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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거시기한 내 나라 내 고향

hherald 2010.07.17 20:19 조회 수 : 2135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결코 짧지 않은 보름간의 여정이 사나흘 지나가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 중에,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드려야 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15일 가운데 총회일정 4일, 두 번의 주일, 3일간의 집회설교, 수요기도회 설교 한 번을 빼고 나면 한가하게 남는 시간이 없었다. 더구나 두 번의 주일 가운데 한 번은 총회에서 보내는 대로 자매노회인 전라도 남원을 가야 했기 때문에 연고도 없는 곳에서 사흘씩이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빠르게 갈 수 있는 KTX를 타고 싶었지만 남원은 KTX도 서지 않는 인구 9만의 작은 도시였다. 시간을 쪼개 꼭 만나고 싶었던 문집사님 가정과 이른 점심식사를 나누고 남원행 무궁화 열차를 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열차가 4시간을 달려 남원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교회건물들만 눈에 들어왔다.

전라도는 정말 듣던 대로 ‘거시기’ 했다. 남원 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거시기’ 소리를 듣게 된다’
“목사님~ 오시는 길이 좀 거시기 하셨저 이...ㅇ”
뭐 바쁜 일정에 좀 거시기 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나쁘지 않은 기차여행이었다. 그런데 정말 거시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계획된 일정은 토요일 오후에 남원에 도착해서 그 다음날 동북교회 주일예배 설교를 하고 오후 2시 30분경 기차를 타고 저녁에 수원에 도착해서 처가에 인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원에 도착해보니 주일날 저녁설교가 한 번 더 추가되어 있었다.

좋은 방을 준비했으니 남원에서 하루 더 묵고 월요일 아침에 새마을호를 타고 올라가라는 노회장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예매했던 기차표를 남원발 0시 45분 밤열차로 바꾸었다. 기차에서 불편한 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한나절을 더 벌어보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앞에 강이 흐르고 멀리 광한루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호텔방에 짐을 풀었다. 설교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팔자(?)에도 없는 남원으로 설교하러 가게 되었다고 투덜대던 내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머리를 비우고 좀 쉬다 오라던 아내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하다더니 친구녀석의 예언대로 남원에서 제일 맛있다는 추어탕 집으로 끌려갔다. 그 때까지 추어탕을 먹어본 적도 없고 구경해 본적도 없는 내게 추어탕은 보신탕 다음가는 혐오음식이었다. 더구나 낯선 음식을 가리는 내 식성인지라 ‘끌려갔다’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거시기한 상황이었다.

여섯 명이 모인 자리에 미꾸라지전골 두 개가 놓여진다.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오셔서 미꾸라지를 더 많이 넣었다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굵은 손가락만한 미꾸라지들이 전골냄비에 가득했다. 당혹스럽고 고민스런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장로님 한 분이 ‘미꾸라지가 보기보다 훨씬 맛있다’며 나를 격려하셨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깻잎에 쌈장과 마늘 한쪽을 얹고 가장 작은 미꾸라지를 한 마리 골라 꾹꾹 눌러 한 입에 들어갈만한 쌈을 싼 후에, 눈을 딱 감고 입에 넣었다. 지느러미가 씹히는 느낌이 좀 거시기 했지만 입안에 남는 맛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사실... 맛이 있었다. 늦바람이 무섭고 늦게 배운 도둑질이 재미있다고, 나이 오십에 처음 먹는 미꾸라지전골과 추어탕 맛에 홀딱 빠져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닥닥 긁어 먹었다.

그 다음 날은 오전예배를 마치고 다른 교회에서 저녁설교를 하기 전까지 장로님 두 분과 지리산여행을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차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말로만 듣던 해발 1172m 고지 ‘정령치’였다. 동쪽으로는 ‘노고단’과 ‘천왕봉’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성삼재’와 ‘왕시루봉’이 보였다. 남쪽 등뒤로는 남원시내가 손수건을 펴놓은 것처럼 한 눈에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식사로 먹었던 삼계탕도 별미였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지난 20년 동안은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같은 생각을 했었다.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는 나라...’
그러나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떠나고 싶지 않은 내 나라 내 고향...’ 비행기가 아름다운 영종도 바다 위를 날아오른다.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제 겨우 내 나이 오십인데, 노인네들처럼 내 나라 내 고향이 그리울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이상하다. 전라도사람들의 표현대로 거시기한 내 나라 내 고향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그 전엔 거시기 했던 그 느낌이 이젠 전혀 낯설지 않고 나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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