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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행 三人行- 소주

hherald 2022.02.28 17:06 조회 수 : 741

 

20년 전 이 뉴몰든의 하이스트리트는 어땠는가?  우리 한국인들이 넘쳤다. 매일 새로운 얼굴들이 이 길을 걸어갔다.  대한민국의 최신 유행을 이 거리에서 매일 볼 수 있었다. 뉴몰든은 명실상부한 유럽최대 한인타운이었다. 

 

송가네 수퍼가 한국식자제를 들여왔다.  고추가루가 들어오고, 배추가 들어왔다. 대부분의 반찬 재료가 들어왔다. 더 이상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주는 젓갈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비디오 대여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연속극을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서 빌려주었다. 

 

아내는 토요일 오전이면 송가네에 가서 주말에 아들에게 보여줄 비디오를 빌렸다. 용의눈물, 청춘의 덪, 각종 코미디프로들. 한 주를 열심히 공부한 아들은,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랑 한국 비디오를 보았다. 

 

조국을 떠나 영국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말을 잊어 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언어란 글로만 배울 수 없는 것이기에, 한국의 연속극, 코미디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익혀보라 했다. 토요일 오후, 아내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고, 아들과 함께 비디오를 봤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설명을 해 주었다.  송가네 수퍼, 나는 송가네 수퍼를 오래 기억 할거다. 송가네 수퍼의 비디오 대여 서비스와, 아내의 꾸준한 노력으로, 아들은 우리 말을 잊지 않았고, 우리 문화를 잊지 않았다. 

 

아무리 영국식으로 변화를 시도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감기 몸살이 나면 뜨끈한 육개장 한 그릇이 그리워지고, 더운 여름이 되면 삼계탕 한 그릇이 그리워진다. 한국 가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짜장면으로 먹고 왔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렇게 그리웠던 것이 우리 음식이었다. 

 

코리아푸드가 나타났다. 커다란 매장에 많은 종류의 한국음식 재료들이 들어왔다.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에는 코리아푸드의 서울플라자가 생겼다. 우선 급한 것은 서울플라자에서 구입하고, 많은 양은 코리아푸트에서 장을 보았다.  뉴몰든으로 몰려들던 한인들이 더 이상 뉴몰든으로 장보러 매주 올 필요가 없어졌다. 

 

에이치마트가 나타났다. 우리 음식재료 뿐 아니라,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학용품도 있었다. 이런저런 과자도 많았다. 최근에는 오세요 라는 에이치마트의 각 지역 가게들이 생겼다. 영국 직장인들이 출근 하면서, 오세요에서 김치를 사서 아침으로 먹는 일이 생겨났다.  

 

코리아푸드와 에이치마트에서는 생선회가 등장하고, 갓 쪄낸 만두가 등장했고, 김밥, 잡채가 등장했다. 무엇보다 소주가 등장했다. 

 

소주가 등장하면서, 모든 한국 식당들이 소주를 메뉴에 넣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밥 한끼 할 때는 소주를 시켰다.  맥주 한 잔 시켜서 맥주만 홀짝 홀짝 마시는 영국 펍에서 탈출해서, 한국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소주를 시키고, 찌개를 시키고, 풍성한 안주를 시켜서 술을 마신다. 한잔 권하고, 권하며 친구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친구의 눈빛을 보고, 웃은 얼굴의 표정을 본다. 금방 구워 나온 파전 접시를 친구 앞으로 쓰윽 밀어주고, 친구의 술잔이 비었는지 살펴본다. 소주는 그렇게 우리가 만나고, 잔을 권하고, 안주를 권하던 우리의 정으로 되돌아 가도록 한다.

 

펍에서, 연장자는 테이블에 앉아있고, 젊은 이들이 여러 잔의 맥주를 들고 테이블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인들은 신기해 했다. 아니, 각자가 한 잔씩 들고 가면 안전하고 쉬울 것을, 왜 몇 사람이 어렵게 여러 잔을 들고 가는지. 영국인들은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에 오래 살아도 모른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하는지.

피자를 시키거나, 닭 날개 튀김을 시켜서 안주로 먹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안주가 그리웠던가?  술만 먹는 영국식 펍 문화에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하다가도 테이블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 대는 부대찌게며 해물탕, 곱창전골이 생각났다.

그러던 차에 등장한 소주는 우리의 발길을 펍에서 한식당으로 돌렸다. 한식당을 가면 소주가 있다. 나는 소맥을 즐긴다. 어느 날, 영국인 친구들을 코리안바베큐 식당에 초대했다. 머뭇거리며 소맥을 마시던 친구들이 그 맛에 반해서 연거푸 마셨다. 숙취가 있다고 조심하라 했건만, 처음으로 그렇게 취해 보았단다. 그 다음날 아침에 괜찮을까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괜찮단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 소맥이 너무 맛있었다고. 또 가자고. 

 

소주 한잔을 앞에 놓고 어울릴 수 있는 우리의 정서가 뉴몰든에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소맥의 맛을 영국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갖은 안주를 자신의 접시에 덜어서 먹는 풍성함을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이곳의 터줏대감인 영국인들과 어울리고 싶다. 앞으로 같이 살아가야 할 그 친구들에게 소주 한잔 권하고, 맛있는 안주를 권하며, 친구의 삶을 듣고, 내 마음을 털어놓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말한다. 우린 교회에서 예배 드리며 공동체의 삶을 산다고. 소주 보다는 찬송가가 더 좋다고. 아, 그랬구나.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문화가 우리 한인사회에 필요 하구나. 소주를 능가하는 그 어떤 문화가 말이다. 뉴몰든은 유럽에서 제일 큰 한인타운이다. 이제는 이웃 영국인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어떤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소주,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대안은 없는걸까? 

 


  

김인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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