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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1.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에서 살아남기(2)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런던 미술관에서 미술사적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미술사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고 미술관에 들어 갔으나 생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때의 패배의식은 미술관을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매우 불편한 곳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변비환자처럼 쥐어짜기를 시도해야만 한다. 어찌하건 무언가를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미술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도 상관없다. 런던 미술관들은 그러한 관람객들의 엉뚱함을 너그럽게 이해해주기 위해 공짜인지도 모른다(!). 책에서 배운 7할의 지식보다 미술관에서 그림들을 보며 직접 자신의 것으로 만든 3할의 지성이 훨씬 유용한 곳, 그곳이 바로 런던의 미술관들이다.

 

원근법이 근세 서양미술의 형식을 이끌어낸 가장 중요한 테크닉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고, 대화가들의 다양한 원근법적 기교를 둘러보았다면, 이제 그 원근법이 어떻게 다시 찬밥이 되는가를 살펴보아야한다. 원근법이 가져다 준 미술의 승리, 즉 사실적 공간의 재현이라는
뿌듯함이 그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서양미술에는 400백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내셔널갤러리 모네의 그림들 앞에 서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 햇빛에 반사된 뿌옇게 흩날리는 공기들과 점으로 표현된 멀리 있는 사람들(遠人)을 바라 보면서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면, 당신은 런던 미술관에서 살아 남은 자다.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이나 사물의 현상을 표현하려고 한 인상파는 원근법에 사로잡혀 허송세월한 서양미술사에 신선한 충격을 준 메가톤급 무혈혁명이며, 사실상 현대미술을 탄생시킨 진짜 아부지다. (홍길동이 아닌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살자!)

 

빛에 집착한 인상파는 원근법이 만들어주는 삼차원적 공간감각이 사실은 그럴듯한 허구였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고 있지만 정작 시간 앞에서 무력하고 서투른(!) 붓놀림일 뿐이었다. 선원근법과 색채원근법을 구사하여, 뭉게구름이 떠가고 실개천이 흐르며 물레방아가 돌고 있는 풍경화를 곱게 그렸다고 하자.  

 

그 구름들은 이 세상에는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조합일 뿐이다. 오분 전의 구름과 일분 전의 구름이 뒤섞여 있을테니까. 실개천을 흐르고 있는 H2O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섬세하지만 굼뜬 인간들의 붓이, 연신 돌고 있는 물레방아의 어떤 순간을 잡을수 있단 말인가? 인상파들이 빠른 야외스케치에 주목한 것은 그 때문이다. 가능한 현실과 유사한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프랑스 인상파들에게 그런 노력의 전거를 제공한 사람들은 콘스터블과 터너 같은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들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과 싸웠던 콘스터블을 필자는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한인헤럴드에 연재했던)'에서 '구름아저씨'라고 부른바 있다. 그는 변화하는 하늘을 잡으려 몸부림친 진정  위대한 화가였다. (콘스터블의 스케치들은 정말 아름답다.)

 

멀리 있는 사람들(遠人)을 점으로 표현한 모네의 그림은 실제로 당시 미술계에 현기증을 제공하였다. "아무리 보이는대로 그린다지만, 우리가 그 형상을 익히 아는 인간의 모습을 어찌 점으로 표현한단 말인가?" 당시 서양미술계의 그런 의구심은 기우였다. 동양미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정확한 원근법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원인(遠人)은 눈이 없고 원수(遠水)는 물결이 없다'는 말은 멀리 있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고 멀리 있는 바다는 물결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일진저, 중국의 원근법 역사는 서양을 앞서며 11세기부터 이미 회자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상파의 그림은 서양미술이 놓치고 있던 더 깊은 원근법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지도 않는 눈과 물결을 그려 왔던 서양미술의 전통이 새파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 처참히 쓰러진 것인데, 내셔널갤러리는 그런 흔적들을 비교적 소상히 소장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서 가장 충실히 전통과의 단절을 주장한 위대한 화가는 모네였던 것 같다.

 

서양미술이 보이지 않는 것을 눈도 깜짝 않고 그려내는 대범한 위선의 전통을 지니게된 것은, 오랫동안 대세였던 종교화들의 영향이 크다. 교회가 용납하는 안에서 얼마든지 망상이 가능했던 상상화로서의  종교화는 미술사적으로는 답보의 아이콘이었지 싶다. 교회의 고정관념과 싸웠던 카라바조같은 화가들의 노고가 오늘날 대단히 돋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던 서양미술의 원근법 표현이 인상파에 이르러 그 차원을 달리하게 된 것을 살펴보았다면, 당신은 내셔널갤러리에서 가뿐히 살아남은 자다. 이제 좀더 나아가자. 바로 세잔 그리고 고호, 문제의 두 인물을 볼 차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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