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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음악으로 만나는 런던-30

로니 도네이건

스키플의 황제

이십 세기가 되고 미국에게 정치적, 경제적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면서 영국은 일종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승 주역으로 역사의 리더였지만, 더 이상 지구상의 가장 풍요로운 나라는 아니었다. 식민지를 반납하면서 미국의 수십 분에 일에 불과한 작은 영토를 지닌 평범한 나라로 돌아왔다. 패전국 독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켜보며 씁쓸한 역사의 역설적 허망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땅 따먹기 놀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령했던 대영제국의 번영은 일종의 허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제 정신을 차리고 본연의 작은 섬나라로 돌아온 영국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보이지 않는 상실감 같은 것이 브리튼 섬을 휘감았다. 60년대가 될 때까지 그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뛰어난 안목과 탐구심으로 지구상의 문화를 지휘하던 야전사령관이었던 영국은 결국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감 앞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앗아간 나라는 다름아닌 영국인들이 피와 땀으로 개척한 나라, 미국이었다.

영국의 허탈감에 보이지 않는 생기를 불어 넣은 것 중의 하나가 60년대 초반 비틀스로 대표되는 영국 대중 가수들의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이었다. 비틀스가 미국에서 단숨에 최고가 되자, 보수의 나라 영국의 젊은 여왕 엘리자베스는 더벅머리 네 청년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버킹검 궁전으로 모셔 훈장을 수여한다. 영국의 여왕답지 않은 그 속도감 넘치는 대응은 영국의 해묵은 우울증의 심각한 증상을 실감나게 하는 행동이었다. 비틀스 이전까지 영국의 대중음악은 미국에 순종하는 형국이었다. 미국의 스탠더드 팝이나, 재즈 같은 음악들이 영국을 지배했다. 특히 재즈는 오랫동안 영국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영국의 인텔리층은 경쟁적으로 재즈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다른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국도 자연스럽게 미국화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60년대 영국 가수들이 미국을 정복하게 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블루스(Blues). 50년대 영국의 음악청년들을 사로잡은 미국 흑인들의 한 맺힌 음악 블루스가 영국 젊은 음악인들이 미국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주무기가 되었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한 일이다. 늙은 사자의 나라 영국이 미국의 음악으로 젊은 나라 미국을 역공한 것이다. 그러나 블루스라는 미국의 시골 음악이 영국에서 벼락 출세하기 전인 1950년대 영국에서 먼저 빛을 본 미국 음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키플(Skiffle)이다. 스키플은 넓게 보면 재즈의 일종이었지만 일반적인 재즈와는 많이 다른 형태의 음악이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발생한 스키플은 재즈, 포크, 블루스에 뿌리를 두는 음악의 형태로 기타, 반조 그리고 빨래판(Wash Board)같은 생활용품에서 유래한 단순한 악기들을 사용하여 민속음악처럼 가볍게 연주하는 형태를 지닌다. 심각해 보이는 재즈의 호흡보다 한결 경쾌하고 쉬운 호흡을 내재한 음악이다. 두 개나 세 개의 코드로 이루어진 단순한 형태의 스키플 리바이벌 붐을 영국에서 일으킨 인물은 50년대 영국 최고의 히트 메이커였던 남자, 로니 도네이건(Lonnie Donegan, 1931~2002)이다.

스키플의 황제라고 불리는 도네이건은 미국에 순종하던 우울한 영국의 팝계에 단숨에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은 인물이다. 데뷔 곡 <Rock Island Line(55)>으로 영국을 강타한다. 폭발적 성량과 엄청난 속도감을 보여주며 미국 싱글 차트의 탑텐에 오른 최초의 영국 가수가 된다. 브리티쉬 인베이션의 전조인 셈이었다. <Rock Island Line>은 미국의 전통 포크송 넘버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영국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도네이건은 경제적 이유로 음악 하기를 주저하던 영국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값싼 통기타, 빨래판, 골무, 차 상자, 빗자루, 그리고 약간의 음악적 재능이 있으면 누구나 도전해볼 만한 음악이 스키플이었다. 스키플에 고무된 영국 청소년들이 훗날 큰 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로니 도네이건의 성공 이후 영국에서는 스키플 밴드들이 넘쳐나게 된다.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밴 모리슨 등 60년대 영국 팝의 주역들은 모두 스키플로 음악을 시작한 세대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도네이건의 영향을 인정한 바 있다.

비틀스 세대가 등장하기 전인 60년대 초반까지 도네이건은 거의 모든 곡을 히트시키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도네이건은 스키플 사상 가장 중요한 뮤지션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필자는 도네이건의 가장 큰 업적을 영국 음악도들에게 음악적 뿌리로 눈을 돌리게 했다는 점으로 본다. 스키플에 매료된 영국의 음악도들이 미국의 스탠더드 팝 이전의 음악적 뿌리인 블루스, 포크, 컨트리 등을 듣고 연구하면서 팝을 완벽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단순히 미국 따라하기가 아닌 팝의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도네이건은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아일랜드와 더불어 스코틀랜드 민요는 미국 민속음악의 가장 중요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도네이건은 해묵은 미국의 시골 음악 스키플붐을 영국에서 일으키며 영국인들의 잠자던 음악적 본능과 잊었던 역사적 사실을 일깨워준 셈이다. 영국 음악의 희망을 보여준 도네이건 이후 영국의 젊은이들은 세계 팝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더 이상 미국에 끌려 다니지 않게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당당히 팝의 지분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스키플은 영어의 종주국이자 미국 민요의 원조의 나라인 영국이 팝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한 음악이다. 오늘날 스키플은 고색창연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다. 그만큼 팝이 급격한 속도감으로 발전한 때문일 것이다. 도네이건은 2000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2002년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마크 노플러가 2004년 발표한 <Donegans Gone>은 아름다운 도네이건에 대한 헌정곡이다. 신이시여, 나는 구르는 돌일 뿐, 내 영혼을 깨워주세요, 집에 가고 싶어요, 갔어요 도네이건이, 도네이건이 갔어요...    


글쓴이 최동훈은 카피라이터,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광고 회사를 운영하였다. 어느날 런던에 매료된 그는 문화가 현대인을 올바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신념을 붙들고 런던을 소개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londonv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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