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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한국 음식문화의 집합체 순대국

hherald 2010.07.17 20:42 조회 수 : 137740

까칠한 셰프, 이두호의 음식세상 3

한국 음식문화의 집합체 순대국

 

우리 음식 중에 순대국 만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음식이 또 있을까. 세련된 음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순대국에서 아련한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순대국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에 더욱 그리운 음식일 것이다. 그럼 순대는 어디서 유래를 했고 순대국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순대국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순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순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소나 돼지의 창자 속에 여러 재료를 넣어 삶거나 쪄서 익힌 음식이라고 나온다. 순대의 어원을 보면 만주어인 순타(Sunta)에서 유래를 했는데 이 순타는 만주어로 창자로 만든 도시락이라는 뜻이란다. 몽골의 영향을 받은 이 창자도시락은 애초에 유목민 몽골의 전투식량이었다. 

 

징기스칸이 대륙을 정복할 때 전쟁터에서 기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식량으로 짐승의 창자에다 고기나 야채를 혼합해서 말리거나 소금에 절여 휴대를 했는데 그것을 담은 용기로 창자를 사용한 것이 그 기원이다. 징기스칸이 유럽을 침략했을 때도 이것이 유럽으로 전해져서 오늘날의 소시지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소시지가 저장식품으로 발달한 반면 우리는 돼지의 부산물로 만든 순대로 정착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음식 조리법을 엿볼 수 있는 우리의 옛 문헌에도 순대를 양이나 소, 돼지 등의 창자에다 선지와 여러 재료를 넣고 삶은 음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순대가 이렇듯 짐승의 창자로 만든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순대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성질 급한 사람을 보고 돼지 꼬리 잡고 순대 달란다는 속담도 있듯이 결국 순대의 종착역은 돼지의 부산물로 만든 음식이다. 순대는 지역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순대의 원조랄 수 있는 북녘은 찹쌀이 주재료인 반면 남녘의 순대는 언제가부터 당면이 많이 들어간 순대가 되었다.

 

순대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음식이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 돼지를 잡으면 등심이나 갈비, 족발 등은 상전이 가져가고 평민들은 고작 먹는 것이 머리고기나 내장이었다. 간처럼 즉석에서 먹어 치우는 내장도 있지만 나머지 내장은 깨끗이 손질해서 미리 받아둔 선지와 이런 저런 재료를 넣고 삶은 것이 바로 순대다. 순대는 그냥 먹기도 했지만 여럿이 먹기 위해 내장으로 국을 끓이니 그것이 순대국이었다.

 

해방 이후 대중화된 순대국은 돼지뼈를 우린 육수에 순대와 삶은 내장을 넣고 끓인 음식이다. 전통식이 뽀얀 돼지뼈 국물이라지만 요즘은 담백한 닭고기 육수도 괜찮다. 어떤 육수든지 순대국은 순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장이 필수인데 순대국에 내장이 없으면 허전하다. 내장은 다른 고기에 비해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한 특징에다 영양가 면에서도 우수한 식품이다. 순대국에 들어가는 내장은 딱 정해진 것 없이 먹을 수 있는 돼지의 내장이면 어떤 부위도 괜찮고 머리고기를 넣은 순대국도 맛있다.

 

들깨가루 없는 순대국을 상상할 수 있을까. 순대국에는 들깨가루가 꼭 들어가야 하는데 볶은 들깨가루는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를 제거할뿐 아니라 불포화지방인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오메가3 지방은 체내에서 충분히 합성되지 않기에 음식으로 섭취할 수밖에 없는데 이 지방은 등푸른 생선에도 많이 들어있는 지방산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역할도 한다. 순대국의 건더기는 소금보다 새우젓에 찍어 먹는 게 좋다. 새우젓이 내장 특유의 냄새를 감소시키기도 하지만 지방 분해 효소인 리파아제가 함유되어 있어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먹었던 음식은 나이를 먹어도 잊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음식의 습관은 평생을 두고 남아있기 마련이다. 순대국이 이런 음식의 일종으로 재일동포인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에 보면 이 지독한 음식에 대한 보수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식민지 시절 일본에 정착한 조선인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지는데 마을 사람들이 돼지를 잡으면서 선지를 받아 즉석에서 순대를 만드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이렇게 음식 문화는 차별 받으며 살고 있는 이국땅에 와서도 잊을 수 없는 향수인 것이다.

 

오늘날의 순대국은 신림동 순대촌이나 유명한 병천 순대 마을도 맛이 거의 평준화가 되었다. 이 말은 지역색이 없어졌다는 말도 되지만 그만큼 순대가 대중화 되었다는 말도 된다.

순대국은 가정에서는 만들기도 번거롭고 제맛을 내기에도 쉽지 않지만 순대국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 많은 걸 보면 여전히 향토 음식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음식이다. 고향 음식이 그리울 때 순대국을 놓고 허전한 추억을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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