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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hherald 2010.11.29 18:19 조회 수 : 11020

 

영국의 겨울이 시작됐다. 뼈 속으로 스며드는 이상한 추위... 얼음이 땡땡 얼고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는 한국 겨울보다 춥다. 겨우 영하 1도. 그러나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수준이다. 더구나 마음까지 얼어붙는 날은 시베리아가 따로 없다.

아들놈은 레깅스처럼 생긴 내의를 두 겹이나 끼어 입고 깔깔 웃으며 바쁜 등교길을 나섰다.
“아빠 이거 무지 따뜻해!”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늦은 출근길에 서두르던 아내가 목도리 하나를 들고 내려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놈의 목에 칭칭 감아준다.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필 그 목도리가 겨우 하나 가지고 있는 내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들과 엄마는 전생에 못 이룬 연인사이라더니...
 
아들놈은 겨울을 즐기고 있다.
추워서 짜증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까짓 내의 따위로 기분 좋은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모양이다. 더구나 내 목도리를 자기의 목에 걸어주는 엄마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듯한 묘한 나르시스까지 즐기고 있다. 마음이 얼어붙지 않은 까닭에 가능한 이야기다.

겨울을 피할 수는 없다. 더구나 내 마음을 털어놓을만한 친구들과 피붙이조차 없는 영국겨울은 더더욱 피하기 힘들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그 현실은 문득 영국의 겨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아내와 남편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고 음습했다. 짧게 움츠러든 수은주 탓이 아니라 꽁꽁 얼어붙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인생의 내리막 능선에 걸쳐 겨울과 함께 들이닥친 2009년 한 해의 끝자락은 나를 우울증 환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피하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한 최악의 한 해였다. 겨울은 나를 마음껏 유린했다. 말하자면 꽁꽁 얼어붙은 동태가 된 셈이었다. 

2010년 겨울도 그렇게 찾아왔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없다. 나는 더 이상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지난해의 동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할 재주는 없지만 이제 겨우 즐길 줄 아는 인생의 해법을 터득한 것이다.

흔들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심각하게 겨울을 분석하는 것으로 들이닥친 겨울을 피할 수는 없다. 겨울은 우리 아들놈처럼 내의를 끼어 입고 깔깔 웃다 보면 기분 좋은 온기로 즐겨진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다.

2010년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어느 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정상과 멀어진 내리막 능선이었다. 그렇다고 정상 어디쯤에 올랐던 기억도 없다. 내게 있어 내리막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자 현실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이 오십에 깨달은 것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리막길은 경쟁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다. 더구나 정상을 등지고 서니 오직 꼭지점 하나만 눈에 보이던 시야가 온 세상을 향해 열린다. 즐기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잃었던 건강이 급속하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내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도 가벼워졌다. 마음에 가득했던 욕심과 미움들을 많이 덜어냈다는 이야기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지난해 겨울보다 올 겨울이 더 나빠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흔들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겨울을 고민하던 지독한 트라우마에서 완벽하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아빠~ 추우면 내의를 끼어 입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라고 되묻던 아이의 단순함이 해법이었다.

카탈로그를 뒤적이며 조금 일찍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민하고 있던 내 등뒤에서 목도리를 감듯 아내가 두 팔로 내 목을 감으며 속삭였다.
“올해는 당신이 내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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