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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0
용과 싸우는 조지/ 틴토레토
Saint George and the Dragon/ Jacopo Tintoretto

 그림.JPG

용을 잠재우는 거친 숨소리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화가를 드러낸다.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화가의 분신이다.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화가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열정을 보여준다. 고호라는 외로운 사나이의 부황든 열정은 화려한 색감으로 우리에게 행복의 형태를 묻는다. 잭슨폴록이라는 터프한 사나이의 취한 열정은 혼돈 속에서도 찾아가야 할 우리의 길을 자기 멋대로 제시한다. 세잔이라는 털보의 황당한 열정은 우리를 집 나온 가출 청소년처럼 피곤하게, 그리고 자유케 한다. 화가의 열정이 드러나는 그림을 보며 우리는 가출한 우리들의 열정이 지금쯤 갑자기 귀가하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열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인간이 열정의 동물임을 확인한다. 서양미술사는 깊은 열정을 소유했던 화가들에 의해 그 진로를 모색해 왔다. 그들의 열정은 심히 무모한 시작에서 출발하였지만, 진정성이라는 무기로 세상을 굴복시켰다. 서양미술사는 그런 지나친 열정의 소유자들이 수행한 반항의 역사다. 반항, 시쳇말로 한다면 ‘개김’의 역사다. 인상파에 의해 그 정점을 찍게 되는 서양 미술사 최초의 ‘개김’을 매너리즘(Mannerism)으로 보고 싶다.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미를 거부하려는 몸짓의 표현이 매너리즘이 되었다면, 그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화가로 베네치아의 거장 틴토레토(1518~1559)를 기억해야 한다. 그의 굉장한 그림 한 점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 바로 ‘용과 싸우는 조지(1558)’다.

 

틴토레토는 후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베네치아 화가, ‘미켈란제로의 소묘와 티치아노의 색감’을 추구했다는 대가다. 그의 작품 중 소품에 속하는 이 그림은 성조지가 용과 싸우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수많은 화가들이 재현하려 하였던 테마다. 역사적 인물의 전설에 가까운 이 장면을 틴토레토만큼 극적으로 표현한 화가가 또 있을까 싶다. 틴토레토는 힘있는 표현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살리는 데 있어서 만큼은 독보적이었다. 그는 어두운 배경의 창시자로도 불리는데, 거칠지만 힘있는 묘사로 르네상스의 원숙미와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그림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화가다. 그는 왜 선배들처럼 곱고 깔끔하게 그림을 마무리하거나 스푸마토 기법으로 차분한 윤곽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이 그림은 틴토레토의 역동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의 하나다.

 

기독교 초기 성인의 하나인 조지와 용의 전설을 묘사하고 있다. 매일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를 강요하던 악마 같은 용에게 드디어 공주마저 바쳐질 차례, 하지만 먼 곳에서 달려온 기사 조지가 긴 창으로 단번에 용을 제압한다. 조지는 공주의 허리띠로 용을 묶어 도시로 가져온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괴물을 물리친 조지를 보고 사람들은 개종하게 된다. 용을 물리치는 바로 그 순간을 묘사하며 틴토레토가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은, 극적인 순간의 장엄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지그재그형의 구도로 그려진 이 그림은 두 주인공의 극적인 반대 운동감이 돋보인다. 창을 겨누고 용에게 돌진하는 조지의 운동감은 우리의 시각을 왼쪽과 뒤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반면 붉은 망또를 두르고 앞으로 넘어지고 있는 공주는 오른쪽과 앞쪽으로 우리의 시각을 잡아 당기고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운동감은 우리에게 마치 강렬한 격투기장의 앞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중간에 쓰러진 희생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된 성자(聖子)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밑둥만 남은 나무와 화면 밖으로 튀어 나가는 듯한 나무의 거친 질감도 극적인 현장을 전해주려는 듯 하다. 먹구름 사이에서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 보는 성부(聖父)는 오른 손을 들어 빛의 전지전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조지와 공주에게는 성령(聖靈)이 임한 모습을 암시하는 하일라이트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 거칠고 긴장감 넘치는 그림에서 틴토레토의 거친 호흡과 열정을 느낀다. 그 열정은 물론 기적의 장면을 연출하려는 화가로서의 열정이다. 세상이 완벽하다고 믿는 그림의 미를 뛰어넘으려는 집념의 표현이다. 인위적인 미가 그림 속의 미를 능가하는 매너리즘식 표현의 뿌리를 틴토레토에게서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곱고 완벽한 마무리가 일반적이었던 르네상스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법이었을 이   과감한 표현은 한때 틴토레토를 과소평가하게 만든 이유가 되기도 하였지만, 화가의 거친 열정을 그림의 극적 분위기에 맞춰 완벽하게 보여준, 화가들의 ‘개김’의 역사를 여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화가의 표현이 화가의 것이라는 단순한 이치가 틴토레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화의 진정한 뿌리를 틴토레토로 보는 시각도 그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화가의 열정은 세상의 이해관계로 평가할 수 없다, 그림을 보는 우리의 열정을 재산관계나 외모나 학력 따위로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열정의 거친 숨소리는 오직 우리의 가슴만이 느낄 수 있는 바람소리 같은 것이다. 그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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