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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 Broken Window Theory

hherald 2010.07.17 19:54 조회 수 : 2041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치안이 허술한 골목길에 상태가 비슷한 두 대의 자동차를 세워둔다. 두 대 모두 자동차의 보닛을 열어두고 일주일 동안을 골목길에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다. 다만 그 중의 한 대는 일부러 유리창 한 곳을 깨뜨려 놓는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 세워둔 두 대의 자동차에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 단지 보닛만 열어놓은 차는 눈에 보이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유리창을 깨뜨려 놓은 차는 그렇게 방치 된 후 겨우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그 다음날 타이어가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 하나가 유리창에 돌을 던진다.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모든 유리창이 파손된다. 동네 아이들은 차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고 길을 가던 사람들이 차를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일주일 만에 자동차는 이런저런 부품들이 뜯겨나가고 찌그러지고 깨지고 부숴져 흉측한 고철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단지 유리창 하나가 깨진 것뿐이었다.
1969년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포드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에 의해 실행되었던 흥미로운 실험결과이다. 이 실험을 통해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 Theory’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졌다.

1980년 후반의 뉴욕지하철은 그야말로 악명 높은 범죄의 온상이었다.
라토가스 대학의 겔링 교수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범죄심리에 적용해 지하철 당국에 낙서를 지우는 방안을 제안했다. 겔링 교수는 지하철의 낙서가 깨진 유리창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뉴욕 교통국에 의해 겔링 교수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지하철의 낙서 지우기가 시작되었다. 무려 5년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낙서들을 지운 결과 뉴욕지하철 안의 범죄율이 75%나 급감하게 되는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 이후, 낙서를 지우고 길거리에 빈 깡통이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경범죄 단속이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 얻은 성과가 한국에 영향을 미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영국생활에 지쳐간다.
처음엔 그냥 사소한 감정의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삶이 물에 쓸려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내 삶 가운데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돌아보면 모든 일들이 처음에는 유리창 하나에 금이 간 것처럼 사소한 일들이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상처를 받기 쉽다. 상처가 난 가슴은 언제나 쉽게 금이 가고 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를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기 어려운 본인의 여린 심성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그런 환경과 일들로 금이 가고 깨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스스로 금이 가고 깨지면 사람들은 깨진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보여주듯 그 때부터 이미 깨어진 것을 망가뜨리려는 인간의 범죄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깨뜨려도 무관해 보이는 하찮은 놀이감으로 전락 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비결은 나 자신을 사람들 앞에 깨진 유리창 그대로 세워두지 않는 것이다.   
서재를 정리하던 중에 거꾸로 꽂혀있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죽음의 수용소>였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뒤집으려는 나의 철학적 해학으로 일부러 그렇게 꽂아놓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 수준이라도 된다면 이렇게 지쳐있는 영국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의 순간을 넘나들며 살아남은 의사이자 유명한 심리학 교수인 빅터 프랭클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썩 번역이 잘 된 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책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던 빅터 프랭클은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93세까지 살았던 전설이 되었다.
책의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조차 자신을 깨진 유리창 그대로 세워두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죽음의 수용소>를 다시 뒤적이다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그리고 얼른 목욕을 한 후에 색을 맞춰 아래 위 옷을 갈아입었다. 외출할 계획은 없었다. 단지 나 자신을 내게 보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젠 더 이상 ‘깨진 유리창 그대로 인생의 골목길에 나를 세워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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