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채, 그녀는 낯선 이를 쫓기 시작한다.
시선 속에 사라진 무명의 그를 늦은 저녁 파티에서 다시 조우한다.
베니스로 여행을 떠나는 그를 그녀는 다시 쫓기 시작한다.
그의 흔적들을 그녀의 일상 속에 사진과 글로 기록한다.
흔적의 기록이 마치 그녀 삶의 일부가 된다.
스토커와 같은 이러한 행적들은 프랑스 출신 현대미술가 소피 칼레(Sophie Calle)의 작품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서두의 묘사된 부분은 실제 칼레의 작품 ‘Suite Venitienne’(1979)이다. 낯선 이의 행적을 쫓아 베니스로 떠난 칼레의 여정과 그녀가 발견한 낯선 이에 대한 사실 그리고 추측(상상, 환타지)이 함께 기록된다. 사진과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업은 마치 다이어리와도 같다. 관람객에게 마치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한 그녀의 작업들은 “이것이 과연 미술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낸다.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칼레의 작업에서 무엇이 진정한 그녀의 삶이고 무엇이 상상, 환타지 인지 알 수 없다. 현실과 가상이 그 경계를 넘나든다. 칼레의 대표작 중 하나인 ‘Double Game’(2000)은 실제로 미국의 한 소설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와 칼레가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게임과도 같은 그들의 협작은 세 파트로 구성된다.
오스터는 그의 소설 Leviathan (1992)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마리아(Maria)의 삶 일부를 칼레의 작업으로부터 구성한다. (소설 속 마리아 역시 괴짜스러운 예술가로 등장한다.) 60에서 67쪽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삶은 칼레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작업들을 약간의 변형을 더하여 소설로 구성한다.
칼레는 마리아와 더욱 닮고자 오스터가 그려놓은 소설 속 마리아의 모습을 그녀의 작업으로 끓어 들인다. 매일 한 색의 음식을 먹는 - 예를 들면 월요일은 오렌지, 화요일은 초록과 같이 - 괴짜스러운 마리아의 모습을 칼레가 역으로 작업의 소재로 활용하여 전시한다. 그러므로, 두 캐릭터, 마리아와 칼레, 사이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소설 속 마리아가 칼레가 되고 칼레가 마리아가 된다.
이와 같이 칼레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모호함은 작업 속 사실과 거짓(추측)의 공존에 근거한다. 칼레도 말했듯이, 그녀의 작업에는 언제나 한가지 거짓말이 함께 공존한다. 사실 속 단 하나의 거짓은 거짓과도 같은 진실 또는 진실 같은 거짓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그녀 또한 무엇이 거짓이었는지 잊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만들어낸 거짓이 마치 처음부터 삶의 일부였던 것처럼 믿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삶에서도 볼 수 있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거짓을 계속해서 말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비단 칼레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의 사실과 거짓, 현실과 가상을 나눌 수 있는가? 사실 사실과 거짓, 실제와 가상이라는 경계를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어쩌면 순진한 발상일 수도 있다.
그 경계가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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