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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맛있는 영양 덩어리, 고등어갈비

hherald 2010.07.19 13:48 조회 수 : 12861

못살던 시절 생선 비린내를 맛보는 것은 대단한 호사였다. 한나절을 걸어서 오일장에나 가야 사람 구경을 할 수 있고 소금장수나 이따금 들르는 내륙 지방은 특히 더 했을 것이다. 보리밥에 푸성귀와 된장국만 먹던 서민들에게 군침 도는 희망을 안겨주는 생선이 있었으니 바로 고등어다. 지금은 많이 잡히지 않아 귀족 생선이 된 조기나 민어와는 달리 아직도 값싼 생선으로 남아 여전히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하다.
 
고등어는 구이도 있고 조림도 맛있지만 오늘은 고등어갈비다. 고등어에 무슨 갈비가 있다고 새삼스럽게 고등어갈비일까. 일명 줄여서 고갈비다. 고갈비의 유래가 부산의 뒷골목에 있는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그걸 명확하게 증명할 길은 없다. 음식 이름이 변해가는 한 시대의 유물이기도 하지만 고등어는 외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부터 자반으로 구워먹던 생선이다. 단 고등어구이라고 하면 반찬에 머물러 있는 변방 메뉴 같지만 고등어갈비나 고갈비라고 부르니 좀 비싸보이는 주류 음식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옛날부터 먹어왔던 고등어 구이의 변형이 고갈비다. 얼굴 보고 이름 짓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그걸 대충 무시하고 어느 센스있는 식당 주인이 그럴 듯하게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 그만 맛있는 이름으로 굳어진 음식이 고갈비다. 성분은 그대로 두고 이름 하나 바꿔서 격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음식 개명도 이 정도라면 해볼만 하지 않겠는가.
 
영국이란 나라가 사면이 바다인 섬나라인데도 생각보다 생선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다양한 생선을 맛볼 요량으로 조금 큰 마트엘 가도 연어를 비롯한 몇가지 생선뿐 수많은 생선 종류가 진열되어 유혹을 하는 한국의 어물전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밖에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 먹거리의 주류는 생선이 대세다. 1970년대 덴마크의 한 의사가 생선과 바다동물을 주식으로 하는 그린란드의 에스키모인에게 심근경색 환자가 거의 없는 점에 주목한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고 많은 영양학자들이 단백질 섭취 식품으로 육류보다 어류를 권장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연어가 수퍼 푸드로 인정을 받고 있고 더불어 참치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이 갖고 있는 우수성은 단연 돋보인다.
 
고등어는 값이 싸면서도 영양이 풍부해 바다의 보리라고 불리는데 꽁치, 청어와 함께 등푸른 생선에 속하는 대표적인 식품이다. 우리의 옛 문헌에는 고등어를 고도어(高道魚), 고도어(古刀魚)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가장 직위 높은 물고기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 이름에 담긴 것 만큼이나 고등어에는 영양가가 많은데 고등어 하면 DHA를 빼고는 얘기할 수가 없다. 고등어에는 사람의 성장이나 정상적 생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지방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등푸른 생선을 꾸준히 먹으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기억력에 탁월한 성분인 오메가-3 지방산의 함유량이 높아 건뇌식품으로 각광받는 생선이다. 뇌의 기억력을 높이는 DHA는 뇌의 지방질에 약 10% 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부족하면 뇌기능에 중요한 세포막의 작용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식품으로 DHA 섭취는 아주 중요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쓴 어류학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어김없이 고등어가 나오는데 등이 푸르고 등 무늬가 뚜렷했기 때문인지 벽문어(碧紋魚)라고 기록하고 있다. <몸이 둥글고 비늘이 매우 잘며 맛은 달콤하고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만들 수 있으나 회나 어포로는 만들지 못한다>고 소개하는 걸 보면 고등어가 쉽게 상하는 생선임을 말해 주고 있다.
 
고등어가 다른 생선에 비해 유독 소금에 절인 자반이 발달한 것도 그 이유다. 오늘날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 속해 있는 안동의 간고등어가 유명한 것도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의 음식 유산인 셈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생선의 저장 수단은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것뿐이었다. 고등어갈비의 시초는 이 자반고등어를 구운 거였다.
 
가정에서도 쉽게 고갈비를 만들 수 있다. 고등어를 한쪽에만 뼈가 붙어 있는 형태의 두장 뜨기를 해서 약간의 소금과 생강즙을 뿌려 냉장고에서 잠시 숙성시킨다. 그동안 양념장을 준비하자. 간장에 맛술과 다진 마늘, 후추,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고 잘 섞어 살짝 끓인다. 매운 고갈비를 원하면 여기에 고추가루를 첨가하면 된다.
 
맛있는 고갈비의 포인트는 어떻게 생선을 굽느냐에 달렸다. 투터운 후라이팬에 넉넉히 기름을 넣고 전분을 묻힌 고등어를 튀겨내듯 굽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뚜껑 달린 팬에 기름을 적게 두르고 겉만 노릇하게 익힌 후에 약간의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아 익히는 방법이다. 기름을 적게 먹는 후자가 웰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바삭한 고갈비를 원한다면 앞의 방법이 좋다. 어떤 방법으로 굽든 뜨거운 고등어 위에 잘게 썬 대파를 올리고 끓인 양념장을 솔솔 뿌리면 맛있는 고갈비의 완성이다.
 
고갈비의 단점은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는 것인데 이것은 양념장에 식초나 커피가루를 조금 넣거나 먹기 전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면 어느 정도 비린내를 억제할 수 있다. 무더위에 지치기 쉬운 요즘 체력증진과 뇌세포 활성화를 위해서 오늘 저녁 식탁에는 고등어갈비를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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