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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라운드어바웃 Roundabou

hherald 2010.07.15 15:33 조회 수 : 4161

영국에서는 운전을 하다가 혹시 실수로 길을 잘 못 들어가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느 곳에서든지 당황하지 않고 조금만 길을 가다 보면, 차를 돌릴 수 있는 라운드어바웃 Roundabout 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곳에서는 진입해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뱅글뱅글 서너 바퀴를 돌아도 문제가 없다. 도는 차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비행기를 타고 이착륙을 하게 될 때 하늘에서 영국을 내려다보면 수없이 많은 도로에 구슬처럼 꿰어놓은 듯한 라운드어바웃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적인 교차로를 라운드어바웃으로 바꿨을 때 충돌 사고율이 40% 줄어들고, 사상자의 수는 무려 90% 가까이 감소한다는 통계가 있다. 물론 그런 수치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잘 못 가던 길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간혹 라운드어바웃의 발상은 다분히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에 한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 못 들어섰던 기억이 난다. 차를 돌려야 하는데 가도가도 차를 돌릴만한 길이 나오질 않았다. 뒤차에 떠밀려 목적지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길을 달리며, 한국 길은 다분히 불교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길을 잘 못 든 것은 네 업보業報니 다음來生에는 이런 길 오지 말거라”

 

영국 최초의 라운드어바웃이 1909년 렛치워스Letchworth라는 퀘이커교도들의 마을에서 시작 된 것을 보면, 그것이  성경적 혹은 기독교적 발상이라는 내 생각도 그다지 억지는 아니지 싶다.
2003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유럽 10개국 버스여행을 떠났었다. 프랑스 관광을 마치고 독일로 이동하던 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시간을 가졌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출발하기 전에 늘 하던 대로 옆 사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인원점검을 마쳤다. 버스가 휴게소를 벗어 난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남편을 휴게소에 두고 왔나 봐요”

 

미국에서 오셨다는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다. 시차 때문에 피곤해서 잠을 주무시다가 미처 인원점검을 못하고, 졸지에 남편을 휴게소에 버리고 온 매정한 아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하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영국에 사는 분들이라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깔깔 웃어댔다. 그냥 그 다음 Junction에서 빠져나가 라운드어바웃에서 버스를 돌려 휴게소로 되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영국이라면 넉넉잡고 20분 안에 해결 될 일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라운드어바웃 시스템이 아닌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반대편 국도를 달려 휴게소가 있는 지점 바로 전의 진입로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전 세계에 있는 라운드어바웃의 50%가 프랑스에 있다는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운전사까지 장거리여행을 처음 나온 완전초보라 상황에 대처할 경험이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신형버스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을 작동하는 CD롬까지 문제가 생겨 휴게소로 되돌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휴게소를 찾아갔더니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은 순발력을 발휘하여 택시를 불러 타고 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이미 2시간 전에 그곳을 떠난 상황이었다. 다행히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에 계시다는 연락을 받고 버스를 출발하여 국경검문소에서 어이없는 합류를 하긴 했지만 이미 여행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다. 퀼른으로 들어가야 할 그날의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다들 투덜대며 늦은 밤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을 했다.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 부부는 무슨 역모를 꾸미다 잡혀온 죄인처럼 스스로 자신들을 방에 가둬둔 채 늦은 저녁식사도 거르셨다.

 

살아가면서 인생도 길을 닮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다들 인생살이를 인생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쩌다 잘 못 들어선 인생길을 떠밀려 걸어가며 멍들도록 가슴을 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라운드어바웃을 생각하게 된다.  잘 못 들어선 인생길을 팔자八字로 생각하고 그냥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걸어가기엔 너무 억울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라운드어바웃은 정말 성경을 닮았다. 잘 못 들어선 인생길을 가슴 치며 그대로 걷지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돌아서서 걸으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도 닮은 꼴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길은 뭐랄까...
한마디로 팔자八로 망가진 인생길을 십자十字로 고쳐 걸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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