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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시험과 졸업 규칙

hherald 2012.10.15 18:33 조회 수 : 932

시험과 졸업 규칙

다음의 중요한 전환 의례는 마지막 시험과 시험 후 축하 그리고 졸업식이다. 학생시대에서 제대로 된 성인시대로의 이동이다. 학생시대 자체는 어떻게 보면 연장된 해방의식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중간지대 형태로, 사춘기 십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이다. 대학생활은 성인으로 바뀌는 것을 다시 3년(영국의 대학교는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대개 3년이다 - 옮긴이) 연기해버린 것이다. 이 중간지대가 지속되는 동안은 아주 쾌적할 것이다. 학생들은 성인의 특혜는 다 누리면서도 그 책임은 아주 적게 진다. 영국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공부량, 특히 논문 위기(이 말은 논문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에 언제나 엄살을 부리고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학위 과정의 공부량은 직장의 업무량에 비하면 크게 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시험 수난 역시 치유성 엄살의 핑계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자신들만의 불문율이 있는데 특히 겸손 규칙이 중요하다. 시험을 앞두고 대체로 차분하고 자신 있다 해도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당신은 틀림없이 시험에 실패할까봐 걱정이 되고 자신감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라고 가장해야 한다. 사실 이건 굳이 말 안해도 다 아는 얘기다(비록 수도 없이 반복한 얘기라고 하더라도). 오로지 아주 건방지고, 거만하며, 인관관계에 둔감한 학생들만 시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고 보통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당신이 정말 미친 듯이 기를 쓰고 공부했다면, 그걸 어느 정도 드러낼 때조차 오로지 자기비난 대사를 읊듯 우는 소리를 해야 한다. "난 정말 열심히 하긴 했는데 유전자 쪽은 엉망이야. 난 그쪽은 완전히 망칠 것 같다. 어쨌든 한쪽에서 문제가 나올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제대로 복습을 안 했거든. 완전히 머피의 법칙이지 뭐야. 안 그래?" 어떤 것을 확신하면 확신하지 못 하는 다른 쪽을 이용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난 사회학 쪽은 괜찮은데 아무래도 통계학 쪽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아"라고 하면서.
시험 전에 이렇게 우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큰소리치면 안 된다는 학생들 사이의 미신 때문이고 정말 시험을 못 쳐서 바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더라도 시험 후에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좋은 성적이 나와도 항상 놀라는 시늉을 해야 한다. 심지어 마음속으로는 그런 결과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구, 하느님 맙소사, 난 이걸 정말 믿을 수가 없네"가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의 표준 반응이다. 그리고 의기양양해 하는 게 당연한 경우에도, 좋은 성적은 머리가 좋거나 노력을 많이 해서 얻은 게 아니고 순전히 운이 좋은 거라면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한 옥스퍼드 의대 학생이 최우수 성적을 받았다. 친구와 친척들과 축하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축하를 받으니 계속해서 머리를 숙이고 양손을 올려 부끄러워하면서 변명을 한다. "과학 과목은 정말 별것 아니라니까요. 정말 머리가 좋아야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답이 거기에 있는 거잖아요. 외워서 답을 쓰면 되는 건데요. 이건 그냥 앵무새같이 외우면 되는 거라니까요."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학생들은 걱정거리가 드디어 사라진 뒤의 허탈함을 관례대로 풀어야 한다. 어떤 파티에서나 학생들이 얼마나 지치고 싫증났는지 털어놓는 불평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정말 행복하고 축하라도 하고 싶은데 사실은 좀 허탈하거든" "모든 사람이 도취감에 빠져있는데, 나는 지금 기분이 좀 그래. 왠지는 몰라도." 모든 학생들이 그런 기분을 처음 느끼는 양 하는데 사실 이런 넋두리는 너무 흔하고, 도취감에 빠진 사람은 원래 소수에 불과하다. 
흥분하지 말아야 할 다음 행사는 졸업식이다. 학생들은 이게 정말 지겹다고 주장한다. 아무도 자랑스러운 기분을 못 느낀다고 한다. 정말 지겨운 의식이고, 오로지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부모들을 위해 참을 뿐이다. 신입생 주간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는 창피의 원천이다. 많은 학생들은 부모나 친척들을 식장에 나온 친구, 교수나 지도교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난리다. ("아니오, 아버지! 그분한테 '내 장래 문제'를 물어보지 마세요. 이건 학부모회의가 아니잖아요." "엄마 봐, 제발 감상적인 행동 좀 하지 마세요, 알았죠?" "오우, 할아버지 우시지 마세요! 이건 그냥 대학 졸업장이에요. 내가 무슨 노벨상을 받은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정말 주책없는 부모를 모신 학생들은 지겹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특히 아는 사람들이 근처에 보이면, 눈을 아래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쉰다.
지금까지 교육 받은 중산층의 통과의례인 갭이어, 신입생 주간, 졸업식을 다루었다. 그 이유는 16살에 고등학교를 떠나는 학생이나 18살에 A레벨 2년을 끝으로 대학에 안 가고 교육을 마치는 학생을 위한 국가적이거나 공식적인 통과의례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를 떠나는 청년들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나름대로 축하를 하겠지만, 직업훈련이나 취업 혹은 실업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공식 의례는 없다. 첫 취업(혹은 실업수당 수령)은 기념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단순히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중대한 변화다. 어떤 학교는 상을 주는 행사를 열지만 실제 졸업식은 없다(분명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식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영국의 대학 졸업식보다 더 크고 화려하다). GCSE나 A레벨 결과는 몇 달 뒤에 졸업생 가정에 우편으로 통보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졸업은 학업의 성공이나 성과가 아니고 학창시절의 끝을 의미한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 그리고 학교에서 성인의 세계로 가는 길을 의미 있는 의식으로 기념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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