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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영국이 좋은 이유

hherald 2010.07.17 19:56 조회 수 : 2535

아내와 나는 그냥 영국에 그냥 살기로 했다. 그렇다고 영국을 떠날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원사의 말대로 Somerset에서 North Devon으로 이어지는 A39도로는 정말 보기 드문 절경이었다. 길을 따라 우측 절벽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좌측으로는 Exmoor 국립공원의 그림 같은 자연이 펼쳐지는데, Porlock Hill에서 한 번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카라반 파크에서 일하고 있던 정원사에게 지나가는 말로 갈 만한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양반이 아예 하던 일을 멈추고 나온다. 그리고 장갑까지 벗어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넣더니 동네 앞에 보이는 Watchet 하버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Watchet 하버는 카라반 파크에 묵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한 두 번쯤은 다녀오게 될 곳이었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손가락 끝을 찍어가며 벌써 이곳 저곳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지명과 너무 많은 길의 번호가 등장하는 바람에 도무지 어디를 어떻게 가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더니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A39도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원사의 표정을 보니 이번에는 정말 가봐야 할 곳을 설명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A39도로를 들어가서 Porlock 타운을 지나 Porlock Hill을 올라간 후에 Lynton & Lynmouth까지 달려보라는 이야기다. 정말 좋은 곳이냐고 물었더니 “Ooohh~”라는 과장된 감탄사로 말을 받는다. 정말 좋긴 좋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시골길을 달려 Porlock 타운에 도착했다. Porlock Hill 사인포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반쯤 졸고 있다가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키던 아내의 감탄사도 감탄사였지만, 너무나도 가파른 언덕길을 보는 순간 낡은 차를 타고 온 몇몇 교인들 걱정이 앞섰다.
“저 언덕을 차가 올라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가 신형 BMW를 빌려왔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 가파른 언덕을 경쾌한 엔진소리로 박차고 올라간다. 이 맛에 좋은 차들을 타는 모양이다. 
“아...!”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가 정말 장관이었다.
“Ooohh~”라는 감탄사를 뱉어내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던 정원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길은 12마일이나 계속 됐다.
Lynton & Lynmouth 가 내려다보이는 바다 끝 절벽에 도착했을 때 뜬금없이 아내가 한 마디를 던진다.
“여보~ 우리 그냥 영국에 살자”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한국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몰든은 영국이 아니다. 모처럼 뉴몰든을 벗어났더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이렇게 좋은 영국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고 그 곳에 함께 갔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다들 많이 지쳐있었다. 물론 가라앉은 영국생활 때문이기도 했지만 교회가 전혀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 교회까지 가라앉은 분위기라 다들 더 힘들어했던 것을 잘 안다.
그런 교우들을 위해 교회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카라반으로 떠나는 부활절 묵상과 토론여행’이었다. 이제까지 해왔던 수련회의 성격이 아니라 우리교회만의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것이다.

여행이 여행답게 느껴지도록 카라반은 수준을 올려 3베드룸 Superior급으로 예약을 했고, 아이들이 많은 가정은 한 가정이 카라반 하나를 다 쓰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가정은 카라반 하나를 두 가정이 쓰도록 배정했다. 회비는 없었다. 공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주일 교우들이 헌금한 것으로 이미 충분한 회비를 내 셈이었다. 모든 것은 교회재정에서 지출하기로 했다.

밤새 신앙과 교회를 주제로 토론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찬양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은 가족별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영국이 좋은 이유와 교회가 좋은 이유를 깨닫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라반으로 떠나는 묵상과 토론여행’ 10월 1일, 두 번째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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