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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도로 분노와 '우리 옛날에 이러지 않았는데' 규칙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방문객들은 영국인들은 놀랄 만큼 예의 바른 운전자라고 인정한다. 사실 많은 방문객들은 우리가 '전염병' 같은 ;도로 분노(road rage)'로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토로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놀라고 어떨 때는 재미있어 한다. 여행을 많이 한 어느 관광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 사람들은 외국에 한번도 안 나가봤대요?" 라고 묻는다. "영국 운전자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공손하고 잘 처신하는지 이 사람들은 모르나요?" "당신들이 이걸 도로 분노라고 부른다고요?" "당신은 도로 분노가 어떤 건지 보려면 미국, 프랑스, 그리스로 가보세요. 젠장! 아무데나 가보세요. 영국만 말고. 당신들이 도로 분노라 부르는 것이 거기서는 그냥 운전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영국답다"라고 한 영국 애호가이자 예리한 통찰력을 자랑하는 이민자 친구가 말한다. "몇몇 친구들이 흥분해서 서로 치고받는 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가 무슨 난리나 난 것처럼 시끄럽고, 낯설고 위험한 병이 나라를 휩쓰는 데다 길거리에는 광인들이 설치고 다니니 이제 이 나라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이건 정말 웃기는 소리입니다. 영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공정하고 예의 바른 운전자들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이 나라가 곧 파괴되고 멸망할 거라고 확신한 사람들 같아요."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영국인들은 '우리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라는 향수병에 걸려 있다. 우리는 언제나 나라는 망해가고, 모든 것이 옛날 같지 않고, 우리가 아끼는 영국인다움이라는 보물과 상징(퍼브, 줄서기, 스포츠맨십, 왕실, 예의)은 이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어서 세상이 말세가 되고 있다고 믿는다.
도로 분노에 대한 진실은 이렇다. 인간은 텃세를 부리는 동물이고 자동차는 '바퀴가 달린 집'이다. 그래서 자동차는 특별한 영토이고 이 영토가 위협 받는다고 느끼면 인간의 방어감각이 살아난다. 고로 '도로 분노'는 놀랄 일도 아닌 세계적 현상이다. 그래서 영국 언론의 충격적인 기사 제목은 이런 인간 본질에 대한 영국식 표현인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이런 일은 그렇게 많지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다.
나는 영국인에 대해 긍정적인 표현을 할 때는 상당히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기에 주저하는 수식어를 더하려 노력한다. 왜냐하면 내 경험에 의하면, 출판물에서건 통상의 대화에서건 영국인을 칭찬하면 비판하는 것보다 항상 훨씬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내가 영국문화나 영국인의 어떤 태도를 비판적이거나 심지어 악평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내 말을 보충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칭찬을 하면 마음을 졸이면서 아무리 약하게 말해도 언제나 도전 받는다. 내가 장밋빛 안경을 쓰고 있다고 나무라고 반대 예를 들면서 집중공격한다. 모두들 나의 관찰과는 모순되는 일화와 통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국인은 자신들이 정말 대단히 끔찍하고 불쾌한 패거리임을 증명해야 속이 시원한 족속이다.
