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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영국 역사에는 두 명의 위대한 대왕(大王)이 있다. 우선 잉글랜드 7국을 통일한 앨프레드 대왕(재위 871~899년)이다. 이 왕은 통일 후 라틴어 문헌들을 고대 영어로 번역 출간해 영어를 영어답게 만들면서 잉글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바이킹들의 침입을 막아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영국의 대왕은 앨프레드만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크누트 대왕(990?~1035년·잉글랜드 왕 재위 1016~1035년)도 앨프레드와 함께 영국인에게 대왕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정복자 크누트의 업적
   
그러나 크누트는 정복자이다. 덴마크의 왕자이던 26살의 크누트는 1016년 당시로는 엄청난 대군인 1만명의 병력을 ‘긴 배(long ship)’라고 불리던 바이킹 선박 200척에 싣고 쳐들어와 잉글랜드 왕위를 쟁취했다. 그리고는 잉글랜드를 19년간 강권 통치했다. 자신에게 반항하는 토착지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빼앗은 토지를 자신을 수행하고 온 덴마크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전국에 중세(重稅)를 매겨 왕국을 유지하면서 재화의 대부분을 덴마크로 보냈다. 그런 뒤 잉글랜드가 자신의 손에 잡혔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강권통치를 누그러뜨려 잉글랜드인들에게도 귀족 작위와 봉토를 나누어 주고 잉글랜드인을 관리로 등용해 충성을 바치게 하고 자신의 수하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당시 잉글랜드를 수시로 침공하던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의 침공을 막아냈다. 당시 또 하나의 권력인 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십일조를 확실하게 제도화했다. 바이킹 침공으로 무너진 교회와 수도원 건물을 모두 수리하고 교회가 없는 지역에는 교회를 신축해 주어 교계와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크누트제국이 햄릿의 배경
   
그렇게 해서 28살의 크누트는 덴마크 왕(1018~1935년)과 노르웨이 왕(1028~1035년)을 겸하고 스웨덴 일부까지 통치해 명실공히 ‘북해제국(앵글로-스칸디나비아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지도를 보면 북해가 바로 크누트제국의 내해(內海)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대의 걸작 ‘햄릿’의 배경 시기이다. ‘햄릿’의 정식 제목이 바로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인 이유이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44㎞ 떨어진 북해 해변 크론보르성이 바로 햄릿의 무대인 ‘엘리노어성’이다. 덴마크는 물론 해외에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한 셰익스피어가 북해 바닷가 성을 주 무대로 삼아 극본을 쓸 수 있었던 배경도 이런 잉글랜드와 덴마크의 역사적 관계 때문이다.
   
이런 업적 외에 크누트는 ‘왕의 힘의 한계(the limits of royal power)’라는 금과옥조 같은 가르침을 남겨 후세 영국의 사회제도와 영국인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현재의 영국을 만든 말들 중 하나가 ‘너희들이 지금 보았지 않느냐? 이제 왕의 힘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Now let all men know how empty is the power of kings)’라는 크누트의 말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거의 모든 영국인이 이 말과 함께 여기에 얽힌 일화를 알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크누트 왕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신하들은 칭송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지금까지 그 어느 분보다도 더 최고로 위대한 분이십니다”라고 누군가 말하면 다른 신하가 “왕이시여! 당신 같은 전지전능한 분은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현명한 왕은 그런 바보 같은 칭송에 지쳐 싫증이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해변가를 신하들과 같이 걷던 중 신하들이 평소와 같이 또 칭송을 시작하자 크누트는 그들에게 교훈을 주기로 결심했다.
   
어느날 크누트는 “내 의자를 가지고 와라. 우리 모두 바닷가로 나가자”라고 신하들에게 명했다. 신하들은 즉시 왕좌를 바닷가 모래로 가지고 왔다. 크누트는 “내가 보기에는 파도가 밀려 들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내가 파도에게 정지하라고 하면 정지할 거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들은 혼돈에 빠졌다. 자기네들이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 온 말이 있기에 감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위대한 왕이 정말 신탁(神託)의 힘을 소지하고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갈망도 있었다. 왕이 신력(神力)을 발휘해 물결을 세워 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나는 그런 힘이 없다”
   
그런 모든 희망과 갈망과 염원을 합쳐 신하들은 “위대한 왕이시여! 명령만 내리소서! 파도는 폐하의 말을 들을 겁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왕은 “그렇다면 좋다. 바다야! 나는 너에게 더 이상 앞으로 오지 말 것을 명한다. 더 이상 밀려들어 오지 마라! 파도야! 더 이상 밀려들어 와 내 발을 건드리려 하지 마라!”라고 소리쳤다. 말을 마치고는 왕은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조그만 물결이 왕의 발끝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바다야! 지금 당장 뒤로 물러서라!”는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파도는 더 밀려와 왕의 발을 건드렸다. 바닷물은 점점 더 차올라 왔다. 급기야는 왕좌까지 차올라 왕의 발은 물론 어의까지 적시기 시작했다.
   
