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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신체언어와 투덜거림 규칙
보통 당신이 새치기를 해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벌은 눈살 찌푸림, 눈총, 경멸, 모욕의 눈길, 깊은 한숨, 헛기침, 업신여기는 콧방귀, 혀 차기와 투덜거림 ("아이구,나 참!" "빌어먹을" "허, 전형적인" "저런......!") 등이 고작이다. 줄 선 사람들은 이런 모욕주기로 당신을 줄 맨 끝으로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인의 규칙을 깨지 않고, 직접 항의하여 생길 수 있는 소동을 일으키지도 않고, 난리법석을 떨지 않으며, 주목 받지 않으면서 조용히 일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얄궂게도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주 말을 섞어 부인의 규칙을 깬다. 새치기꾼 한명이 본의 아니게,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눈썹 추켜올리기, 눈동자 굴리기, 입술 오므리기, 머리 흔들기, 혀 차기, 한숨, 심지어는 조용히 한소리 하기까지도 교환하게 만든다. 줄 선 사람들끼리 "여보세요, 여기 줄이 있어요!" "우리는 안 보이는 거야? 뭐야 도대체!" 라고 들릴 듯 말 듯하게 한마디 하고 혀를 차는데 이런 건 원래 새치기꾼한테 직접 해야 한다. 정말 어쩌다 용감한 사람이 새치기꾼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 지른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새치기꾼 쪽을 보고 있지 않다가 무의식중에 눈을 마주친 것처럼 흘끗 보고는 즉시 돌려버린다.
보기에는 허약하고 비논리적인 것 같지만, 이런 간접적인 방법이 놀랄 정도의 효력을 발휘한다. 물론 어느 나라보다 영국에서 새치기하기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그 추켜올린 눈썹, 기침, 혀 차기, 투덜거림의 창피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다른 말로 당신이 영국인이 아니라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숱한 관찰을 통해 나는 외국인은 줄 선 영국인들의 혀 차기와 분노의 신호들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영국인 새치기꾼은 빗발치는 한숨과 구겨진 표정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일단 새치기를 하고 나면 뻔뻔스럽게 태연한 척하겠지만, 그런 취급을 일단 받고나면 다음번에는 한번 생각해볼 것이다. 많은 경우 무언의 표시만으로도 새치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나는 새치기꾼이 접근해 오다가도 줄 선 사람들의 경멸에 가득찬 눈, 경고의 기침, 그리고 약간 텃세를 부리는 몸짓에, 재빨리 다시 생각해본 뒤 금방 꼬리를 내리고 줄 뒤로 돌아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때때로 새치기꾼에게 직접 항의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들릴 만한 투덜거리는 소리는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심지어 거의 다 성공한 단계에서도 그렇다. 이런 경우 양쪽의 행동과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줄 선 이는 투덜거린다(옆 사람이나 혹은 특별히 누구랄 것도 없이). "오, 나에게는 신경 쓰지 마세요!" 혹은 그와 비슷하게 비꼬거나 조롱한다. 새치기꾼은 눈을 크게 뜨고 몰랐다는 듯이 "오,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앞에 있었나요?" 라고 한마디 하고는, 바로 옆으로 물러서면서 투덜거린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그런데 이제 상황은 바꿔어 투덜거린 사람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는가 하면, 눈을 피하기 시작한다. 보통 그 불편의 도는 조롱의 불쾌함에 비례한다. 단순한 실수에 너무 무례하게 반응한 셈이 되어, 배역이 바꿔어버렸다. 투덜거린 사람은 원래 자리를 되찾았으나 고개를 숙이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사과하는 듯한다. 분명 유쾌한 것 같지도 않고 승자의 환희도 못 느끼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일단 새치기꾼이 사과를 하면, 투덜거린 이가 특별히 겸손한 사람이라면 아예 뒤로 물러서면서 "오, 아니오. 괜찮아요. 그냥 들어오세요"라고 한다.

투명한 안무가 규칙
만일 영국인이 단호하게 "미안합니다만 여기 줄이 있는데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창피함과 적대감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우리의 전형적인 반응은 심리치료사들이 '수동적 적대행위'라 부를 만하다. 그 심리치료사가 이 글을 읽으면 전국민을 단호함 훈련 코스로 보내자고 할 것 같다.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단호함은 정말 우리와 거리가 먼 덕목이다. 우리는 노골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비뚤어지고, 효과가 없는데도 수동적으로 호전성을 내보이기도 한다. 또 반대로 지나치게 공손해지는 자기비하에 빠지고, 너무 절제하는 소극적인 체념으로 후퇴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한다. 우리는 사교적으로 능숙하고 합리적으로 단호한, 성인의 행복한 중용에는 결코 이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영국 사람이 의사소통 기술 코스에서 배운 것처럼 바르고 이성적이고 단호한 행동만 한다면, 세상은 끔찍하게 지루할 것이고, 그들을 쳐다보는 나 역시 정말 재미없을 듯하다.
어쨌든 영국인의 줄서기에도 긍적적인 면이 있다. 앞에서 예를 든 계산대에서 점원 두 명이 계산하고 있는 애매모호한 경우에는 간단하고도 조화로운 방식으로 법석 떨지 않고 문제가 조용히 해결된다. 계산대 1미터 정도 떨어져 한 줄로 서서 점원 중 하나의 손이 비면 그리로 가면 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국인이라면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기를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라고 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하니 말이다. 우리는 이런 일에서는 당연한 듯이 행동한다. 실은 투명인간 같은 공정한 안무가가 우리 행동을 조정하는 것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깔끔하게 민주적으로 줄을 선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한 많은 외국인은 이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경악스러운 일로 여긴다. 빌 브라이슨은 영국에 관한 책에서 이와 똑같은 줄서기 시나리오를 격찬하고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었으나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고 그냥 좀 과장이라고 짐작한 미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그들은 심지어 퍼브의 '보이지 않는 줄' 작용구조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가까운 퍼브로 끌고 가서 내가 그것을 지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밖에 없었다.

페어플레이 규칙
그런데 더 작고 미묘해서 관찰력이 아주 예리한 외국인조차 잘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가 매일 지키는 줄서기 예절이 있다. 내가 대충 정리한 현장조사 노트에는 기차역 커피숍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내 앞에 있던 남자 하나가 냉장고에 있는 샌드위치를 꺼내기 위해 잠시 줄을 떠났다. 그리고 줄로 돌아와 자기 자리가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긴가민가 한 표정으로 주저한다. 나는 그게 아니라는 뜻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자리를 내주고, 그는 그 자리로 돌어오면서 내게 고개를 약간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한다. 물론 말도 없고 눈 마주침도 없었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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