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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늙는 축복

hherald 2010.07.16 15:37 조회 수 : 1291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바지를 몰래 입어보면서 “나는 언제쯤 이렇게 큰 바지를 입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내 키가 여름 날의 오이 자라 듯 할 무렵, 정확하게 기억하자면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그 때까지 거인처럼 느껴졌던 아버지가 갑자기 평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뵈었던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더 작은 체구에 깡 말라버린 늙으신 모습으로, 몸을 반쯤 구부린 채 누워서 ‘죽음’을 생각하고 계셨다. 넉넉하지 못했던 영국생활 때문에 몇 년 만에 찾아 뵙게 된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리고 병시중을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목사가 되어서도 인간을 늙게 만드신 하나님의 심중(心中)을 이해할 수 없었다.
늙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늙는 사람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에게 있어서도 결코 아름다운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도 늙어가고 있다. 노안이라는 것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말처럼 귓전으로 흘려 듣고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눈이 침침하다. 그러더니 이젠 돋보기를 쓰지 않고서는 책을 한 줄 읽기도 힘들다. 눈가에 주름이 지는가 싶더니 집안 내력에도 없는 쌍꺼플이 생겼다.
더구나 나이 들어 틀니를 하지 않도록 치과의 임플란트 기술이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이미 많이 늙었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커피를 마시며 성경을 묵상하다가 문득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제 멋대로 살았던 사람들에게 신神이 마지막으로 베푸는 회심의 기회가 바로 ‘늙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우리 식구들이 어떤 은혜를 체험하고 모두 교회에 나가기로 결정했을 때 그냥 침묵하시며 시큰둥한 반응만 보이셨다.
그 후로 식구들이 한 사람씩 세례를 받으며 다들 교회에 미쳐서(?) 입만 열면 교회 이야기를 했을 때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될 거라며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지는 듯 했지만 이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애꿎은 담배만 계속 피워대셨다.

 

아버지는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무슨 또 하나의 신앙(信仰)인양, 마음에 다짐까지 해가면서 식구들의 전도 앞에서 버티시는 것처럼 보였다.

 

오산중학교 교단에서 평생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돌아가신 아버지. 신기하게도 ‘스승의 날’ 낯선 땅에 묻히신 아버지의 묘비(墓碑)에는, 궁서체로 크게 ‘성도 박희만의 묘’라고 새겨져 있다. 
어느 날 술에 취하셔서 “너희들처럼 그렇게 예수를 믿느니 차라리 나 자신을 믿겠다”고 소리 치시던 아버지는, 그 후에 몸을 가누기 힘드실 만큼 병들고 늙어서야 하나님 앞에 항복하셨다. 
평생을 선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사람 때문에 마음이 부대끼면 잘 그리시지도 못하는 수채화를 밤늦게까지 그리시며 마음을 달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늘 세상사람들보다 더 독하게 사는 예수쟁이들을 이해 할 수 없다며 교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이셨었다. 그렇게 고집스럽던 아버지께서 눈을 감으시기 삼 년 전, 어머니께서 사주신 새 양복을 입으시고 우리 가족 모두를 세례를 주셨던 목사님께 아들 녀석보다 20년이나 늦은 세례를 받으셨다.

 

나이 들어서 눈을 감고 죽음을 생각하면 신앙의 문제가 더 이상 선善의 문제가 아니라 영생永生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늙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늙는 세월’이, 고집스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늙는 것은 정말 놀라운 축복 아닐 수 없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묘하게도 스승의 날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고, 또 새 양복을 입으시고 어설픈 표정으로 세례를 받으시던 아버지의 신앙고백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거나 혹은 가슴이 시린 웃음을 웃게 된다.
누가 그러던데... 그 땐 “짠~하다”고 그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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