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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44회 성별과 쇼핑 규칙

hherald 2011.05.23 17:49 조회 수 : 1382



성별과 쇼핑 규칙


쇼핑에 대한 구분에는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남자는 여성들보다는 쇼핑을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 어떠한 쇼핑에서든 즐긴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영국 노년층 남자의 사고에는 쇼핑 즐기기를 금하는, 혹은 적어도 그런 즐거움이 있다고 인정하거나 말하는 것을 금하는 불문율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쇼핑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남자답지 못한다고 여긴다. 진정한 남성미는 특히 필수품이 아닌 물건과 고급품을 포함한 모든 상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이지 즐겁자고 하는 일은 아니다. 그에 반하여 대다수 여자들은 재미로 하는 쇼핑을 기꺼이 인정한다. 심지어 일부는 비축을 위한 쇼핑조차 대단히 즐긴다고 한다. 혹은 적어도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규칙을 따르지 않는 남자와 여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표준이 아니라 별종들로 여겨진다.

쇼핑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규칙은 몸가짐에 나타난다. 나는 이를 수렵 채집 규칙이라고 부르는데, 남자는 설득을 당해서 마지 못해 쇼핑할 때는 사냥꾼처럼 한다. 여자는 쇼핑할 때 채집하듯이 한다. 남성 쇼핑은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 남성다운 쇼핑) 목적론에 입각해 있다. 먹이를 선택하고 옆도 안 돌아보고 단호하게 잡아챈다. 여성(혹은 여성다운) 쇼핑은 더 유연하고 기회 주의적이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무엇이 있는지 본다. 대충 무엇을 찾는지 알면서도 그것보다 더 좋은 것, 혹은 바겐세일 상품을 보면 마음을 바꾼다.

상당수 영국 남성은 자신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쇼핑을 못하는지 강조해서 남성다움을 나타낸다. 그들은 쇼핑을 여성의 기술로 여긴다. 이것을 너무 잘하면, 사냥꾼 같은 몸가짐을 인정받아야 하는 남성의 성적 취향이나 기백을 의심 받을 위험에 빠진다. 자신의 이성해 취향을 애써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쇼핑 기술은 동성애 남자나 정치적으로 바르게 행동하려는 사람, 남녀평등 신념에 의해 가사를 돕는 신남성(new man), 여성 애호가들만이 자랑스러워한다는 이해가 암암리에 자리 잡았다. 진짜 남자가 해야 할 일은 쇼핑을 피하고 쇼핑에 대한 증오를 고백하며, 쇼핑을 꼭 해야 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정도로 엉망으로 해야 한다.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인이 일부러 사고치기 (klutzing out)라 부르는 방법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요청 받은 가사일을 일부러 엉망으로 처리해 다시는 그일을 시키지 않도록 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영국 남성이 쇼핑을 못하는 다른 이유는 쇼핑을 못한다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들 배우자는 대개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준다. 남자들이 슈퍼마켓 내에서 길을 못 찾는 무능력을 보고 화를 내는 척하고, 그것을 계속 놀리고 남들에게 최근의 바보 같은 실수를 얘기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남성미를 과시하는 것을 은근슬쩍 도운다. 내가 슈퍼마켓 커피숍에서 인터뷰한 부인은 "오, 저 사람은 전혀 가망이 없어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그렇지요? 당신?" 이라고 하면서 짐짓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짓는 남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내가 토마토를 사오라고 했더니 글쎄 토마토 케첩 깡통을 사가지고 왔지 뭐예요. 그러곤 하는 말이 그것도 토마토로 만든건 맞잖아 하지 않겠어요? 기가 막혀서! 토마토 케첩을 샐러드 만드는 데 어떻게 써요? 남자들이 늘 그렇지요 뭐!" 남자는 분명 자부심으로 인한 홍조를 띠면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확인 받았기에 매우 유쾌하게 웃었다.


'쇼핑은 절약' 규칙



대개 일상용품을 비축하는 타입의 쇼핑을 하는 영국 여성들에게 쇼핑은 기술이자 관습이다. 심지어 비교적 부유한 층에서도 쇼핑이란 철저히 절약해서 해야 하는 일로 이를 잘하면 자부심을 갖는다. 모든 것을 가능하면 싸게 사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가격에 비추어 좋은 것을 사야 하고 낭비나 사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영국 쇼핑객은, 쇼핑은 지출 행위가 아니고 절약 행위라는 취지를 공유한다. 당신이 식품이나 옷에 얼마나 썻는지를 말할 게 아니고 얼마를 절약했는지를 얘기해야 한다. 당신은 절대 어떤 물건에 터무니없이 돈을 썼다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싼 물건을 찾는데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끼고 얘기해도 된다.

이 규칙은 모든 계급에 적용된다. 상류층에서도 터무니없는 소비는 천박하다고 여기며 하류층에서는 거드름을 피운다고 한다. 노골적이고 어리석은 미국인이나 어떤 물건에 얼마나 썼는지 자랑해서 자기 부를 내보인다. 영국인은 계급을 막론하고 어떤 물건을 얼마나 썼는지 자랑한다. 이는 돈 얘기 금지의 몇 안되는 예외 중 하나다. 어느 정도가 싼 것인지는 계급과 수입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원칙은 같다. 당신이 얼마를 주고 샀든, 어찌하다 보니 절약했다고 하면 된다.


사과와 불평의 예외


당신이 비싼 물건을 제값 다 주고 샀을 경우에는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그 모두가 대단히 영국적이다. 사과하거나 불평해야 한다. 오, 어쩌면 이래서는 안 되는 건데, 너무 비싼 건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정말 못됐어요, 혹은, 정말 말도 안되게 비싸더라구요. 그렇게 비싸게 받아도 괜찮은지 몰라? 기가 막힌 바가지지요.

이 두 가지 다 결국은 간접적인 자랑이다. 공공연히 부를 과시하는 천한짓을 하지 않고도 미묘하게 낭비의 능력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그리고 두 가지 다 공손한 평등주의의 한 형태이다. 부자조차도 때때로 자신이 산 아주 비싼 물건을 창피해하면서 사과하거나 언짢아하고 분개하는 척한다. 그들은 별로 힘 안 들이고 살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빈부 차에 관심을 쏟지 않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영국인의 삶이 그렇듯이, 쇼핑도 예의 바른 조그만 위선 덩어리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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