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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정말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 1980년대 후반 영국 언론에는 스파이 영화 제목 같은 기사들이 잇달아 실려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과학자들의 의심스러운 죽음(Scientists’Suspicious Deaths)’ ‘스타워즈 과학자 죽음(Star Wars Scientist Deaths)’ ‘제너럴 일렉트릭 마르코니 과학자 죽음(GEC-Marconi Scientist Deaths)’ 같은 제하의 기사였다. 얼핏 제목만 봐도 무슨 스릴러 스파이 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실제 영국인들에게는 지금도 으스스한 기분을 들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사건이다.
 
사건의 내용은 미국과 나토(NATO)의 전략방위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일명 ‘스타워즈 프로젝트’에 참가한 GEC-마르코니사와 연관된 영국 과학자 22명의 연이은 사망이었다. SDI는 탄도탄 요격 유도탄 시스템으로 사드(THAAD)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SDI연구 개발에 관계된 영국 과학자들의 연이은 죽음은 1982년부터 1988년 사이에 일어났는데 사인도 다양했다. 일견 자살로 보였지만 기자들의 추적에 의해 드러난 팩트들을 냉정하게 보면 자살이 아닌 듯한 정황들이 모든 죽음에서 나타난다. 만일 기자들이 보도했듯이 사건의 진실이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라면 정말 스파이 영화에서 적국 요인을 암살할 때나 쓰일 만한 모든 방법들이 동원된 셈이다. 당시 과학자들의 죽음은 전기 감전, 자동차 충돌, 호텔과 절벽에서 투신, 성도착적인 환상 속 죽음, 자동차 배기가스 중독 등등 사인이 다양했다. 이상하게도 이 사건들에는 일반적 자살 방법인 음독이나 목매는 방식 등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검시관들이 ‘사인불명(open verdict)’으로 결론낸 죽음이 적지 않을 정도로 사건이 단순하지 않았다. 경찰도 처음에는 대부분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판단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판단을 보류하거나 사인불명이라고 바꾸기도 했다.
 
음모론자들은 연이은 과학자들의 사망 원인을 다양하게 추론한다. 영국 정보기관에 의한 살해, SDI 완성을 지연시키기 위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정보기관들에 의한 살해, 방위업체 간의 사주 살해, 사망자들이 근무하던 GEC-마르코니사의 입막음 살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제대로 사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인터넷에는 별별 음모론이 다 떠돈다.
무엇보다 죽음을 맞은 과학자들이 근무하던 직장과, 그들이 사망 당시 수행하고 있었던 연구 프로젝트의 성격이 음모론의 진원지다. 사망자들이 근무하던 직장은 모두 미국과 영국, NATO의 전략 무기 체계를 연구, 생산하던 다국적 군산복합체이거나 그 방계회사, 혹은 납품업체 또는 산하 부속 연구기관들이었다. 엄청난 규모와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 그리고 대단한 기밀을 다루는, 영화에서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개입되어 있을 법한 회사나 기관들이었다. 또 이들 과학자들이 연구개발하던 프로젝트는 동서 냉전이 정점에 와있던 당시 최고 극비 사항이었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인가?
 