신하들은 왕의 옆에 서서 왕이 미치지는 않았는가 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왕의 신력을 바라기도 하고 믿기도 했지만 결국 현실을 보고는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마침내 왕은 왕좌에서 일어서면서 주위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친구들이여! 봐라! 너희들이 가지기를 바랄 정도의 힘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너희들은 오늘 무언가 하나를 배웠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강력한 왕이 있어 그만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걸 너희가 기억하리라 믿는다. 바다를 비롯한 온 세상을 자신의 손 안에 거머쥔 단 하나의 왕, 우리들의 신 말이다. 나는 너희들이 그에게만 칭송을 바쳤으면 한다.” 그러자 신하들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했다. 그러고 난 뒤 크누트는 왕좌에서 일어나 왕관을 벗어 십자가에 건 다음 절대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다시는 왕관을 쓰지 않았다.
   
크누트 왕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크누트는 ‘왕이 신적 존재가 아님(the King was not divine)’을 신하들과 국민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다.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자연현상을 막을 신탁의 힘(divine power)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여 신하들과 국민들로 하여금 허망한 미망(未忘)에서 깨어나게 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이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왕 자신이 손수 흔들리지 않던 신앙을 깨버렸다는 사실이 주는 함의는 엄청나게 크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지금도 크누트 왕은 영국인의 존경을 받는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왕이 그 옛날에 앞장서서 왕의 권위를 직접 파괴함으로써 후세 왕들에게 교훈을 준 사실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신 앞에서 보인 겸손이 존경의 근원
   
당시 기독교 왕국의 신민들은 ‘왕은 신의 가호로 왕위를 받아 행복한 왕국의 지배자 자리를 누려도 된다’고 믿었다. 이 왕권신수설은 누구도 감히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론이었다. 왕은 신의 신탁을 받은 자라는 불가침의 믿음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크누트는 그런 힘이 왕에게 있지 않다고 증명하면서 신 앞에서 자신의 겸손(humility)을 내보였다.
   
크누트가 보인 겸손의 일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왕정 국가에서 왕에게 무조건 충성하고 따르는 신하들과 국민들은 자기네들의 왕은 무오류라고 믿는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전지전능하다고 진심으로 믿고 싶어 한다. 왕이 신에게 임무를 받고 세상을 구하는 구세주라고 믿고 그를 따르는 일도 당연하다고 믿는다. 크누트의 신민들은 크누트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점이 이 일화를 보는 첫 주안점이다. 신의 대리인인 군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신민들의 믿음을 누리고 즐겨야 할 크누트가 오히려 신민들이 믿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우쳐준 것이다. 여기에 크누트의 위대함이 있다고 영국인들은 여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왕이 아니라 신만이 할 수 있다는 진정한 신앙인으로서의 겸손한 자세가 영국인들이 크누트에게 갖는 존경심의 근원이다. 그 겸손함을 영국인들은 존경한다.
   
크누트 이후 영국 역사에는 절대권력을 누린 왕도 많지 않고,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면서 왕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횡포를 부린 왕도 많지 않다. 이는 균형과 견제(check and balance)를 잘 겸비한 영국 왕정제도와 사회구조 덕분이다. 영국 왕은 프랑스 왕처럼 절대권력을 갖지 않았다. 그렇다고 왕이 거의 힘이 없던 독일처럼 철저하게 지방분권국가도 아니었다. 독일의 지방분권과 프랑스의 중앙집권을 적절하게 조합한 왕국이었다. 과하지 않아서 독재를 휘두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귀족들에게 휘둘리지도 않을 적당한 왕권, 그와 함께 왕권의 횡포를 막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나 왕의 권위에 도전할 정도의 힘은 가지지 않던 귀족들의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 대다수의 왕과 귀족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룬 덕분에 독재나 혼란을 겪지 않았다.
   
물론 전횡을 시도한 왕도 있었다. 의회를 무시하고 전비 마련을 위한 증세를 시도하다가 결국 시민군에 져서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한 인물, 유럽 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이양해 영국 왕 중 가장 굴욕적이라고 평가받는 존 왕(재위 1199~1216년)도 그중 하나다. 의회 없이 증세를 하려다가 시민전쟁에 패배해 결국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참수된 왕권신수설의 신봉자 찰스1세(재위 1625~1649년)도 그렇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영국 역대 왕들은 자신의 자리와 권한을 알고 의회와 귀족들과 적당하게 협상, 타협하면서 통치를 했다.
   
   
   영국인들의 독재에 대한 반감
   
찰스1세를 참수하고 호국경(Lord Protector)이 되어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국을 만든 크롬웰(통치 1653~1668년)도 역설적인 교훈을 남긴 인물이다. 그가 정권을 잡자 처음에 영국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왕이 지배하지 않고 자신들이 선출한 의회가 지배하는 ‘선출된 권력’의 나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인 공화국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의회가 갈라져 큰 혼란을 겪는 사이 크롬웰의 실정과 원두당(圓頭黨·Roundhead)의 극심한 횡포로 국민들은 넌더리를 냈다. 결국 크롬웰의 공화정 실험은 16년 만에 끝났다. 공화정 실험은 크롬웰의 아들인 리처드 크롬웰이 찰스1세의 아들인 찰스2세에게 자발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면서 끝났다.
   