이는 사회학자들을 원래 문제점(철자가 'd'로 시작하는 일탈deviance, 기능장애dysfunction, 무질서disorder, 침범delinquency 등의 온갖 나쁜 것들)을 연구해야 하는데, 나는 내 직업의 불문율을 깨고 좋은 것도 연구하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오로지 옹고집 비애국자 영국인들만이 자신들에 대한 좀더 긍정적인 연구를 하자는 나를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외국 언론과 인터뷰할 때, 관광객, 방문객, 이민자들과 담소를 나눌 때, 그들은 항상 영국인도 때로는 유쾌하고 심지어 놀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대단히 기쁘게 인정한다. 단지 영국인만이 그걸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칭찬을 암시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회의를 하고, 불평을 늘어놓고, 논쟁하기 시작한다. 미안하지만 그 불평불만 회의론자들과 말세론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내 연구결과를 바꿀 생각은 없다. 그들은 원치 않더라도, 자신들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칭찬이라는 야릇한 조각을 삼키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의 규칙
나는 지금 무모한 짓을 하고자 한다. 나는 보기 드문 실수를 제외하면 영국 운전자의 질서, 분별, 예의 있는 품행은 호평 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내 외국인 제보자는 영국인은 좋은 태도를 유지해온 전통과 경험을 고마운 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옆길이나 작은 길에서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큰길로 나올 수 있게 양보를 받는 것, 당신이 길을 양보해주었을 때 언제나 감사를 받는 것, 모든 운전자가 앞 차와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것, 추월하려고 바짝 따라 붙거나 경적을 마구 울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외길이나 양쪽 갓길이 모든 차로 가득 차서 거의 외길이 된 상태에서 양쪽 운전자들이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양보하고 그때마다 양보 받은 차는 고맙다는 손짓을 하고 가는 것, 모든 차량이 보행자 절대 우선 건널목에서 언제나 서는 것, 심지어는 보행자가 아직 건널목에 발을 내려놓지도 않았는데 먼저 서는 운전자(내가 만난 관광객은 너무 놀라 이를 계속 시험해보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정지신호나 적신호 없이도 자동차들이 정지했다고 한다), 경적 울리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여기며, 이는 오로지 위급하거나 비상시에 쓰고,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처럼 대화 수단이나 감정 토로용으로 쓰지 않는 것 등등 (심지어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는데도 모르고 있으면 뒤에 있는 영국인 운전자는 당신이 알아서 움직이기를 바라면서 어느 정도 기다려준다. 그래도 안되면 당신이 초록색 신호의 유의하라는 뜻으로 거의 사과하는 듯한 아주 약한 '경적'을 울린다).
이 모든 것은 우리는 -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닌데도 -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고마운 줄 모르고 있다. 나는 영국 운전자가 자동차 선행의 전형이라거나, 어쩌다 마술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관대한 인내심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규칙과 전통이 있어, 그것이 어느 정도 자제심을 장려하기 때문일 뿐이다. 화가 나거나 실망할 때는 영국인 운전사들도 서로 욕을 한다. 사실 그럴 때 쓰는 욕도 심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고함을 지르고 싸우는게 아니고 거의 닫힌 유리창 뒤에서 욕을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감정 조절을 못 해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거나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하면 이건 정말 주목 받을 사건이다. 그래서 분개한 목소리로 며칠을 슬퍼하고 혀를 차면서 이것이 바로 거리 분노 전염병과 도덕관의 추락 증거라는 등 개탄한다. 사실 이런 일은 어느 나라에서건 짜증나는 일이긴 하지만 비교적 사소한 일일 뿐이다.

페어플레이 규칙

영국인의 운전태도는 공정한 줄서기와 좋은 매너 원칙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자동차의 페어 플레이 규칙을 깨는 것은 보행자의 새치기 행위와 마찬가지로 의분을 불러일으킨다. 운전자는 예상되는 새치기꾼을 예의 주시한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 나가면서 슬쩍 옆을 보고 앞 차간의 간격을 줄여 새치기가 예상되는 운전자의 눈을 피하면서그의 기회주의적 운전을 훼방 놓는다. 
고속도로나 큰 국도에서 빠져나가는 차선에는 항상 차들이 밀려잇다. 비양심적인 운전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차들을 무시하고 고속 차선으로 끝까지 간 뒤 나가는 차선으로  다시 끼어들려 한다. 이는 새치기 같은 짓임에도 이 죄인들이 받는 벌은 (보행자들과 마찬가지로)얼국 찡그림, 불쾌한 시선 투덜거리는 욕설들이다.아마도 성나고 외설적인 동작 같은 것을 좀 더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언제나 굳게 닫힌 안전한 유리창 뒤에서나 이루어진다. 경적은 그런 경우에 아주 드물게 사용된다. 불문율의 규칙에는 화가나서 울리는 경적은 아주 위험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타이르기 위해서 쓰는 것이지 심히 비 도덕적인 운전자에게 쓰는 게 아니라고 되어 있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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