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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1985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왔다. 바람이 불면 길거리의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날리고, 스카겔 이라는 노조 지도자를 중심으로 노조의 파업이 연일 있었다.  망해가는 대영제국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런던 북쪽 하로우에 자리잡았다. 

 

일링교회를 찾아가는데 기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역에서 내렸다. 조깅을 하고있던 분에게 교회 주보를 보여주었더니, 처음 가는 길이냐고, 찾기 쉽지 않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차를 가지고 와서 교회까지 태워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연락처라도 받고 싶었으나, 그 영국 신사는 미소로 답하고 갔다. 영국의 첫 인상은 도로에 나뒹구는 쓰레기였지만, 영국에서의 첫 일요일의 인상은 남을 도와주는 ‘영국 신사’였다.

 

그렇게 시작했던 유학생의 생활 동안 뉴몰든은 감히 발걸음을 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한국 식당이 있고, 한국 수퍼마켓이 있었지만, 식당에서 김치까지 돈을 주고 사서 먹어야 한다는 말에 가난했던 유학생으로서는 뉴몰든은 범접하기 어려운 꿈의 도시였다. 누군가가 뉴몰든에 가서 한국음식 재료를 사서 음식을 했다며 초대를 하면 얼마나 설레었던지.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먹고, 한국음식이 애절하게 생각나면 소호에 나가, 웡키라는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키고, 고추기름 잔뜩 얹어 먹었다. 그것도 사치였다.

 

2001년 9월, 온 가족이 영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뉴몰든에 자리를 잡았다. 장인장모를 모시고 이민을 와서, 당연히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뉴몰든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뉴몰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럽에서 제일 큰 한인사회라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영어를 몰라도 살아갈 수 있는 도시라고 했다. 당시 약 2만여명의 한인들이 뉴몰든을 중심으로 한 킹스톤 지역에서 살았다.
 
뉴몰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인들은 모두 사기꾼이라고 했다. 모든 한인들이 영국에 와서 살다가, 뉴몰든 한인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 작고 큰 사기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임금을 떼먹는 일도 자주 일어났고, 엉터리 상품을 고액에 팔아 넘기는 일도, 여행경비를 받고서는 밤새 사라졌던 여행사들, 영국 법률을 모른다고 고액의 프리미엄을 받고 형편없는 사업체를 떠 넘기고 도망갔던 사람들.  그래서 뉴몰든에 사는 사람들조차 한국인들을 조심하라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어찌하든,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 뉴몰든과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장인어른은 한인사회의 가게들과 한인회를 다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장모는 어린 손주 손을 잡고 뉴몰든 하이스트리트를 산보 하시며 시간을 보내셨다. 평양이 고향이셨던 장인 장모는 뉴몰든 땅에 자리를 잡는 탈북교민들을 보면서 고향에 두고 왔던 친지며 친구들과 그 친지 친구들의 아들 딸 들을 대하듯 하셨다. 초대하면 즐겁게 가서 영국에 온 것을 축하 해 주었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덜 겪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셨다.

 

그랬던 장인 장모는 모두 돌아 가셨다. 이제 영국으로 왔던 가족 가운데 두 분이 떠나셨다. 아직 장가 시집가서 손주 손자를 낳지 않은 아들 딸만 있어서, 가족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었다.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로 나와서 자식들이 번창하여 큰 민족을 일구었다는데, 나는 가족이 줄었다. 언제쯤 영국에서 수상이 되는 요셉이 우리 한인들의 후손 가운데서 나올지? 

 

물속에 떨어진 잉크방울이 퍼져 나가듯이, 우리 한인들은 이제 영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교민과 학생들을 모두 합하면 옛날 한인들의 수나 지금 한인들의 수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단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북쪽 하일랜드까지 퍼져 나간 우리 한인들이 있는 요즘, 뉴물든에서는 예전처럼 많은 한인들을 볼 수 없다.  그나마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한인 음식점을 찾아가야, 노인회가 만든 문화센터를 가야 한인들을 만날 수 있다. 가끔은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의 커피숍에 가면 한인들을 만날 수도 있다.

 

코로나 펜더믹으로 많은 한인들이, 특히 한인교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보면 한국으로 되돌아 갔다는 답변을 자주 듣곤 한다.  좋아했던 싫어했던 예전에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런던 시내를 나가면 곳곳에 친근한 이름의 한국 음식점이 있다. 한인들이 그리우면 한국 음식점을 들어가서 한식 한 그릇으로 그리움을 달래본다. 10년 전 같이 뉴몰든 하이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아픈 한인들의 역사를 같이 만들어 갔던 사람들의 태반이 이 거리에서 사라졌다. 새로운 얼굴들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10년 전에 매일 매일 보이던 새로운 젊은이들 만큼은 아니다. 

 

뉴몰든 하이스트리트를 영국 한인사회를 상징하는 거리로 만들면 좋을까? 어떤 이유로 영국에 온 한인들이 맘 편하게 들러서, 정보도 듣고, 어려움도 해결하고, 기회도 생각해보고, 조언도 받을 수 있는, 집 생각날 때, 엄마가 해 주시던 밥 한끼 생각나면 들를 수 있는,  한인들의 타운이면 어떨까? 케이-문화를 접한 영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인들을 만나고, 한국 문화상품을 접할 수 있고, 한국과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상징적인 한인타운이면 어떨까?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와 뉴몰든, 우리 재영한인들의 한인타운, 유럽에서 가장 큰 한인타운. 이제 뭔가의 중심이 생길 때가 되었지 않나? 그게 식당이든, 까페 든, 문화센터 든, 여행사 든, 아니면 기아 현대차를 파는 판매점 이든, 삼성 핸드폰과 엘지 노트북을 살수 있는 가게 든, 한국식 찻집이나 술집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뉴몰든으로 오면 반겨주는 얼굴의 무엇인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만큼은 이제 이 영국에서도 한인으로서 자리잡지 않았나?

20년 전 뉴몰든 하이스트리트를 걸었던 그 느낌을 그리워하며, 오늘다시 뉴몰든 하이스트리트를 걸어본다. 이 거리의 주인은 한인들이다. 여기에서부터 영국의 한인 이민사가 시작되었다. 이제 이 땅에서 자리잡도록 버텨준 뉴몰든과 그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에 뭔가의 자취를 남겨보았으면 한다.

 

 

김인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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