우선 사건을 순서별로 살펴보자. 1982년 3월 영국 에식스대학교 교수이자 컴퓨터프로그램 전문가인 키스 보덴(46)이 음주운전과 과속으로 다리 위에서 떨어져 현장에서 즉사했다. 하지만 부인과 가족, 친지들은 그날 보덴이 파티에 참석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보덴은 당시 마르코니에서 방어 시스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보덴의 변호사는 사건 뒤 조사 과정에서 보덴 차의 멀쩡했던 타이어가 누군가에 의해 낡고 닳은 타이어로 전부 바뀌어져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1985년 3월 마르코니의 레이더 디자이너 로저 힐(49)이 자신의 집에서 권총 자살했다. 이 사건에서도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1985년 11월에는 영국 통신회사 서포크의 비밀 실험센터에서 일하고 있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전문 과학자 조너선 월시(29)가 사망했다. 그는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시내 한 호텔 방에서 창문으로 떨어져 죽었다.
이어 1986년 8월에는 컴퓨터 전문가인 비말 다지바이(26)가 영국 브리스톨의 유명한 클립톤 현수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경찰 현장 검증 보고서에는 그의 차에 포도주 병이 있었다고 돼있었지만 가족들은 파키스탄 출신의 무슬림인 그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전혀 안 마신다고 증언했다. 다지바이는 죽기 바로 직전까지 런던 금융가의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새 양복과 구두를 사는 등 장래 설계에 부풀어 상당히 행복해 보였다고 그를 마지막으로 본 친지가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르코니 해저 시스템사에서 스팅레이 어뢰 제어 컴퓨터 전문가로 일했다. 스팅레이 어뢰는 당시 영국 해군이 개발한 최고 수준의 어뢰로 냉전 당시 원자력 잠수함에 반드시 설치되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그의 엉덩이에 바늘로 찔린 상처가 있었고 팬티를 발목까지 내린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는 점이었다. 경찰은 자살로 판정했지만 검시관은 사망 원인이 미상이라고 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팬티를 내린 채, 그것도 자신의 집에서 200km나 떨어진 아무 연고도 없는 브리스톨에서 투신자살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었다.
1986년 10월에는 역시 마르코니에서 일하던 아르샤드 샤리프(26)가 죽었다. 그는 마르코니 스페이스 앤드 디펜스 시스템에서 잠수함 추적 위성 시스템을 연구 개발하고 있었다. 샤리프의 자살 방법은 너무나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이어서 지금도 회자된다. 샤리프는 자신의 목에 밧줄을 매고 밧줄 끝을 나무에 걸어 놓은 뒤 자동차를 뒤로 급속도로 몰아 목이 순간적으로 잘리는 방식으로 죽었다. 그런 참혹한 자살 방식은 온순한 평소 성격과는 안 맞는다는 게 친지들의 말이었다. 검시관 역시 사인불명이라고 결론냈다. 샤리프도 막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한 컴퓨터 관련 잡지는 자신들이 샤리프의 죽음을 조사해서 기사화하려 했는데 영국 정부로부터 국가기밀법(Official Secrets Act)에 저촉된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비말 다지바이와 아르샤드 샤리프 둘 다 영국의 극비 프로젝트에서 어뢰 제어시스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 국방산업에 종사하던 기술자들은 수천 명에 이르렀는데,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위의 5명이 사망했을 때만 해도 영국에서 누구도 사망자들 사이에 특별한 연관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해서 경찰의 사고사나 자살 판정은 전혀 의문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러나 1987년 들어 1월달에만 3명, 2월달에 2명의 방위산업 종사 과학자들이 연이어 숨지자 드디어 과거의 사건까지 주목받으면서 세인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영국 언론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1987년 가장 먼저 숨진 인물은 그해 
 
1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리처드 퓨였다. 그는 머리를 비닐백에 넣고 다리와 온 몸에 굵은 밧줄이 감긴 채 질식사했다. 보통 비닐봉지에 머리를 넣고 실신하기까지 버티면 환각 상태에 이른다는 이유로 그가 가학성 성적 취향으로 사망했다고 검시관이 결론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인들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잔혹한 방식의 타살이 분명하다고 했다.
1987년 1월에는 러프버러대학교에서 잠수함 전투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던 아이타르 싱 지다(26)가 실종되었다. 당시 그는 결혼기념일 앞두고 아내에게 줄 선물과 카드를 이미 사놓은 상태였다고 직장 동료가 말했다. 또 지다는 사망한 날로부터 수주 뒤 수년간 준비해 왔던 박사학위를 받을 참이었다. 그는 동료와 점심을 먹고 돌아온 뒤 실종되었다가 자신이 실험을 하고 있던 저수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1987년 1월에는 존 브리튼(52) 박사가 자신의 차고에서 자동차 엔진 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했다. 최고 비밀 연구를 하고 있던 그는 미국 출장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이어 같은 해 2월에는 데이비드 스킬스(43)가 자동차 배기가스관이 연결된 차 안에서 가스중독으로 죽었다. 같은 해 2월 피터 피펠(46) 교수도 자신의 차고에서 배기가스 중독에 의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피펠은 영국 왕립군사학교 교수로 각종 철강들이 폭발에 견디는 강도를 극비리에 연구하고 있었다. 특히 피펠은 통신 기술과 전자 감시, 목표물 탐색의 세계적 권위자였다. 피펠은 부인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부인을 내려준 후 차고에 차를 넣으러 간 뒤 아침에 부인에 의해 차고에서 발견되었다. 귀가 후 바로 침대로 가서 잠에 빠졌던 부인은 아침이 되어 침대에 남편이 없는 걸 알고 찾으러 나섰다가 차 밑에 죽어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처음에 부인은 사인을 단순 사고사로 생각했다. 전날 저녁 귀가하면서 차 밑에서 소리가 났는데 그걸 찾으려고 남편이 차 밑으로 들어갔다가 아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동차 배기가스로 사망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차고의 전등은 켜지지 않았고, 피펠은 손전등도 안 가지고 있었다. 손전등도 없이 전기도 안 들어오는 차 밑에 들어가 소리의 원인을 찾아낼 리가 만무했다. 문제는 피펠이 입에 배기관을 문 채 차 밑에 끼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경찰도 자살로 보지 않은 이유가 배기관을 입에 문 채 차 밑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현장 상황 때문이었다. 피펠의 아내는 남편이 자살할 이유도 없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의 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사망 당시 월급도 인상돼 기분이 좋았다고 동료가 증언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비롯해 위에서 든 배기가스 중독 사망 사건 셋 모두 현재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실한 결론을 내지 않고 사인 불명으로만 처리된 상태다.
 
