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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 - 좋고 나쁘고 불편한

hherald 2012.02.13 19:16 조회 수 : 2122

좋고 나쁘고 불편한

내가 연구하고자 한 것은 나 자신이 속한 고유 문화의 복잡성이므로 참여자로서의 어려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영국문화가 본질적으로 다른 문화보다 더 흥미롭다고 여겨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 용감한 동료들이 연구하는 흙, 설사, 살인 곤충, 형편없는 음식, 엉성한 화장실 등이 특징인 움막살이 부족사회에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억센 기질이 요구되는 민족서지학에서, 조그만 불편도 못 견디고 현대문명의 편리함만 쫓는 내 태도는 절대 인정받지 못할 허약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최근까지 건강에 가장 해로운 곳만 골라 연구함으로써 이런 약점을 벌충하려 노력했다. 주로 거친 퍼브, 평판이 좋지 않은 나이트클럽, 다 허물어져가는 도박상점 등을 다루었다. 나는 동료 민족서지학자들의 여건보다 더 열악하고, 무질서하며, 폭력과 범죄, 각종 일탈이 난무하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서 그것도 남이 다 쉬는 시간에 수년간을 연구조사했음에도 그들보다 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험한 현장조사를 통한 시험에 실패한 이후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이제는 내가 흥미를 느끼는 쪽, 이름하여 '좋은 행동 (good behaviour)의 원인' 에 관심을 돌리기로 했다. 매혹적인 의문에 현장인데도 모든 사회과학자들은 이 분야를 그냥 방치하다시피 했다. 몇 몇 눈에 띄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회과학자들은 문제점에만 집착한다. 그들은 바람직하지 않고 권장할 만한 행동이 아니며, 우리가 막으려 하는 행동의 연구에 모든 정력을 쏟는다.
나의 사회문제조사센터 (social issues research centre: SIRC)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피터 마시(Peter Marsh)도 문제점에만 관심을 갖는 사회과학의 분질에 환멸과 실망을 느꼈다. 우리는 인간의 상호교류에서 가능한 한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제 폭력적인 퍼브를 더이상 찾아다녀야 할 이유가 없어졌고 유쾌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이런 곳은 찾기도 쉬웠다). 우리는 가게 좀도둑과 상점 파손꾼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경비원과 감시원들을 만날 필요 없이, 법을 지키는 평범한 시민들이 쇼핑하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나이트클럽에 싸움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 구애하는 것을 보러 가면 된다. 나는 경마장 관객들이 보기 드믈게 사교적이고 예의 바르게 교류하는 것을 보고는 무엇이 그들의 좋은 태도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결국 3년이 걸린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는 또 축하, 사이버 데이트, 여름휴가, 창피, 기업의 접대 연회, 트럭 운전자, 위험 부담, 런던 마라톤, 섹스, 휴대전화 가십, 차와 손수 하기(DIY)의 관계('영국 남자는 선반 하나를 거는 데 평균 차 몇 잔을 마시나' 라는 화급한 사회문제) 등을 조사했다.
지난 12년간 내 시간은 영국 사회문제 연구 그리고 더 흥미로운 긍정적인 요인, 두 가지를 조사하는 데 거의 비슷하게 쓰였다 (세계 각국의 문화를 비교 연구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좋은 면과 나쁜 면 모두 살피는 균형 있는 시각으로 특별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자부해도 좋을 듯 하다.

나의 가족과 연구실의 쥐들
나는 원주민이라는 신분이기에 참여관찰 임무에서 참여자 요소 면에서는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했다. 그러면 관찰 요소에서는 어떻게 되나? 나는 초연하게 뒤로 물러나 나 자신의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건가? 비록 잘 알지 못했던 '하부문화(sub-culture)' 를 조사할 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그 구성원들도 여전히 나와 같은 민족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단순한 실험용 쥐로 취급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 비록 내가 민족서지학자의 이중인격 중의 반쪽만 갖고 있다 하더라도 -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중인격 중의 반쪽이란 머리를 두드리는 관찰자는 또는 배를 쓰다듬는 참여자 입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친구, 가족, 동료, 출판인, 출판대리인 모두 내가 끊임없이 동족들의 행동을, 세포를 집어 페트리 (Petri) 접시에 올려놓고 현미경으로 보는 흰옷 입은 과학자 심정으로 보아왔다고 지적해주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또 나보다 훨씬 더 유명한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 로빈 폭스가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이런 훈련을 시켜왔다는 점도 상기시켜주었다. 다른 유아들은 유모차나 침대에 누워서 천장 또는 침대에 매달린 동물 등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코치티 (Cochiti) 인디언의 요람판자에 묶인 채 세워져 전형적인 영국 학자 가족의 행동양태를 관찰자 입장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완벽한 과학자로서 견지해야 할 거리 두기에서 역할모델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첫 아이인 너를 임신했다고 말하자마자 아버지는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린 침패지를 한 마리 사서 같이 키워보자는 얘기였다. 영장류 동물과 인간의 발달을 비교하는 사례연구를 하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즉시 반대했고, 한참 지난 다음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괴짜였고 부모로서는 자격미달이었는지를 얘기했다. 나는 그 제안의 도덕적인 문제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정도로 넘어 "아주 멋진 생각인네 뭐, 만일 그렇게 했다면 정말 매혹적이었을 텐데"라고 했다. 그때 엄마는, 물론 처음이 아니지만, "너는 어쩌면 네 아버지하고 그렇게 똑같니?" 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또 어머니의 의도와는 달리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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