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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빅토리아 시기 동안 영국 제국은 인도 전체와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많은 부분을 거느린 대제국이 되었다. 그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었으며 제국의 전체 인구는 4억 명을 웃돌았다. 당시 정부는 많은 사람을 영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하도록 권장하였다. 1853년과 1913년 사이에 약 천 3백만 명의 영국 국민이 본국을 떠났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영국으로 사람들이 지속해서 유입되었다. 일 예로 1870년과 1914년 사이 약 12만 명의 러시아와 폴란드 유태인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탈출했다.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다. 많은 사람이 런던 동부 끝과 맨체스터 그리고 리즈에 정착했다. 인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제국의 식민지에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교육을 받을 목적으로 영국에 몰려왔다.

무역과 산업

영국은 대규모 무역을 지속적 수행하여 거대한 무역 국가가 되었다. 정부는 자유무역 정책을 장려했고 수입품에 대한 많은 세금을 폐지했다. 이 중에 한 예가 1846년 옥수수법의 폐지였다.이러한 폐지는 싼 농작물의 수입을 막아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혁은 영국 산업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원재료가 싼 가격에 수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장에서의 작업 환경은 점차 나아졌다. 1847년, 여자와 아동들의 노동시간이 하루에 10시간 내로 법으로 제한되었다. 노동자들을 위한 좀 더 나은 주택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운송 연결망이 향상되어 상품과 사람들이 국가 전체를 더욱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빅토리아 여왕 바로 전 시대에 조지와 그의 아들, 그리고 로버트 스테판슨이 철도 엔진을 개발했고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철도가 확장되었다. 철도는 대영제국 전체에 걸쳐 건설되었다. 다른 부분에서도 거대한 진보가 있었다. 이삼바드 킹덤 부루넬과 같은 기술자들에 의해 다리가 건설되었다.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1806-59)

브루넬은 원래 잉글랜드의 포츠머스 출신이었다. 그는 터널과 다리, 철도와 배를 건설하는 기술자였다. 그는 대 서부철도 건설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이것은 영국 내에 건설되는 최초의 대규모 철도였다. 이 철도는 런던의 패딩톤 역에서 잉글랜드의 남서쪽과 미들랜드 서쪽 그리고 웨일즈까지 운행된다. 브루넬이 건설한 많은 다리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이 설계한 클리프톤 현수교는 아본 조지 브리티시 산업을 19세기에 전 세계로의 확장까지 이어졌다. 영국은 철강과 석탄, 그리고 면직물에서 세계의 절반 이상을 생산했다. 1851년 거대한 철제와 유리로 건축된 크리스탈 팔라스가 있는 하이드팍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에는 거대한 기계에서 수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되었다. 세계 전역의 나라들이 참가하여 그들의 상품을 전시했으나 대부분의 상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크림전쟁

1853년에서 1856년 영국은 터키, 프랑스와 함께 러시아들 대상으로 크림반도에서 전쟁을 치렀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와 사진을 통해서 대중 매체를 통해 완전히 중계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상태는 최악이었고 많은 병사가 부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의 열악한 환경에서 발생한 질병으로 죽어 나갔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전쟁 동안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수여했다. 이 훈장은 병사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명예였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31살 때, 그녀는 독일에서 간호사 훈련을 받았다. 1854년 그녀는 터키로 가서 군 병원에서 일하며 크림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치료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 간호사들은 병원 환경을 개선했고 사망률을 줄여나갔다. 1860년 그녀는 나이팅게일 간호사학교를 런던 성 토마스 병원에 세웠다. 그 학교는 간호학교로는 최초의 학교로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플로렌스가 사용했던 많은 실습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현대 간호의 설립자로 평가되고 있다.

19세기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상황은 영국의 여타지역보다 열악했다. 인구의 3분의 2가 여전히 농장에서 일하며 그들의 삶을 유지해야 했다. 이러한 농장은 종종 매우 협소한 땅이었다. 19세기 중반 감자 농사가 망쳐서 아일랜드는 기근을 견뎌야 했다. 백만 명의 사람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다른 백 오십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났다. 일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일부는 잉글랜드로 건너왔다. 1861년 리버플, 런던, 맨체스터와 글라스고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많은 인구가 살았다.

 

투표권

부유한 산업 도시들의 중산층들의 영향력이 향상됨에 따라 그들은 저 많은 정치적 힘을 요구했다. 1832년의 개혁법은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를 증대시켰다. 이 법은 토호세력의 선거구(old pocket)와 썩어빠진 동네 선거구를 폐지했고 더 많은 국회의원 의석을 중, 소 도시에게 넘겨줬다. 시골에서 도시들로 영구적 정치권력이 이동되었으나 투표는 여전히 재산을 소유한 것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은 여전히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노동자 계급과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투표권 요구 운동이 시작되었다. 차티스트(인민헌장 주의자)로 불리는 운동권자들이 국회에 탄원했다. 처음에는 실패할 것으로 보였으나 1867년 새로운 개혁법이 탄생되게 만들었다. 이 개혁법은 도시지역에 더 많은 국회 의석수를 늘렸으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재산액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는 여전히 투표권이 없었으며 여자는 투표권이 아예 없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증가로 인해 자신들에게 투표해줄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당들은 일반 유권자들과 연계될 수 있는 조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편적 선거권(모든 성인, 남자와 여자가 투표할 수 있는 권리)이 다음 세기에 뒤따랐다.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영국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권리가 적었다. 1870년까지 여자가 결혼했을 때 그녀의 수입과 재산, 그리고 돈은 자동으로 남편에게 귀속이 되었다. 1870년과 1882년 의회의 법은 아내들에게 자신들의 수입과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주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더 많은 권리, 특히 투표권을 갖기 위해 운동과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여성 유권자 운동을 형성했으며 이것은 ‘여성 참정권자’(스프라게트suffragettes- 라틴어로 support 곧, 지지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에멀린 판허스트(1858-1928)

에멀린 판허스트는 1858년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889년 여성들의 선거권 연맹(Franchise League)를 조직하고 결혼한 여성들이 지역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선거권을 갖기 위해 싸웠다. 1903년 그녀는 여성들의 사회 정치 연합(WSPU)을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여성 참정권자’들로 불리는 최초의 단체였다. 이 단체는 여성들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그들의 항거일부로써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철도에 자신들을 묶고, 창문을 깨고 방화를 일으켰다. 에멀린을 비롯한 많은 여자가 단식 투쟁을 계속했다.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권과 국회의원 후보자격이 주어졌다. 이러한 권리가 주어진 것은 1차 대전 동안 여성들이 전쟁에 기여한 공로를 부분적으로 인정해주는 의미도 있었다. 1928년 에멀린이 죽기 바로 전, 여성들에게도 남자와 같이 21세 때 투표권을 행사할 권리가 주어졌다.

 

박필립 칼럼리스트(www.facebook.com/thamespark)

굿모닝런던 발행인

영국 안중근청년아카데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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