과학자들의 죽음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987년 2월에는 마르코니 연구소 과학자 존 화이트맨이 자신의 집 목욕탕 욕조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었다. 주위에는 빈 술병과 약병들이 널려 있어 사인을 암시해 주는 듯했으나 검시 결과 몸에서 약물이나 알코올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 같은 달 마르코니 우주방위 시스템사의 디자인 엔지니어인 빅터 무어(46)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3월에는 데이비드 샌즈(37)가 자신의 차에 휘발유를 잔뜩 싣고 폐업한 카페 벽으로 돌진해서 화염에 싸여 사망했다. 그는 마르코니 자회사에서 SDI의 컴퓨터 제어 레이더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샌즈는 베네치아에서 아내와 휴가를 보낸 후 기분 좋게 직장에 복귀한 뒤여서 특별히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고 직장 동료는 말했다.
같은 해 3월 플레시 엔지니어링사에서 방위 무기 연구개발을 하던 마이클 베이커(22)가 자동차 충돌로 사망한 사건도 벌어졌다. 플레시 엔지니어링은 나중에 마르코니에 합병되었다.
그해 4월 숨진 샤니 와렌(26)의 자살 방법도 기이했다. 다리를 묶고 엄청나게 높은 킬힐을 신은 채 손도 뒤로 묶고 올가미를 목에 걸고 입에 재갈을 문 상태에서 45㎝ 깊이의 물에 빠져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녀가 비서로 일하던 회사는 마르코니가 그녀의 죽음 수주 뒤 인수했다. 경찰은 사인을 리처드 퓨처럼 환각에 이르고자 성도착적인 시도를 하다가 사고사한 걸로 추정했다.
같은 해 4월 17일에는 브리스톨 폴리테크닉대학의 컴퓨터시스템 분석전문가 조지 쿤티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차는 뒤집어진 채 리버풀 머지강에서 발견되었고 차 안에 그의 시신이 있었다. 쿤티스는 샤니 와렌과 같은 날 사망했다.
1987년 6월에는 플레시 엔지니어링사에서 전자 전투 무기를 연구 개발하던 프랑크 제닝스(60)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마르코니가 방위 전자업체 플레시를 인수하던 1987년 5월과 6월 사이 마이클 베이커와 프랑크 제닝스가 잇달아 사망한 것이다.
 
다음해인 1988년에도 죽음이 잇달았다. 1월에는 에식스 원자에너지연구소 기술자였던 러셀 스미스(23)가 콘월 지방의 성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이어 3월에는 마르코니 우주방어시스템사의 SDI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컴퓨터프로그래머 트레버 나이트(52)가 자신의 차 배기관에 연결된 파이프 가스에 중독되어 사망했다. 그의 애인에 의하면 시신 옆에 비록 자필 유서가 있었고 자신의 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자살할 정도로 우울해 하는 등 정서적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해 8월에는 나중에 마르코니에 인수된 플레시 디펜스 시스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알리스타 베컴(50)이 자신의 정원 창고에서 감전된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베컴은 부인을 직장에 태워주고 집에 돌아와 정원 창고로 들어가 전선을 자신의 몸에 두른 후 입에는 손수건을 물고 전원 스위치를 올려 감전 자살했다고 경찰이 추정했다. 그러나 베컴 부인은 남편의 자살을 전혀 믿지 않았다. 자살할 이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부인은 남편이 자살하자마자 국방성에서 사람이 와서 남편의 서류와 파일을 모두 수거해 갔다고도 했다. 뭔가 국방성이 숨기는 것이 분명하다고 증언했다. 2년 사이에 플레시 엔지니어링 소속 과학자로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3명이 숨진 것이다.
 
