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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음악으로 만나는 런던-24
비지스 이야기 
 
위대한 유행가 삼형제
팝은 우리의 추억 속에 앉아 있다. 추억의 소지품처럼, 혹은 추억의 배경음처럼 우리 인생의 풋풋했던 순간들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 팝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팝송의 아련한 멜로디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 그 인간과 함께 했던 그 아찔한 순간, 커피숍에서 흐르던   미묘하게 아름답던 그 신비의 멜로디. 젊음의 황당한 체온을 주체하지 못하고 활보하던, 명동이나 종로에서 흘러나오던 기분 나쁠 정도로 멋있던 그 멜로디. 미성년자라는 억울한 딱지를 떼고 난생 처음 들어가본 술집에서, 뜨거운 열기로 공간을 지배하며 화산처럼 폭발하던 그 웅장한 멜로디. 누구에게나 추억이 존재하듯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구에게나 팝이라는 음악도 존재한다. 추억이 없고 역사만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우리 모두는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정신과 의사들의 밥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추억은 우리를 이 험한 역사의 세파 속에서 매 순간 살아 남게 만드는 아름다운 힘의 원천이다. 추억 속에서 흐르는 팝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필자가 추억 속의 팝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지스(Bee Gees)다. 그 겨울,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필자는 광화문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친구들과 서툴게 그린, 수제 크리스마스카드를 팔고 있었다. 말이 판매지 거의 강매 수준이었다. 맘 좋게 생긴 어른들을 따라가 생떼를 쓰며 카드를 사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돈을 얻어 내는, 우리로서는 일종의 놀이였다. 그 때 광화문의 레코드 가게에서 흐르던 아름답던 멜로디가 나중에 알고 보니 비지스의 <퍼스트 오브 메이>와 <투 러브 섬바디>였다. 어린 필자의 가슴 속에서 떡볶이 보다 매콤하게, 솜사탕보다 달콤하게 흐르던 그 멜로디를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시절 거대하고 신비로워 보이던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제는 한낱 뽑혀진 나무 한 그루로 보이는 지천명(知天命)이건만 말이다. 
비지스는 호주로 이민간 어느 영국 가정의 세 아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이름이다. 큰형 베리 깁(Barry Gibb, 1947~ )과 쌍둥이 동생들인 모리스 깁(Maurice Gibb, 1949~2003), 로빈 깁(Robin Gibb, 1949~2012)이 만든 형제 밴드다. 그들은 중학생 시절 학교 그룹으로 ‘노래자랑’에서 입상하며 호주의 어느 동네에서 이름을 떨치는데, 그들의 재능을 알아 보고 가수로 만들어 준 사람은 디제이 빌 게이츠다.(우리가 잘 아는 그 빌 게이츠는 아니다!) 호주에서 알려진 그들은 모국인 영국으로 돌아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형제들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67년경부터 대서양 양편(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히트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나온 그들의 주옥 같은 히트곡들이 필자 세대의 한국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투 러브 섬바디> <메사츄세스> <워드> <아이브 갓 어 메시지 투 유> <아이 스타티드 어 죠크> <퍼스트 오브 메이> <돈 훠겟 투 리멤버> <아이오 아이오> <하우 캔 유 맨드 어 브로큰 허트> 등이다. 그들의 초창기 노래들은 묘한 분위기를 지닌 새로움의 팝송이었다. 중성적 가냘픈 목소리로 조용히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애절하게 읊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성으로 부르는 어느 남성 합창단의 알토 같기도 하고, 일찍이 포크나 컨트리, 블루스, 재즈 같은 팝의 뿌리에 해당하는 음악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궁상스러움이 존재했다. 다분히 대중적인 호소력에 포커스를 맞춘 것 같은 지극히 유행가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 ‘감상적’이라는 유행가의 대표적 치기에 어울리는 궁상스러움으로 비지스는 세계적인 대 히트를 기록하였다. 
비지스는 70년대 중반 기막힌 음악적 변용을 이루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휩쓸게 되는 디스코의 제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팝 사상 가장 극적인 변모를 추구한 사건으로 기록 될 비지스 형제의 변화였다. 가장 감상적이던 그들의 여리고 우아한 음악들이 디스코 춤사위에 맞춰 새롭게 탄생한다. 75년 <자이비 토킹>으로 시작된 그들의 제2의 전성기는 무섭게 세계를 강타했다. 중성적이고 가냘프던 그들의 목소리는 특이한 가성이 되어 디스코 리듬을 탔다. <유 슈드비 댄싱> <하우 딥 이스 유어 러브> <스테잉 얼라이브> <나이트 피버> <투 머치 헤븐> 등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의 넘버원을 휩쓸었다. 그들의 노래들은 존 트라볼타 주연의 디스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78)>의 주제곡으로 쓰이며, 디스코 시대 최고의 히트곡으로 자리 잡는다. 비지스의 변신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만 보였던 깁 형제가 디스코의 제왕이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까? 비지스는 가장 극적인 변신으로 두 번의 전성기를 야무지게 보낸 팝 사상 가장 성공한 삼형제의 이름이 되었다.
9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하던 비지스는 2003년 모리스 깁의 갑작스런 사망(심장마비)으로 사실상 해산되었다. 금년 5월 모리스의 이란성 쌍둥이 로빈 깁 마저 암으로 사망하면서, 이제 전설의 깁스 형제는 큰형 베리 깁 만이 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2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삼형제는 착실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거칠고 흥청망청 생활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지스의 음악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에 비해 평론가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지는 못하였다. 그들의 음악은 팝의 전통을 잇는 깊은 감정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가벼운 감각과 감상(感傷)의 표현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필자에게 그렇게 다가왔던 것처럼, 비지스의 음악은 막 감수성이 살아나려는 전 세계 풋내기들에게 지대한 영양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팝이라는 음악에 막 입문하려는 세계의 젊음들에게 팝이 유행가라는 것을 가르쳐준 음악이라고 보고 싶다. 유행가란 말 그대로 유행하는 음악이다. 유행가 가사에서 고도의 시적 상징성이나 통찰력을 기대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며, 유행가 멜로디에서 가슴을 흠뻑 적시는 클래식의 선율을 기대하는 것도 가혹한 처사다. 그런 의미에서 비지스는 딱 유행가만큼 노래 부른, 딱 유행가다운 위대한 삼형제였다.       





글쓴이 최동훈은 카피라이터,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광고 회사를 운영하였다.
어느날 런던에 매료된 그는 문화가 현대인을 올바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신념을 붙들고 런던을 소개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londonv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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