시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창고방에서 앰버가 깡총깡총 뛰어나온다. 여우를 보고 놀란 나머지 생전 들어가보지도 않았던 창고방으로 뛰어들어가 몸을 숨긴 것이었다. 얼마나 좁은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었으면 우리 세 식구가 번갈아 가며 뒤졌는데도 눈에 띄질 않았을까!
아들녀석이 환호성을 지르며 앰버를 끌어안고 기뻐한다. 아내와 나도 앰버를 끌어안고 입을 맞춘 후에 신나는 커피축제를 벌였다. 허탈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가라앉았던 몸이 커피와 함께 스며든 카페인에 빠른 속도로 반응을 한다. 나쁘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부담을 갖지 않고 몇 잔씩 마셔댔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책상에 앉아 밀린 공부를 하고 있다.
멍청한 엄마고양이 미시의 목소리를 듣고 깡총깡총 뛰어나오던 앰버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런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불러낼 수 없는 좁은 틈새에서 새끼를 벗어나게 하는 희망이자 피난처... 아마도 지금 앰버를 끌어안고 잠든 아들녀석에게 아내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너무나도 의미 있는 이야기다.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엄마로서의 부끄러운 인생일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자식새끼들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불러낼 수 없는 인생의 좁은 틈바구니에서 ‘이젠 괜찮다’는 엄마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혹시라도 신앙信仰으로 새 힘을 얻은 엄마의 목소리라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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