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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내셔널갤러리에 존재하는 네가지 인간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죽은 척하는 인간

먼저 내셔널갤러리에서 '죽은척 하는 인간', 그는 미술의 역할과 미술관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키려는 인간이다. 너무도 세속적이 되어버린 현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할 대안의 하나가 미술 안에 있으리라고까지는 상상도 못해본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교양과 문화소양에 대해 후한 점수를 매기면서도, 미술을 외면하는 자신의 태도가 일종의 현대병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또한 잘못된 미술교육을 받은 한때의 불행했던 인간이다. 고학력자인 그는 미술이라는 예술의 특징에 대해 제대로 배웠거나 학습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미술도 다른 과목과 같이 점수가 배당된 숙제였을 뿐이다. 점수를 따기 위해 엑조틱한 화가들의 이름을 외우거나 미술사조의 따분한 이름을 외워야했을 뿐이다. 느낌이나 감성이 철저히 매몰되었던 교육현장의 희생자인 셈이다.

그러나 죽은척 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다분하다. 그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관을 거부하려는 것일 뿐이지 미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척 하는 인간의 특징의 하나는 예술에 무관심한척 하지만 의외로 대중예술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체적으로 연예인의 삶에서 로망을 바라보고 있다. 그에겐 미술같은 순수예술은 앞뒤가 꽉막힌 고지식하거나 교조적인 인간들의 전유물이다.

그는 세상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미술을 외면해야 한다는 황당한 상황 속에 갇혀있는 셈이다. 그는 패션과 유행에 민감하고 이십일세기 치열한 물신화시대의 균형감각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술의 예술으로서의 재생산 방식이나 위력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따라서 그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미술의 파급력이 아니라 당장눈에 보이는 유행과 시대상이다. 

 

 

2.죽은 인간

회복 가능성이 충분한 '죽은척 하는 인간'에 비해 보다 절망적이고 구제불능인 것은 '죽은 인간'이다. '죽은 인간', 그야말로 미술관들이 가장무서워하는 공포의 인간형이다. 그는 대체로 타협 불가능이며 일방적이다. 그는 좀처럼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미술관은 맘에 들지 않는,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같은 존재여서 가끔 만나야하지만 절대로 정을 줘서는 안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미술관 따위가 아니다. 그는 너무도 정확한 경제관념의 소유자여서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보장되지 않는 미술관따위에 시간과 정열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돈과 관련된 분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천문학적 금액에 거래되는 피카소나 고호의 그림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그림들이 자신의 경제적 상식을 뒤엎어버리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근거없는 그림의 가격에 어떤 명분이나 구실도 붙이고 싶지 않다.

그에게 미술관은 죽어있는 공간이다.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못할 무용의 공간일 뿐이다. 그는 미술관이 죽어있는 공간이라고 믿음으로써 자신이 미술관에서 '죽은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에게 제공될수 있는 기회란 미술관이 미술을 버릴때만 가능하다. 비극이다.

 

 

3.살아있는 척하는 인간

그리고 내셔널갤러리에는 '살아있는 척하는 인간'이 있다. 그는 미술관에서 살아있을 만큼의 자질과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미술을 공부하였으며 화가와 그림의 맥락에 대하여 연구한바 있다. 
그는 고호의 '해바라기'에 몇마리의 해바라기가 살고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록비비너스'의 거울이 보여주는 오류를 잘 알고 있고, 프란체스카의 요단강이 보여주는 굴절된 풍경의 의미까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내셔널갤러리에서 여전히 어색한 인간이다. 왜 그럴까? 예술은 결코 지식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경지가 없다면, 예술 안의 지식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때때로 그림에 빠진 우리는 그림이 예술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되는데 그 오류가 반복되어 쌓여 일상이 된 인간형이 바로 '살아있는 척하는 인간'이다.

그는 그림을 볼줄 알지만 그 안에 자신을 담아넣지 못한다. 그는 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책에서 읽은 것들 뿐이다. 그는 평론가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믿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주변의 인간들을 단지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그의 목적은 그림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는 척 하기다. 그러므로 그의 감상에는 순수함이 없고 마치 프로파간다같다. 그는 안타깝지만 아직도 노예도덕의 소유자다.

 

4.살아있는 인간

'살아있는 인간', 그는 미술적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셔널갤러리의 진정한 승리자다. 그는 때로 자신이 모르는 지식의 음습함을 상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어린이같은 순수한 마음을 숨겨두었다가 필요할때 꺼내어 든다. 그는 미술관에서 만큼은 니체의 위버멘쉬처럼 중력의 영에 짓눌리지 않는 새로운 인간형이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무장된 초자아이다.

따라서 그는 그림감상이 자신의 생을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믿고 있다. 보다 풍성한 삶 속에 서려는 주인도덕의 소유자이며 그림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희열을 경험하고 있다.  바둑판 안의 흑돌 한점같은 현대인의 무의미함과 일수불퇴의 허망함에 대해 그는 뭔가 알고 있는듯 하다. 그도 남들에게 들키는 슬픔의 소유자자지만 그는 남들에게 들키지 않는 기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스스로 의미가 되고 가치가 되는 그의 생은, 표현하는 생이다. (내셔널갤러리편 끝)

 

 

최동훈

Coombehi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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