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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영국인 발견 - 규칙 만들기

hherald 2012.03.05 19:52 조회 수 : 981

규칙 만들기
위의 목록에는 특별한 항목이 빠져 있다. 분명 두 곳에 다 필요불가결함에도 빠져 있는데 그것은 '규칙 만들기'다. 인류는 규칙 만들기에 중독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식사나 섹스 같은 자연적인 생리기능까지도 복잡한 규칙과 규정으로 규제한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매너로 그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정해준다. 동물들은 그냥 하는데도 인간들은 온갖 난리법석을 피운다. 이것을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규칙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규칙이 있다. 사회가 달라지면 금지되는 음식도 다르기에 모든 사회에는 음식 금기가 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규칙을 정해두었다. 위의 목록에 아직 분명한 규칙이 없는 관행이 있다면 '-에 관한 규칙'이라는 말을 붙이면 된다 (예를 들면 선물 수여에 관한 규칙, 머리 모양에 관한 규칙, 춤 . 인사 . 친절 . 농담 . 이유에 관한 규칙 등이다.) 내가 규칙에 초점을 맞추는 까닭은 규칙과 그것을 만드는 일이 인간의 정신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이러한 규칙의 차이를 이용해 이 문화와 저 문화를 구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휴가나 출장으로 외국에 가면 제일 먼저 느끼는 게 그곳에서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음식, 식사시간, 옷, 인사, 청결, 장사, 친절, 농담, 신분 차이에 관한 나름의 방식이 있다. 우리들이 이런 행동을 할 때의 규칙과는 다른 것이다. 

세계화의 종족화
그것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세계화의 문제점으로 끌고 간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하던 중 영국인다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 (주로 중산층 언론인으로부터)을 많이 받았다. 특히 다른 정체성마저도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의해 머지않아 순전히 역사적인 흥밋거리가 될 터인데 왜 영국인다움에 대해 쓰느냐는 얘기였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이 하향평준화된 맥월드(McWorld)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의 화려함이 오로지 소비에만 열중하는 나이키, 코카콜라, 맥도널드, 디즈니를 비롯한 다국적 거대기업들에 의해 다 지워졌다는 것이다. 정말? 나는 전형적인 <가디언(Guardian)>지 독자이고 반 새처(Thatcher) 수상 세대의 좌익 자유주의자로서 기업제국주의자들에게는 아무런 호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회문화 분야의 직업적인 관찰자로서 그들의 영향력은 과장되었다는 점을 나는 지적한다. 혹은 상당히 잘못 해석되었다고 주장한다. 내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의 주요한 효과로 민족주의와 종족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독립, 자치 자립을 위한 투쟁은 확산되었고, 민족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세계 전역에서 살아났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맞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 꼭 인과관계가 개입돼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운동과 세계화의 만남은 기막힌 우연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이키를 신고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해서 자기네 문화 정체성에 애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만일 자신들의 나라, 종교, 영토, 문화 혹은 종족 정체성이 위협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죽기살기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 거대기업의 경제적인 영향은 압도적이거나 심지어는 파멸적이다. 그러나 이 거대기업의 문화충격은 그들이나 그들의 적이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단 대단한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의식에 깊이 각인된 민족 본능에 의해 국가가 문화단위로 점점 분열되는 상황에서 세계 60억 인구가 거대한 하나의 문화로 뭉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세계화의 영향을 받는 지역 문화는 분명 변화하지만 애초에 문화라는 것은 불변의 실체가 아니니 변하게 마련이다. 그걸 꼭 전통 가치의 파괴로 볼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인터넷은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세계적인 하위 소수문화 집단의 반세계화 운동을 세계로 전파하는 데 인터넷이 공헌한 것은 참 역설적이다. 
미국문화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영국 전역의 문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각 지방의 종족화가 확산되었다. 스코틀랜드인과 웨일즈인의 열정과 힘은 미국 음료수, 패스트푸드, 영화 등의 영향으로 줄어든 것 같지 않다. 영국 전역의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는 데 아주 열성적이지만 소위 영국인(English)은 정체성 위기로 어느 때보다 더 초조해하고 있다. 영국에서 지역주의는 일종의 풍토병인데 그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콘월 Cornwall 지방 민족주의자들은 더 떠들썩해지고 있다. 다음으로 자치를 요구할 지역은 요크셔 Yorkshire 지방이라는 얘기까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유럽과의 통합 문제가 아직도 많은 반발을 사는 판에 단일문화로 수렴되는 세계화는 얘깃거리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영국인다움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런저런 문화가 금세 사라질 거라는 경고 때문에 방해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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