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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추억이 담긴 서민 음식 닭갈비

hherald 2010.07.17 20:55 조회 수 : 12205

까칠한 셰프, 이두호의 음식세상

 

추억이 담긴 서민 음식 닭갈비

 

좀 산다는 사람들의 외식 메뉴로 갈비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외식 문화를 급속도로 변화시켰고 한식당의 테이블 중앙에 둥그런 숯불 구멍이 들어가게 된 것도 갈비라는 음식 덕분이다. 한국 말고 세계 어느 나라 음식점이 테이블 중앙에 구멍이 뚫린 나라가 있을까. 때때로 절반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나는 갈비와 돼지갈비의 경계로 인해 소득 수준이 구별되기도 했으니 그만큼 갈비라는 메뉴는 산업화를 경험했던 386세대들에게는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음식이다. 그 우아한 갈비의 옆구리를 보기좋게 제치고 서민들에게 사랑 받은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닭갈비다.

 

처음의 닭갈비는 생닭을 뼈채 얇게 저민 후에 매콤한 양념장에 재웠다가 숯불이나 연탄불에서 석쇠에 굽던 형식이었다. 어찌 보면 닭갈비라는 음식 이름으로는 뼈채 조리해서 뜯어 먹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이름이지만 지금처럼 뼈 없는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는 형태의 닭갈비는 가스가 대중화 되면서다. 지금이야 가정에도 가스가 설치되는 것을 너무 당연한 걸로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가정은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음식을 조리하는 연료가 연탄이었고 당연히 홀에서 구워먹는 불도 연탄불이었다.

 

그러다 외식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가스가 설치되기 시작했고 닭갈비도 서빙하는 방식이 즉석 떡볶이처럼 철판이나 돌판에 올려 볶으면서 먹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닭갈비를 철판에서 조리하게 되면서 뼈를 제거한 닭고기가 대중을 이루게 되고 거기에 각종 야채와 떡, 사리 등이 들어간 오늘날의 닭갈비로 정착이 된 것이다.

닭갈비라고 하면 닭에 갈비가 어디 있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닭갈비라고 해서 닭의 갈비살은 아니다. 삼국지에서 언급한 계륵(鷄肋)이라는 그 유명한 고사성어도 있듯이 닭갈비는 실제로 먹을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조조는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사물에 비유하면서 닭갈비를 먹자니 먹을 것도 별로 없으면서 버리자니 아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즘의 닭갈비는 대부분 닭의 허벅지 살로 만드는데 그 부위가 맛도 좋고 값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닭갈비에 들어가는 야채는 제철에 나오는 야채로도 충분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양배추와 고구마가 들어가야 한다. 테이블에서 볶아 먹는 닭갈비의 특징 때문에 쉽게 물러지지 않는 야채로는 단단한 양배추와 고구마가 제격인데다 영양 면에서도 이 두 야채는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닭고기에 들어있지 않은 영양 성분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야채가 양배추와 고구마다.

 

부엌의 상비약으로 불리는 영양 덩어리 양배추는 말할 것도 없고 식품 영양 학자들에게 수퍼 푸드로 인정을 받고 있는 고구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산성인 닭고기와 조화를 이룬다. 고구마에는 특히 칼슘과 칼륨이 많은데 고구마의 칼륨은 김치나 국물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한국인에게 체내의 나트륨과 균형을 잡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식품이다. 고구마는 채소처럼 감자보다도 더 많은 양의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고 노화를 억제하며 항암 작용도 한다.

 

그럼 언제부터 닭갈비 하면 춘천을 떠올릴 정도로 춘천이라는 지역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한국  음식의 특성이기도 하거니와 춘천 닭갈비도 원조 논쟁이 치열한데 한식집 간판에서 원조가 들어가지 않으면 근본없는 음식이라도 되는지 여전히 원조가 주인 노릇을 한다. 닭이야 오래 전부터 길렀으니 소고기나 돼지보다는 닭고기가 훨씬 대중적이었을 것이고 춘천에서만 닭고기를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닭갈비를 먹었는지는 문헌에 없으니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춘천에서 닭갈비라는 명칭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니 닭갈비는 당연히 춘천에서 시작한 것이다. 예전부터 춘천 지역에 양계장이 많았고 돼지갈비 대용으로 값이 저렴한 닭갈비를 술안주용으로 팔았는데 인기를 끌자 닭갈비 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그러다 1970년 말 지금과 같은 둥근 철판 형태의 닭갈비 판이 등장하면서 오늘날의 춘천 닭갈비 메뉴가 완성되고 닭갈비촌이 형성된 것이다.

 

가정식 닭갈비를 한 번 만들어 보자. 먼저 닭고기를 얇게 저며 약간의 생강즙을 넣고 간장, 맛술, 설탕, 후추 등과 잘 버무려 놓는다. 돌판이나 두터운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양배추를 듬뿍 썰어 담은 후에 양념장에 버무린 닭고기를 넣어 구마와 함께 약간의 물을 붓고 한 번 볶는다. 초벌 볶음을 한 후 고추장과 고추가루를 4대 1 비율로 하고 다진 마늘을 섞은 양념장과 대파, 양파, 당근 등 각종 야채를 넣고 볶다가 기호에 따른 사리나 가래떡 등을 넣고 참기름을 두르고 잘 볶아주면 맛있는 춘천닭갈비의 완성이다.

 

닭갈비를 거의 먹어갈 무렵 볶던 철판에 공기밥을 추가해서 참기름과 김가루를 넣어 비벼 먹는 맛도 별미다. 다소 과식할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참기름 냄새 고소한 닭갈비 비빔밥이야 말로 닭갈비에 얽힌 추억의 완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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