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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직업상 대영박물관을 자주 간다. 대영박물관의 아름다운 방 '한국실'에도 자주 간다. 한국실을 찾은 한국인들은 대체로 두가지 반응를 보인다. 방이 너무 작다는 불만과 관람객이 너무 적다는 불평이다. 이어서 궁금해한다. 일본관, 중국관도 있는가? 한국관보다 큰가?

철학의 시조라고 불리울만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것(무지의 지)'을 철학의 시작이라고 보았지만, 자신을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자신을 알려는 노력일 것이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남을 알아야 한다. 남을 모르고는 나를 알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는 기성 지식의 파괴나 전통적 편견에 대한 부정, 즉 새로움을 추구하는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정신을 의미하고 있다.

한국이 한국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라는 화두를 문화쪽으로 좁혀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다. 

일본 민예운동의 선구자였던 야나기는 식민지 조선을 방문하고 '한국의 미'에 흠뻑 빠졌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의 미'를 탐구하는 책들을 썼으며, 친한파 일본인이라는 명예를 한국내에서 오랫동안 누려온 인물이다. 식민사관에서 탈출한 한국에서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등장한 것은 시인 최하림등이 그의 평가에 이의를 제기한 1970년대부터다.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정권은 그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한바 있다.

한국인이 알고 있는 '한국의 미'에 대한 고정관념은 대부분 야나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조백자의 색을 '애수의 색'으로 본다든지, 한국예술을 '선의 예술'이라고 한다든지, 곡선의 예술을 슬픔의 미로 본다든지, 한국인을 백의민족 즉 순수에 집착한 민족으로 이해한다든지, 한국의 예술을 전반적으로 '한의 예술'이라고 부른다든지.

여기서 뒤늦게 야나기의 한국예술론에 대해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가 열렬히 공부하고 추종했던 영국의 윌리엄모리스의 '생활사회주의'가 인류의 낙원을 중세에서 찾았던,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던 중세주의와 맞물려 있음을 상기하고 싶다. 

마치 레비스트로스박사가 보다 미개적 사회 '슬픈 열대'에서 문화적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여 서구우월주의에 일침을 가했듯이, 야나기는 낙후된 식민지 조선에서 문화적 상대성을 찾았던 것 아닐까.

문제는 한국에서 아직도 야나기를 능가할만한 통찰력을 지닌 미학자가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야나기의 한국미에 대한 감상을 뒤엎어버릴만한 천재적 미학자를 배출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미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는 이 커다란 비극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무감각하다.

자신을 알기에는 너무도 남에게 무관심했다. 88 올림픽 전야제에서 우리가 부채춤을 추었다고 해서 중국문화가 지닌 부채춤의 오리지널리티가 한국으로 넘어온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들인 모네나 고호가 맹렬히 존경했던 일본 천재화가 호쿠사이를 대다수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한국미술의 수치스러운 낙후성 언저리에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수재들이 영국학교수가 되거나 영어영문학 교수가 되는 것이 다반사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수재라면 의례 법대나 의대에 진학해 보장된 수입을 전제로 공부해야 했다. 한국의 수재들이 육법전서나 히포크라테스선서를 외우는 사이 한국의 미는 척박한 땅 위에서 저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맹목적 애국심처럼 교조적인 것도 없다. 가치없는 것도 없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던 '무지의 지'는 일상적 관념이나 기성의 지식에 대한 회의이자 파괴를 의미한다. 한국인이 알고 있는 한국의 미를 회의하고 파괴시켜줄, 그리하여 야나기 무네요시의 망령에서 한국을 벗어나게 해줄 천재적 미학자는 도대체 언제쯤 나타나실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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