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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음악으로 만나는 런던-38
아덴라이 들판
 
 
존경스러운 아일랜드 노래 한 곡

축구라는 단순 무구한 게임에 미쳐버린 유럽 대륙, 작년 6월 온 유럽을 광기로 휩싸버렸던 ‘유로 2012’에서 세계 최강 스페인은 우승을 차지하며 출중한 실력으로 지구를 감동시킨 바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감동을 연출한 나라가 있었다. 3전 전패로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신 아일랜드였다. 24년 만에 본선 무대에 진출한 약체 아일랜드는 크로아티나에게 1대 3, 스페인에게 0대 4, 이탈리아에게 0대 2로 완패하며 예선 탈락하였다. 초라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한 아일랜드였지만, 세계인들은 아일랜드에게 아낌없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역부족인 경기력으로 분전하는 선수들에게 아일랜드 응원단이 보여준 아름다운 응원 모습 때문이었다. 그들은 열세인 자국 선수들에게 그 어떤 불만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을 끝없이 합창하며 지고 있는 선수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일랜드라는 나라가 축구의 승패 따위에 집착하기에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나라라는 모르스 부호 같았다. 그들이 세계를 감동시켰던 그 응원가로 쓰였던 노래를 소개하고 싶다. 1970년 아일랜드의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피터 세인트존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노래, ‘아덴라이 들판(Fields Of Athenry)’이라는 다분히 민요풍의 노래다. 우선 가사를 낭독한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필자 소행이기 때문임.)

외로운 감옥 벽에 기대어
어느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네
“마이클, 아이들을 굶겨 죽일 수 없어서
감자를 훔친 당신, 끌려가고 말았군요
감옥선은 벌써 떠날 채비를 하고 있네요

낮게 펼쳐진 아덴라이 들판
자유롭게 날아 오르는 작은 새를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우리 사랑이 피어 올랐던 곳,
외롭게 펼쳐진 아덴라이 들판

외로운 감옥 벽에 기대어
어느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네
“메리, 굶주림과 권력으로부터만 자유롭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을…
난 반역자가 되고 말았구려 
이제 당신이 홀로 우리의 아이들을 키워야 해요

외로운 방파제에 기대어
그녀는 마지막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네
감옥선은 하늘을 등지고 떠나 버리고
그녀는 이제 망명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희망과 기도로 살아야 하리
외롭게 외롭게 펼쳐진 아덴라이 들판.

19세기 지구 최고의 재앙 중 하나가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이 노래는 대기근 당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1847년 시작된 대기근으로 아일랜드는 반쪽이 되었다. 800만 인구 중 200만 명이 굶어 죽고 200만 명은 해외로 이주한 참혹한 사건이다. 감자 마름병으로 주식이던 감자가 사라지자 국민들이 하나 둘 굶어 죽기 시작하였다. 당시 아일랜드는 물론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 당시의 비극적인 아일랜드의 모습은 양심적인 많은 영국인들을 슬프게 하였으나, 그 비극은 영국 제국주의의 무모한 욕심이 초래한 슬픔이었다. 영국 지주들의 착취가 초래한 굶주림이었으며 감자 마름병이 주원인이라는 것은 영국의 역사왜곡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영국은 게으른 아일랜드인들을 비난하거나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의 망발을 하였으나, 일부 양심적인 영국인들은 아일랜드를 구하려다 함께 굶어 죽기도 하였다.
이 노래는 대기근 당시 자식들을 굶어 죽이지 않기 위하여 미국산 저질 감자를 훔친 마이클이라는 젊은 남편과 메리라는 젊은 아내의 이야기다. 당시 영국인 트리벨리언이 미국산 저질 감자를 들여와 아일랜드를 구하려 했으나 미봉책에 그치고 말았다. 그 미국산 감자를 훔친 마이클에게는 권력에 대항한 반역죄가 적용되었으며 호주로 유배될 운명이었다. 두 젊은 부부는 사랑을 피웠던 ‘아덴라이 들판’을 회상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노래의 가장 대중적인 버전은 아일랜드의 발라드 가수 패디 레일리(Paddy Reilly)의 것이다. 90년대 후반 그가 아일랜드의 국민 포크그룹 <더블리너스>에 가입하면서 더블리너스의 버전이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중증의 음악 매니어로서, 축구장에서 이 노래를 합창하는 아일랜드인들을 보면 진한 존경심이 우러난다. 170년 전 조상들의 비극을 생생히 기억해내는 아름다운 발라드, 그 비극적 사건을 잊지 않고 국민가요로 합창하는 아일랜드인들. 부럽다. 우리에게는 왜 이런 노래가 없을까? 불과 백 년도 안된 일본의 착취와 불과 수십 년도 지나지 않은 독재정권의 착취를 우리는 이미 다 잊어도 좋은 것일까? 우리의 국민가요는 그저 화려하고 흥겨운 ‘강남스타일’이면 족한가? 우리에게는 풍요로운 현재만 존재할 뿐 조상들의 처참했던 과거는 잊혀진 계절이어도 좋은가? 이 위대한 아일랜드의 노래를 들을 때 마다, 눈물과 함께 작아지는 나를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둔다. 
                      
 

글쓴이 최동훈은 카피라이터,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광고 회사를 운영하였다. 어느날 런던에 매료된 그는 문화가 현대인을 올바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신념을 붙들고 런던을 소개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londonv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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