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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장례 의례

hherald 2012.11.05 21:11 조회 수 : 1528


장례 의례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는 데 큰 문제가 생긴다. 이 세상에서 영국 장례식만큼 딱딱하고 형식적이며 불편하고 견딜수 없으리만치 어색한 장례식은 많지 않다. 

유머 생체해부의 규칙

장례식에서 우리는 기본 문제 대처 기능을 정지시켜야한다. 보통의 유머와 폭소는 정말 슬픈 경우에는 분명히 적절하지 않다. 다른 경우, 예를 들어 놀라거나 혼이 났을 때도, 우리는 끊이지 않고 죽음에 대해 농담을 한다. 그러나 장례식에서 이는 불경스럽고 적절하지 못하다. 도를 넘은 농담은 찡그린 미소나 불러일으킨다. 농담이 없으면 우리는 발가벗겨져 비보호 상태가 되고, 사교술의 미숙함을 만천하에 노출한다. 
이런 우리를 지켜보는 일은 매혹적인 동시에 고통스럽다. 잔인한 해부학자의 동물 행태 실험 같다. 장례식에서 영국인을 보는 것은 등딱지가 벗겨진 거북이를 보는 것 같다. 반사적인 유머를 거부 당한 우리는 아주 취약하고 중요한 기관 하나가 제거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이 그렇다. 유머는 이렇게 영국인의 성격에 뿌리박혀 있는데 사용을 금지(혹은 아주 엄격하게 규제)하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한쪽 팔을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간단히 말해 유머 없이는 사교행위를 할 수 없다. 영국인의 유머 규칙은 기본적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표제어의 네번째 의미, 즉 ;보통 또는 사물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팔이 있는 상태 혹은 정상으로 숨을 쉬는 상태와 같은 것이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이를 박탈 당했으니 어찌할꼬. 빈정거리지도 못 하고! 거짓 장난도 못 하고! 야유도 못 하고! 놀리지도 못 하고! 유머러스하게 낮추어 말하지도 못 하고! 말장난이나 중의어도 금지라니! 세상에 그럼 우리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진지하기 금기 규칙의 정지와 눈물 할당량