 
1987년 한 해만 12명 사망
 
1988년 8월에는 마르코니 마케팅 이사보로 재직 중이던 피터 페리(60)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입에 전선을 물고 감전돼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그해 9월에는 영국 우주항공 기술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앤드루 홀(33)이 자신의 집 차고에서 배기가스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상의 22명 과학자들은 모두 영국인들로, 미국의 전략방위계획(SDI)과 직접 관련이 있는 마르코니사, 혹은 마르코니사의 연관 회사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국 컴퓨터 관련 주간지 ‘컴퓨터 위클리’의 편집장 토니 콜린스는 수년간 이들 과학자들의 죽음을 취재해 1990년 ‘사인 불명 판결(Open Verdict)’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물론 콜린스는 연이은 사망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못 냈지만 심층 취재를 통해 대부분의 사망 사건이 사고나 자살이 아닌 타살의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음을 제시했다. 
과학자들의 죽음을 시간별로 보면 1982년 3월 1명, 1985년 3월 1명, 1985년 11월 1명, 1986년 8월 1명, 1986년 10월 1명 등 처음 5년에 걸쳐 5명이 사망해 별 주목을 못 받았다. 그러다 1987년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망자가 늘었는데 흡사 킬러 특공대가 움직이는 듯 숫자가 늘어났다. 예컨대 1987년 1월 3명, 2월 4명, 3월 2명, 4월 2명, 6월 1명 등 12명이 연달아 사망했다. 그러자 ‘과학자의 의심스러운 연쇄 사망’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해인 1988년 들어서도 1월 1명, 3월 2명, 8월 2명 등 5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2년 동안 같은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과학자 17명이 사망했고 그전 5년간 5명이 사망하는 등 거의 연쇄살인 같은 죽음이 이어진 것이다.
이후 영국 언론은 과학자들의 연쇄 죽음에 대해 드디어 ‘GEC-마르코니 사망 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심지어 ‘살해 사건’이라고 명명하기도 하면서 연이어 기사를 토해냈고 영국 하원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망이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쇄 죽음을 음모로 보는 쪽에서는 기술이 아주 뛰어난 전문가들이 저지른 짓이라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특히 사인이 대단히 잔혹하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대개 자살의 방법이 음독, 목 매기, 고층 투신 등이거나 손목 긋기 정도인데 당시 죽음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방식을 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거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택하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하지만 사망자들은 일상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던 사람들이었다고 친지와 동료들은 증언한다. 만일 타살이라면 누군가가 비상하고 잔혹한 방법을 써서 교훈이나 경고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과학자들의 죽음을 유형별로 보면 배기가스 5건이 제일 많았고, 추락사 4건, 자동차 사고 3건, 성도착적인 변태적 환상(perverted fantasy) 속 죽음 2건, 감전사 2건, 익사 2건, 권총사 1건, 교사 1건, 약물중독 1건, 심장마비 1건 등이었다. 음모론자들은 이러한 방법들이 정보기관들의 살해 작업 매뉴얼에 나오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특히 성도착적인 변태적인 환상 속 죽음은 사고사를 가장한 타살로는 가장 훌륭한 암살 방법이라고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의 명성에 해를 끼쳐 유가족들이 검시를 원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니 말이다. 일반인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배기가스 중독이나 감전사 등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된 과학자들이 동시에 이렇게 많이 죽을 수 있느냐가 음모론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초극비 방위산업 프로젝트 기밀을 발설하는 내부 고발을 막으려는 영국과 서구 정보기관의 작업인지, 미국 SDI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기 위한 소련과 동구권 정보기관들의 작업인지, 단순한 방위산업 경쟁상대들의 수작인지, 마르코니사의 입막음 살해인지 온갖 추측이 나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정부 주도의 특별조사단 구성의 필요성을 부인했다. 결국 영국 정부와 마르코니사는 업무 스트레스가 과학자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참고로 당시 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라는 핵무기 반대운동이 영국 곳곳에서 극성을 부렸다. 특히 영국 주둔 미군부대 근처에서 상주하다시피 했다. 지금도 존재하는 CND 홈페이지에는 자신들의 목적 중 하나가 ‘영국의 미국 미사일 방어 시스템 참여 반대’라고 대놓고 밝히고 있다. CND가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당시 밝혀지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과학자들의 연쇄 죽음 이후인 1988년 마르코니사와 300억파운드(현재 가치로는 774억파운드, 약 131조5800억원)의 SDI 전략무기 계약을 맺었다. 2023년 한국 정부 예산 639조원의 5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의 계약이었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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