시민혁명 기간 동안 영국인들이 겪은 독재의 공포는 이후 영국의 권력구조와 사회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집권 초기 신민들이 모두 왕으로 즉위하라고 권했으나 크롬웰은 사양하고 왕권보다 더 큰 절대권력의 호국경으로 남았다. 영국인의 권위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잘 파악한 탓이다. 그 이후 영국인들은 왕국이든 공화국이든 절대권력을 가진 정치제도에 원초적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와 달리 대통령제가 아닌 입헌군주제와 내각책임제를 택하게 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아무리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라도 결코 영웅시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공헌이 아무리 위대해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의 각종 공항 이름이나 길, 혹은 광장 이름 어디에도 개인의 이름을 발견하기 어렵다. 영국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프랑스 황제의 지배하에 들어갈 위기에서 구한 호레이쇼 넬슨의 승전을 기념한 트라팔가 광장도 넬슨 동상이 비록 52m 높이의 탑 위에 있지만 넬슨 광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영국 최대의 히드로공항도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따서 윈스턴 처칠 공항이라고 불러도 될 듯한데 그냥 지역 이름을 따서 히드로공항이라고만 부른다. 프랑스의 관문 파리 공항을 샤를 드골 공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인과는 다르다. 물론 런던 시내 각 골목 이름이나 광장에는 개인 이름이 들어간 곳이 많지만 이는 일대를 개발한 귀족이나 부자들의 이름이다. 개인 재산에 대한 존중은 있어도 국가적 영웅에 대한 명명에는 인색한 것이 영국인이다. 개인을 영웅시하면 또 언제 크롬웰 같은 비극이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듯하다.
   
영국은 의회가 거의 전권을 가진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말이 의원내각제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의원 독재국가 같다. 하원의원 650명이 모든 국정을 좌지우지한다. 특히 하원 의석 과반수인 325석 이상을 차지한 여당 의원은 의회와 내각의 장관은 물론 행정부 차관, 심지어는 국장급까지 꿰찬다. 정말 선출된 권력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주의해야 할 사항은 영국 같은 의원내각제에서는 정부 수반인 총리를 국민들이 직선으로 뽑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당의 당수가 바로 총리가 되는 것이다.
   
   
   영웅을 백안시하는 전통
   
과거에는 의원들의 총회에서 당수를 바꾸면 바로 총리가 바뀌었다. 지금은 당원과 의원들이 투표해서 당수를 바꾸면 총리가 총선 없이 바뀐다. 3번의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영국 역사상 가장 장기간인 11년을 총리로 지낸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재임 1979~1990년)도 그렇게 물러났다. 인두세 비슷한 주민세 도입으로 인기가 떨어져 당내 반란으로 임기도 못 채우고 중도에 눈물을 흘리면서 밀려 나갔다. 그래서 영국 총리는 문자 그대로 장관(minister) 중 수석(prime)이라는 뜻의 ‘prime minister’이지 전권을 휘두르는 ‘president’, 즉 대통령이 아니다. 절대적 권력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영국인들에게 이런 내각책임제는 정말 안성맞춤의 정치제도이다.
   
영국인들은 모든 일에 냉소적이긴 하지만 특히 권력에 대해서는 거의 본능적인 반감을 나타낸다. 정치인이 ‘애국심’ 어쩌고 하면 사기꾼으로 볼 정도다. 지나친 사명감을 입에 올리고 독선으로 일관하면 덜떨어진 저능 인간 취급을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미국 정치인처럼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정치인을 잘 볼 수가 없다. 영국인들은 웬만해서는 공식모임에서 국가(國歌)도 잘 안 부른다. 그래서인지 18세에서 24세 영국 젊은이 중 43%가 영국 국가 첫 구절 ‘신이여! 우리의 자애로운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our gracious Queen)’를 모른다고 한다. 13%는 국가의 음을 전혀 모르고 28%는 한 번도 국가를 불러 본 적이 없다는 기막힌 통계도 있다.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국기와 국가에 감정을 대입하는 미국인들보다 애국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영국인들은 남들에게 보여 주려는 애국심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영국인들은 애국심도 얼굴 표정 변화 없이 조용하게 표한다.
   
모든 권력과 권위에 대한 영국인의 초연한 자세는 어쩌면 크누트 대왕의 냉소와 같은 영국인 특유의 기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 누군가가 자신의 불순한 목적을 위해 영국인을 선동하려고 미사여구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늘어놓아도 영국인들은 잘 따라가지 않는다. 영웅을 영웅시하지 않은 그들에게는 권력자 누구도 크누트가 가르쳐 준 대로 영웅이 아니다. 정치인을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에 영국에서는 독재가 자리 잡을 방법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유럽문화탐사(2015), 두터운유럽(2021)
영국인 발견(2010),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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