모든 일에 농담을 해서 고질적인 사교불편증을 치료하고, 긴장을 풀며, 말문을 트는데, 이제 그것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엄숙하라고 요구한다. 유머는 철저히 제한되고, 평소에는 금기라더니 지금은 진지해져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상을 당한 유족들에게 엄숙하고 진지하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전해야 한다. 혹은 우리가 상을 당하면 그런 말들에 우리도 엄숙하고 진지하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답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절실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은 오러지 평상시 금기를 정지시켜놓고 어느 정도는 진지해지고 감상적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 정지가 아니고 일부 해제이다. 심지어 진정으로 슬픈 가족과 친구들까지도 감성 해소를 위해 눈물과 통곡에 빠지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눈물은 허락된다. 그러나 조용히 해야 한다. 흐느끼거나 코를 훌쩍거릴 수는 있으나 다른 문화권에서는 정상으로 여겨지는 고통에 찬 비명은 여기서는 위엄이 없고 적절치 못한 반응으로 간주된다. 
사회적으로 허락된 조용한 울음과 코 훌쩍임도 너무 길어지면 창피한 일이 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전 세계에서 전혀 눈물이 없는 장례식이 정상으로 간주되고 용인되는 유일한 문화인 것 같다. 영국 성인 남자들은 장례식장 조문객들 앞에서 울지 않는다. 만일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화난 듯이 재빠르게 물기를 닥으며 자신을 추수른다. 여자 친척이나 친구들은 눈물 몇 방울을 흘리긴 하는데, 그러지 않더라도 슬프지 않다거나 인정이 없다는 뜻으로는 비치지 않는다. 슬픈 듯한 표정을 유지하고, 때때로 '슬픈 그러나 용감한 미소'를 보이면 된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절제를 감탄할 만한 일이라 여긴다. 다이애너 비의 장례식에서 보인 일부 왕실 사람들의 냉담한 태도는 많은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녀의 어린 아들들이 지각 있는 태도는 몇 방울 눈물만 보인 모습은 물론이고 영구차를 따라 한참을 걸을 때나 장례식 전 기간에 보여준 침착한 태도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용감하고 위엄 있게 행동하여 칭찬을 받았다. 특히 군중들 앞을 걸어다니면서 조문을 받을 때 보여준 미소와 중얼거리는 듯한 감사의 표시 등으로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것은 참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어떤 흐느낌보다 감동적이었다. 영국인은 눈물로 슬픔을 가늠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눈물은 어느 정도 자기 탐닉이라고 본다. 심지어는 조금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일이라고까지 여긴다. 슬픔으로 충격을 받은 가족들이 장례식에서 울지 않거나 잠시 우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한 것이다. 자신들을 위로해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용감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안심시키는 태도는 존경 받는다. 내 계산으로 보통의 영국인 장례식에서 최적의 눈물 할당량은 다음과 같다.
-성인 남자(고인의 가까운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 한두 번 재빠르게 눈가를 훔치고 용감한 미소 짓기.
-성인 남자(위를 제외한 모든 경우): 눈물은 없고, 침울하고 동정적인 표정 유지. 슬프고 걱정하는 미소 짓기.
-성인 여자(고인의 가까운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 장례식 동안 한두 방울의 눈물과 훌쩍임은 보여도 좋고 안 보여도 좋다. 조문에 대한 답례로 가끔 눈가의 물기를 사과하듯이 손수건으로 두드려 닦고, 용감한 미소 짓기.
-성인 여자(위를 제외한 모든 경우): 눈물 흘리지 않거나 눈가에 물기를 보이는 정도. 침울하고 동정적인 표정 유지, 슬프고 걱정하는 미소 짓기.
-남자 아이들(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 10세 이하면 눈물은 무제한, 좀 더 큰 소년들은 장례식 동안 떨어지는 눈물 한 번 보이고, 용감한 미소 짓기.
-남자 아이들(위를 제외한 모든 경우): 남자 성인과 마찬가지
-여자 아이들(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 10세 이하는 눈물 무제한. 더 자란 소녀들은 성인 여자 눈물 할당량의 대략 두 배 흘리고, 용감한 미소 짓기.
-여자 아이들(위를 제외한 모든 경우):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되고, 눈가의 물기를 보이거나 장례식 중 잠깐 훌쩍임 가능.
우리가 느끼는 참된 슬픔은 제외하더라도, 유머 금지, 진지함의 금기 정지, 눈물의 양 제한 조치 등으로 영국의 장례식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유머 반응을 제어해야 하고, 느끼지 않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지만 자기감정은 억눌러야 한다. 영국인은 죽음 자체를 창피하고 꼴사나운 것이라 여겨 그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고 싶지 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본능적인 반응은 부정이다. 우리는 죽음을 무시하려 들고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양한다. 하지만 장례식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우리가 말 없이 딱딱한 자세로 불편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합의된 인사말이나 동작이 없다(특히 상류층 사이에서는 위안하는 상투적인 말은 통속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손은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중얼거리듯, 유감이고 슬프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건네고, 어색하게 포옹하며, 나무처럼 딱딱한 팔이나 두드리고 만다. 비록 모든 장례식이 어쩡쩡한 기독교식이라 특별히 고인의 신앙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없다. 그러다보니 고인의 신앙심이 독실하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신이나 영생에 대한 언급도 적당하지 않다. 만일 돌아가신 분이 80세(75세부터라도)가 넘었으면 장수하셨다고 한마디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장례식 직후 모임에서 한두 마디 부드러운 농담은 허용된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말 없이 애처롭게 머리나 흔들고 의미심장한 한숨이나 쉴 뿐이다.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는 사제나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것이다.  그들은 써먹을 수 있는 상투어가 있기 때문이다. 고인을 묘사할 때는 일종의 암호를 사용하되 나쁘게 말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방법은, 예를 들면 '그는 파트의 생과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말은 술 주정뱅이였다는 이야기다. '바보짓을 안 당했다'는 말은 심술꾼 구두쇠 녀석이었다는 얘기고 '그녀는 애정에 아주 후했다'는 품행이 형편없었다는 말이며 '확인된 독신자'는 게이였다는 소리이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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