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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우리가 뭐라고 부르든, 영국인의 사교불편증은 정반대 극단을 포함하고 있다. 누군가를 불편해하거나 스스로 창피해질 때면 우리는 극단적인 감정을택한다. 지나치게 공손해지고 예의를 차린다. 침묵하고 어색한 태도로 자체한다. 또는 시끄러워지거나 무뚝뚝해지며,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고, 전반적으로 참을성이 없어진다. 그 중간의 행복한 중용이 없다. 모든 영국인은 악령 음료의 도움이 있든 없든 정기적으로 한 번씩 이 양극의 감정을 표출한다.

 

'시끄럽고 불쾌한' 성향의 가장 나쁜 형태는 '해방의식' 기간에 나타난다. 예를 들면 금, 토요일 밤 시내 한복판이나 국내외 휴가지에서 영국 젊은이들이 바, 클럽, 퍼브 등에 모여 술을 마셨을 때 전통처럼 일어난다. 이 소란스러운 주정은 단순히 저녁 한때의 환락이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부산물이 아니고, 이들은 사실 이러려고 휴가를 간다. 젊은 남녀 영국인 야단법석꾼과 휴가객은 이런 목적으로 휴가를 가서는 작정을 하고 일을 벌인다. 그리고 예외 없이 성공한다(기억할 일이다. 우리는 영국인이니 비알코올성 가짜 술로도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주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만취해야 한다. 그들은 뭔가 미친 짓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낀다. 억제를 벗어난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인정받을 수준이란 게 사실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도 아니다. 비교적 단순한 고함 지르기나 욕하기부터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바지벗고 엉덩이 보여주기 정도다(영국 청년들은 엉덩이는 우스운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가끔씩 하는 싸움질이 고작이다.

소수 무리들의 경우 패싸움 한번 없이 토요일밤을 보낼 수는 없다. 이는 대개 규칙이 규제하는, 예상 가능한, 거의 각본이 짜인 일상 업무이다. 주로 사내다움을 내세운 거들먹거림과 허장성세를 내보이고, 가끔 만취하여 주정을 부리다가 한두 번 어설픈 주먹질을 하고 끝난다. 이런 사건은 대개 조금 길어진 우연한 눈맞춤이 시비로 번진 것이다. 술 취한 젊은 영국 남자들 사이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간단히 눈만 좀 오래 마주치면 된다. 영국인은 눈 마주치는 데 익숙지 않기 때문에 1초 이상만 쳐다보면 된다. 그러고는 "뭘 쳐다 보는데?" 라고 하면 그것을 그대로 반복한다. 흡사 "어떻게 지내세요?"를 서로 반복할 때와 똑같다.우리들의 불쾌함은 공손함과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비논리적이고, 고상하지도 않다.

이런 말 하기는 내키지 않지만, 이런 문제들은 사교촉진제로 술 대신 대마초, 엑스터시 등의 불법 '기분전환 마약(recreational drug)'을 쓰는 젊은 이들 사이에서는 훨씬 적다. 우리는 대마초가 기분을 부드럽고 유쾌하게 풀어준다(요즘 말로 '느긋하다chilled out')고 믿는다. 그리고 엑스터시로 활기차고 행복감에 빠지고 동료에게 무한한 친절을 보이고, 자신은 기막힌 춤꾼이 된다. 춤의 수준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어쨌든 그들 모두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겠다.

 

 

놀이 규칙과 영국인다움

 

놀이 규칙은 지금까지 확인된 주요 영국인다움의 기본 요소를 재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 영국인다움 후보자는 유머, 위선, 계급상승 갈망과 불만, 페어플레이, 겸손 등이었다. 경험주의가 이제 영국문화 유전자에 포함될 강력한 후보자로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장에 있는 모든 규칙은 영국인다움의 결정적인 기질 중 하나와 특별히 관련이 있다. 이는 내가 '사교불편증'이라 부르는 것으로, 억제된 편협성, 사람들과의 사교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어색함, 잠복성 자폐증과 광장공포증의 복합 증세를 말한다. 우리 여가활동은 위에서 든 우리들의 불행한 기질에 나름대로 대처해보려는 몸부림이다. 대처 방법도 거의 자기부정과 자기망상이다. 실은 우리의 집단적 자기 기만 능력 자체가 결정적인 기질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영국인이 스포츠, 게임, 클럽 등을 사교촉진제로 이용함과 더불어 집단적 자기기만의 힘을 빌리는 것도 대단히 흥미롭다. 우리는 사교를 위해 접촉하고 유대를 맺으면서도 그게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속인다. 술의 신비로운 탈억제력에 대한 굳은 믿음도 사실은 동일한 망상증후군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접촉과 친교를 너무나 갈망하면서도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의 따뜻함과 친근함을 간절히 하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접촉에 목말라 하는 불타는 욕망을 쓸데없이 기묘한 체계와 신념과 의례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푼다. 그래서 우리는 테니스를 잘하기 위해, 꽃꽂이를 잘하기 위해, 오토바이 관리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래를 구하고 세계를 구히기 위해, 요컨대 그 무엇을 위한 행동으로 가장해야만 상대를 만날 수 있다. 퍼브로 가면 또 그냥 맥주만 마시러 온 것이라고 가장한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하는 보통의 감정을 창피하게 느끼고, 그것이 인간의 기적 같은 본능의 책임이라고 핑계를 댄다.

정말로 나는 문화인류학자들이 기이한 믿음과 신비스러운 관습의 이상한 부족문화를 연구하러 왜 각종 열대병과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저 지주 오지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수수께끼 같은 부족이 자기 집 앞에 떡하니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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