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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퓨전음식의 원조 부대찌개

hherald 2010.07.17 20:46 조회 수 : 11706

까칠한 셰프, 이두호의 음식세상 5

 

퓨전음식의 원조 부대찌개

 

오붓한 한끼의 식사로 부대찌개만한 것이 있을까. 부대찌개는 한끼의 식사로도 손색이 없지만 술안주로도 괜찮은 음식인데 특히 비오는 날의 소주 안주로는 부대찌개가 그만이다. 그럼 부대찌개는 어디에서 유래를 했을까. 부대찌개는 한국 전쟁 이후에 생겨난 음식으로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은데 한국 현대 음식사에서 퓨전음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 나온 통조림과 한국의 김치가 만나서 정착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6, 25 전쟁이 휩쓸고 간 남한 땅에는 모든 것이 폐허였다. 미국의 원조로 근근히 나라의 살림을 유지하던 50년대, 민중들의 황폐한 삶에서 가장 큰 고통은 굶주림이었다. 뼛속까지 허기진 삶에서 부대찌개가 탄생을 하게 되는데 부대찌개의 원조는 놀랍게도 꿀꿀이죽이다.

 

이것은 미군 부대에 버려진 음식의 찌꺼기를 모아서 끓인 것으로 이 꿀꿀이죽을 집안에서 식구들끼리만 먹다가 부대 근처의 식당에서 팔게 되었고 음식 이름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었다고 부대찌개다.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었던 당시에 햄이나 소시지를 부대고기라고 불렀는데 서민들에게 부대고기는 아주 귀한 식품이었다.

 

초창기의 부대찌개를 섞어찌개나 존슨탕으로도 부른 것은 섞어찌개는 말 그대로 여러재료를 넣고 끓였다는 의미고 존슨탕은 부대찌개가 대중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60년대 미국의 대통령 <린든 존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미국 문화에 종속된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으로 부대찌개가 미군 부대가 있던 의정부나 동두천, 평택 송탄에서 출발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지역이 미군 부대가 있는 기지촌으로 군대가 주둔을 하게 되면 자연히 군인들의 먹을거리도 함께 따라 오기 마련이다. 군대의 전투식량은 보존성을 가장 우선하기에 부대에는 햄이나 소시지 같은 통조림 위주의 식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수퍼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흔한 식품이지만 당시의 통조림은 특권층이나 먹던 것이었다. 하긴 설탕이 60년대 상류사회의 명절 선물로 인기 있었던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부대 근처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상권이 만들어지는데 한국 현대사의 아픈 단면이지만 양공주나 미군 클럽이 대표적이다. 좋은 싫든 서민들이 미국 문화를 접하는 통로가 미군 부대였다. 더불어 주말이면 부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을 상대하는 한국인이 모이게 되고 그들을 위한 식당이 생기면서 자연히 재료를 구하기 쉬운 부대찌개가 메뉴로 정착하게 된다.

 

아무리 허기진 뱃속이지만 기름진 햄이나 소시지만 넣고 끓이면 느끼함 때문에 금방 물리게 되는데 여기에 잘 익은 김치와 각종 야채를 넣고 고추가루를 풀자 근사한 한국음식으로 변하게 된다. 나중 라면이 생산되면서 찌개사리로 라면까지 넣으니 한끼의 식사는 물론이고 훌륭한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는 오늘날의 부대찌개로 자리를 잡는다.

 

부대찌개는 김치와 몇가지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먼저 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육수를 붓고 한소끔 끓인 후에 햄을 넣는데 햄이나 소시지는 지방과 염분이 많기에 바로 넣는 것보다는 끓는 물에 한 번 데친 후에 넣는 것이 좋다. 지금도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 식당에서는 미국 제품만을 쓴다지만 굳이 그걸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한국 제품이 미국 식품보다 맛이나 안정성 면에서 떨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부대찌개는 재료가 기름지기 때문에 마늘이나 대파를 넉넉히 넣는 것이 좋고 두부나 가래떡, 라면 사리를 추가하면 한끼의 푸짐한 식사로 손색이 없다. 일부는 부대찌개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시기에 들어온 미국 문화의 찌꺼기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으나 좋든 싫든 그것도 문화의 한 흐름 아닌가. 어떻게 보면 소금물에 절여 먹던 예전의 김치도 일본에서 들어온 고추로 인해 빨간 퓨전 음식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이 땅의 모든 음식은 퓨전인 셈이다.

 

얼마전 부대찌개의 원조 마을이라고 내세우는 의정부시에서 부대찌개라는 이름이 좋지 않다고 의정부찌개로 개명을 하기도 했지만 부대찌개가 훨씬 맛있게 들린다. 이미 전국적으로 대중화된 부대찌개는 한 도시의 개명으로 독점할 수 있는 음식을 벗어났다. 입맛을 잃기 쉬운 요즘, 식욕을 돋구는 얼큰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오늘 저녁은 부대찌개를 밥상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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