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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세월을 버틴 것들의 아름다움

hherald 2010.07.17 19:58 조회 수 : 1019

100년 된 책상을 하나 샀다. 늘 갖고 싶어했던 통나무 오크로 만든 책상이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학문의 깊이가 더해져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의기소침해진 내 성격 때문이다.
가뜩이나 볼품없는 조그만 책상 앞에 의기소침하게 쭈그리고 앉아있는 내 꼴이 초라해 보였는지 아내가 마음을 바꿔 쓸만하고 큼직한 책상을 하나 구해보라고 했다. 자리 차지하는 큰 책상을 싫어했던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문을 하게 된다.
“큰 책상을...?”
어떤 책상을 살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내 마음 속엔 이미 오래 전부터 오크로 만든 통나무 책상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쪽으로 서랍들이 있고 책상바닥에 부드러운 느낌의 가죽을 댄 전형적인 빅토리아풍의 영국식 책상이었다.
인터넷경매 사이트인 eBay를 뒤지기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났지만 책상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책상이 귀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골동품수준의 그런 책상들은 eBay에 얼마든지 있었지만 언제나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 후에 낙찰이 되었기 때문이다. 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그렇다고 책상 하나에 500파운드(100만원) 이상을 지불할 마음은 없었고 또 그럴 형편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눈높이를 ‘Solid Oak-통나무’에서 ‘Oak Veneer-합판’ 로 낮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모양의 책상은 오크 무늬 합판으로 만든 것들도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책상을 구입하는 것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형편이 좀 나아지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끝자락에, 그 날은 별생각 없이 eBay에 올라온 책상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상태가 낡고 형편없어 보이는 만만한 물건이 하나 올라와있었다. 올려놓은 사진도 작은데다 희미하고 값을 제대로 받고 팔 생각이 없는지 물건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었다.
단 하나, 그래도 꼴에 재질은 ‘Solid Oak’였다. 아들녀석이 너무 낡았으니 사지 말라고 만류를 하는 것을, 좀 갈아내고 칠을 하면 괜찮겠다 싶어 비딩bidding을 하기로 작정했다.
처음엔 두어 사람이 관심을 보이며 달라붙더니 이내 마음이 바뀌었는지 며칠 뒤에 헐값으로 내 앞에 물건이 떨어진다.
77파운드(15만원).
아이키아 IKEA에서 파는 조립식 싸구려책상 값도 되지 않는 가격이다. 순간 괜한 짓을 했나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냥 땔감으로 써도 그 값은 하겠다’ 위안을 삼으며 그 다음날 박전도사님의 차로 책상을 실어오기로 약속을 잡았다. 65마일(100Km) 떨어진 북해와 템즈강 하구가 맞닿는 일명 ‘달동네 east end’ 중의 하나가 분명했다.
네비게이션은 참 신통하다. 주소를 입력시키고 따라갔더니 그 시골구석을 이리저리 찾아 들어가 바로 집 앞에 정확하게 차를 세워준다. 동네분위기가 책상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혹시’라도 뜻 밖의 물건이 나올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그냥 땔감으로 쓰지 뭐...’ 주문을 외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주인을 따라 들어간 거실에는 책상이 하나 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 순간의 내 느낌이었다. 책상을 보는 순간 그것 말고 또 다른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상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았다. 1900년 초에 만든 것이라는데100년을 버텨낸 세월만큼 아름다운 흔적들이 배어있는 연한갈색의 오크 책상이었다.
더구나 책상바닥의 가죽도 몇 년 전에 전문가의 손에 맡겨 새것으로 갈아놓은 것이라는데, 그야말로 눈먼 놈을 하나 건진 것이다.  서재로 옮겨놓은 책상을 보고 아들녀석이 한 마디 한다.
“아빠 이게 그 책상 맞아?”
아내는 77파운드에 샀다는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정말 77파운드 맞아요?
저런 책상이라면 비싸게 샀어도 내가 아무 말 안 할 텐데...” 나이가 들수록 오래 된 물건이 좋아진다. 새것은 왠지 모르게 내 손에 망가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정확한 이유를 말하자면 오래 된 물건이 더 튼튼하고 더 품위가 있고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때가 묻고 낡은 느낌이 들더라도 오래 된 사람이 좋다.
어느 날 갑자기 때 묻은 모습으로 나를 놀래 킬 일도 없고, 내 앞에서 더 이상 망가진 모습을 보일 일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묻은 때가 나 때문이라면 그야말로 나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아내가 그렇고 남편이 그렇다. 지금은 그냥 ‘늙으면 데리고 살면서 등긁갱이 대신해서 쓰지 뭐...’라고 한 맺힌 푸념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세월을 함께 버틴 흔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면 그냥 등긁갱이로 대신 쓰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쩌다 눈먼 놈을 하나 건지고 어쩌다 눈먼 년이 하나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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