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박목사 에세이

비교, 내 마음 속의 요물

hherald 2010.07.16 15:51 조회 수 : 3466


어떤 놈은 태어나보니 할머니가 여왕이다. 또 어떤 놈은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나라 최고의 부자다. 우리 아들녀석은 인생의 출발선부터 공평하지 않은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그냥 먹고 살기도 버거운 개척교회의 목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인간의 비극이 시작되었으니 할 말은 없다. 태초에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와 비교하지 말아야 할 비교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교만과 열등감은 같은 얼굴 속의 다른 표정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보여주는 전혀 상반된 태도이기도 하다.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할 때 생기는 감정의 부유물 浮遊物이 교만이라면 뇌관처럼 도사리며 가라앉은 침전물  沈澱物은 열등감이다.

사람은 결국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삶 가운데서 감정과 태도의 변화 그리고 들키고 싶지 않은 극단적인 표정의 변화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교만이 순식간에 열등감으로 뒤바뀌는 비교본능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일그러진 하루 속에서 뒤틀린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것처럼 더러운 기분도 없다. 

 

한국사람의 비교본능은 좀 유별나다. 내 이야기가 아니고 영국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자라고 있는 아들녀석의 불만스런 진단이다.

 

오늘 아침 일만해도 그렇다. 아침 등교 길부터 ‘이 놈은 어떻고 저 놈은 어떻고... 그러니 너도 치과의사가 되라’는 아빠 이야기에 열이 받았는지 버스정류장 앞에서 차를 내린 후에 몸을 구부려 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볼멘소리로 투덜댄다. “아빠~ 왜 한국사람들은 자식들까지 비교를 하는 거야? 아빠도 엄마한테 비교 당하면 기분 나쁘잖아...”

그러더니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큰 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간다. 바람 결에 희미하게 ‘Bloody idiot 어쩌구 어쩌구’ 하는 소리가 귀에 흘러 들어왔지만 아침부터 내가 너무했나 싶어 그냥 내버려뒀다.

 

불과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때도 아이가 차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그 짧은 순간에 내게 인생의 행복론을 설명했다. “Dad... you know why you are not happy? It’s because you are making a comparison”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팽개치듯 차문을 닫고 돌아섰다.

맞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비교하다가 스스로 부대껴서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푸념처럼 했던 이야기였다.

 

영국에서 16살까지는 ‘child’로 구분이 된다. 아들녀석은 아직 16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다. 그런 아이의 눈에도 한국사람들의 비교의식은 좀 지나친 구석이 있다고 보여지는 모양이다.
“아빠~ 영국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비교하지 않아요”

 

영국에 살다 지치면 ‘한국의 장점’과 ‘영국의 단점’을 대비시키는 이상한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러면 망설일 필요도 없이 흑백논리에 가까운 명확한 답을 얻게 되는데 그냥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답을 얻고 나면 가뜩이나 정떨어지기 쉬운 영국의 겨울날씨에 정말 겨우 남은 정마저 떨어진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국했던 지인知人이 있었다. 그런 용기가 대단하다며 다들 부러워했다. 귀국한 후에도 내 나라로 돌아오길 잘 했다는 이야기가 몇 번이나 들렸다.

 

정확하게 1년이 지난 후에 그 친구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 별천지 같이 신기하고 재미있던 한국생활이 또 다시 평범한 일상이 되자 이번에는 ‘영국의 장점’과 ‘한국의 단점’을 대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얻게 된 답이 있었는데 ‘귀국은 실수였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떠나지 못해 안달들이고, 타국에서는 귀국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러나 사는 나라가 바뀐다고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바뀐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극단적인 비교본능을 버리지 못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나도 이제 내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꾹꾹 눌러 가라앉히는 이유가 있다.

이 나라는 하루 사이에도 서너 번씩 교만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비정상적인 정서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조금 덜 재미있더라도 극단적인 비교의 정서로부터 벗어난 이 나라를 떠나기 힘들 것 같다.

 

비교比較는 언제나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순식간에 흙탕물 속으로 던져버리는 내 마음 속의 요물妖物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