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무거운 냄비 셋트를 한 박스 업고 오느라 막상 필요한 것은 들고 오지도 못했다고 아쉬워합니다. 아니 왠 냄비 셋트? 냄비가 집에 종류 별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가, 했더니 왈, 몽롱한 가운데 TV홈쇼핑 채널을보다 보니 특수 기술이 적용된 최첨단 진공 냄비를 안 사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문을 넣고 있더라고 합니다. 수천 마일을 날아온 특수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으니 맛이 그런대로 괜찮더라고 합니다.
정신줄을 놓지 말자
홈쇼핑 채널을 보다 보면 첨단 마케팅 기법으로 무장된 언니, 오빠들이 출현해서 순식간에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데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싶습니다. 요즘은 옛 동료들, 선배, 후배 한의사들도 출연해서 한약재도 포장을 근사하게 해서 마케팅 테크닉을 구사하면서 팔아대는데 듣고 있노라면 같은 한의사인 저도 홀딱 넘어갈 정도입니다.
일단 잡숴보쇼 (진단 같은 것은 필요없고… )
각종 건강 식품, 영양제, 보충제, 비타민, 미네랄, 각종 버섯, 홍삼, 산삼, 산수유, 백수오(이엽우피소로 판명), 공진단, 천연물이며 한약재며 여러 가지 상품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판매하는데 어찌나 기똥차게 선전을 하는지 듣다 보면 나한테 다 해당되는 증상이고 사다 먹으면 병이 다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인망 어선으로 다 쓸어담듯 광범위한 증상을 나열하면서 이런 소위 기똥찬 명약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합법과 위법, 허위 과장 광고의 경계를 예술적으로 드나드는 본보기입니다. 자연에서 나는 성분에 대한 독점권,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천연물의 특성 상 많이 광고해서 띄우고 유행을 만들어 내고 많은 물량의 이윤을 남기고 빠지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입니다. 쇼핑 호스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사들이나 한의사들이 직접 출연해서 광고, 선전하는 모습은 더욱 웃긴데 자신의 평소 소신이 실로 그러한 것인지, 자본주의의압력에 굴복한 것인지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진단을 배제한 처방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개체 특이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들입니다. 돌팔이의 특성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구에 꽂혀, 망치를 가졌으면 모든 것을 망치로 해결하고 도끼를 가졌으면 모든 것을 도끼로 해결하듯, 증상이 무엇이든 이것 하나면 만병통치라고 눈에 힘주어 말하는 데 이를경계해야 합니다. 뒤늦었지만 협회에서 앞으로 이런 쇼 닥터들은 의료법 위반으로 제제를 가하기로 하였습니다. 전 국민 누구에게나 다 좋다고 파는 약은 전 국민에게 별 효과도,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내 속사정을 아는가?
수천년 전부터 동양이든 서양에서든 인간에게서 뚜렷한 개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되었으며 꾸준히 체질에 대한연구와 증명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20세기 거대 제약 회사의 도래로 좋은 말로 하면 ‘표준화’된 치료법, 치료약의 시대가 열리면서 체질에 대한 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동양 의학 같은 전통 의학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대 의학은 사람 자체보다는 ‘증상’ 치료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유전자 연구가 더욱 발달하면서 사람은 유전적으로99.9% 는 동일하나 0.1% 다른 데서 나오는 이 개체성, ‘인간은 너무나 유사한 동시에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 다시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의학에도, 매일의 임상에도 이러한 개체성이 존중되고 적용되길 기대하는 바입니다. 사람은 실험쥐처럼 동일하지도 않고 동물 중에 같은 종 안에 가장 큰 개체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단적인 예를 들면 간 기능이 정상인에서 무려 30 배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성호르몬 수치도 굉장한 변이를 보입니다. 한의사들은 이런 체질 차이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으나 연구 인력은 적고 대부분 체질 소매업에 종사하느라 체질에대한 대 전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별로 나오고 있지 않고 있으나 오히려 서구에서 Biochemical individuality 니 body typing, metabolic typing이니 하면서 특히 Functional Medicine 분야에서 진중한 탐색이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몸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약효가 좋을 수록, 뚜렷한 약효가 있을 수록 더욱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사람을 더욱 가린다는 점, 따라서 더욱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여러 기업에서 주기적으로 이런 약재, 저런 영양소를 들고 나와 온 나라가 떠들석 하도록 띄우고 유행을 만들려고 노력하겠지만 사람의 몸은유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 사람은 너무나 다르고 질병 발생 양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여러 가지 원인이 다원적으로 얽혀있어 하나의 케미칼로, 하나의 약초로 해결하기 힘들 다는 점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한의사
前 Middlesex 대학 부설 병원 진단학 강의
The Times선정Best Practice crite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