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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잔치상의 단골 메뉴 잡채

hherald 2010.07.17 20:53 조회 수 : 14647

까칠한 셰프, 이두호의 음식세상8

 

잔치상의 단골 메뉴 잡채

 

우리나라 잔치상에서 빠지지 않는 요리 중 하나가 잡채다. 결혼식 피로연에는 물론이고 집들이 잔치에도 잡채가 빠지면 어딘가 허전한 걸 보면 잔치 음식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는 음식이다. 잡채의 어원은 한자말 잡채(雜菜)로 섞일 잡(雜), 나물 채(菜), 즉 여러가지 나물을 한데 섞어 먹는 음식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엔 잡채 하면 당면이 주재료인 일종의 국수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의 전통 잡채는 나물류였다.

 

옛 문헌에도 오이, 무, 도라지, 박고지 등을 가늘게 찢어 녹두기름과 함께 양념한 것을 잡채라고 했듯이 요즘으로 치면 여러가지 야채을 섞은 야채샐러드 같은 채소요리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채가 보통 나물을 의미하지만 중국음식에서는 채(菜)라고 하면 보통 완성된 하나의 일품요리를 말한다. 오늘날의 잡채가 우리의 전통 음식에서 중국식이 가미되어 정착한 음식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채에는 식재료의 가열 여부에 따라 생채(生菜)와 냉채(冷菜) 숙채(熟菜)가 있는데 생채는 날것 그대로 채를 쳐서 양념한 것이다. 냉채는 새우나 해파리 같은 해산물이나 찢은 닭고기에 오이, 당근 등 각종 야채를 가늘게 썰어 섞은 후 차게 만든 것이고 숙채는 채 친 것을 익혀서 양념한 것을 말하는데 잡채는 바로 숙채의 일종이다. 이 외에도 잡채 요리로는 탕평채, 겨자채, 월과채 등이 있는데 탕평채(蕩平菜)는 청포묵을 가늘게 썰어 각종 야채와 함께 버무린 음식이고 월과채(越果菜)는 애호박을 초승달 모양으로 썰어 쫀득한 찰전병과 함께 무쳐 잡채처럼 만든 음식으로 모두 궁중에서 먹던 별식이었다.

 

조선조 임금의 행적을 기록한 광해군일기에는 이충이라는 사람이 광해군 밥상에 잡채를 올려 임금의 환심을 산 덕에 권력을 누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잡채가 요금엔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당시에는 임금의 입맛을 사로 잡을 만큼 꽤 고급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이충이 올린 잡채가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광해군은 식사 때마다 꼭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고 한다.

 

그럼 오늘날처럼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은 언제부터일까. 호면(胡麵)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당면(唐麵)은 녹말을 원료로 한 마른 면으로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요즘의 당면은 고구마나 감자 전분을 사용한 당면이 대부분이지만 원래의 당면은 녹두로 만들었다. 녹두를 갈아 만든 앙금을 반죽해서 국수틀에 내려 끓는 물에 익힌 후에 건조시킨 면이다.

 

우리나라에서 당면이 생산된 것이 1920년 경이니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은 그 이후였을 것으로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 1920년 황해도 사리원에 당면 만드는 기술을 가진 중국인 종업원을 고용한 공장에서 당면이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서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나물로 만든 우리의 전통 잡채가 국수 요리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잡채는 중국식인 셈인데 중국집에도 잡채가 있기는 하지만 고추잡채나 부추잡채 등 우리의 당면 잡채에 비해 세분화 되어 있다.

 

어쨌거나 이 당면 잡채가 한국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잡채는 전채로도 좋지만 누들을 좋아하는 서양인에게 메인으로도 무난한 음식이다. 잡채는 당면만 있으면 특정한 야채를 한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재료를 기름으로 볶고 당면이 많이 들어간 잡채는 칼로리가 꽤 높은 편이라 가정에서 만들 때는 기름을 적게 넣고 면을 조금 줄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고기보다는 새우나 해삼을 데쳐서 넣어도 좋고 여기에 각종 버섯이 듬뿍 들어간 잡채는 열량 걱정도 덜면서 영양가 높은 건강식을 섭취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잡채를 만들 때는 번거롭기는 하지만 야채를 한가지씩 차례대로 볶아서 큰 볼에 넣은 후에 마지막에 삶은 당면을 넣어 버무리는 것이 재료의 색상을 살리는 방법이다. 그리고 시각적인 효과를 살리기 위해 파란 시금치, 하얀 배추, 빨강 피망, 검정 버섯(목이나 표고) 등이 들어가면 훨씬 먹음직스럽다.

 

잡초나 잡종처럼 일반적으로 잡(雜)자가 들어간 단어를 보면 좋지 않은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잡채는 한국음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메뉴로 손색이 없다. 잔치상에만 올라오는 음식이 아니라 일품요리로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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