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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 계급규칙

hherald 2013.01.14 23:04 조회 수 : 1913




직장에서 열리는 은퇴식이나 송별식은 예외이다.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는 통상 영국적인 행사일 가능성이 많다. 술과 끊임없는 유머로 치유되는 사교불편증, 계급 강박관념을 덮는 공손한 평등주의, 간접적인 자랑으로 가득 찬 겸손한 자기비난의 말, 엄살 불평 의례, 장난스러운 선물 증정, 탈억제의 주정, 어색한 악수, 불편한 포옹과 엉성한 등 두드림이 나타난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만 모인 생일, 기념일, 집들이, 은퇴식 같은 개인적인 통과의례 모습은 사실 예상하기 어렵다. 이런 행사에 늘 따르는 케이크, 풍선, 노래, 특별 음식, 술, 건배 등은 역시 빠지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걸 나누는 방식이나 참석자의 태도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나이, 계급으로도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기질.기벽.역사.특유의 심정과 동기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이런 사항은 우리 같은 사회과학자가 아닌 임상 정신과 의사의 영역이다. 




이런 현상은 공식 통과의례에도 해당될 수 있다. 이런 통과의례에 참석하는 우리도 개인이고, 국민성이 정해준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의 개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나 대개 영국인은 공식 모임에서 더 쉽게 행동하며 모든 규칙에 더 충실히 순응한다.
친근한 축하면에서는 우리 행동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고 하여 여기에 규칙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모임은 어떻게 보면 흡사 불규칙동사 같다. 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은 평소보다 더 따뜻함, 자연스러움, 열린 가슴 등을 허용한다. 우리는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의 모임이라고 해서 규칙을 깨진 않는다. 잘 알고 서로 믿는 사람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는 영국인다움이라는 규칙은 우리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행동하도록 특별히 허락해준다. 

계급 규칙 

나는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평으로 끝내기보다는, 다시 계급에 관해 얘기 하고자 한다. 물론 당신은 우리가 이 장을 계급 제도에 대한 참고사항 몇 마디만 하고 끝내리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은 당신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자! 그러지 말고 용기를 내서 한번 해보라! 노동계급과 중산층 장례식에 무슨 중요한 차이가 있나? 중중층 대 상류층 결혼식의 계급표시기는? 물질문화 계급표시기, 의복상의 계급표시기, 계급 걱정 신호를 논해보라! 오우, 알았어! 내가 할께! 그러나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마라. 당신은 제인 오스틴이 말한 "남은 페이지가 얇아진 것을 보고 얘기의 끝이 가까워졌음을 아는것처럼(The tell-tale compression of the pages)" 우리가 끝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영국인의 계급표시기와 걱정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끝을 못 맺을 것이다.
영국인에게 계급과 무관한 통과의례란 없다. 모든 결혼식, 크리스마스, 집들이, 장례식에서 용어와 참석자 드레스로부터 포크의 완두콩 개수까지 온갖 세부사항이 어느 정도는 그들의 계급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계급의 의례

일반적으로 노동계급의 통과의례는 수입에 비추어 가장 사치스럽다. 예를 들면 결혼식은 다들 거창하게 한다. 제대로 된 식당이나퍼브, 호텔 연회장에 자리 잡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크고 화려한 차에 신부를 태워 교회로 데려간다. 신랑신부 측이 제공한, 딱 붙고 가슴이 다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신부 들러리들, 커다란 3층 케이크, 새로 산 일요일 외출용 드레스에 맞춘 장신구를 단 손님들, 결혼식 전문 사진사와 비디오 촬영 팀, 요란한 음악과 술이 넘치는 성대한 댄스파티, 열대 휴양지 신혼여행 등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공주를 위해서 최고만을!'
노동계급의 장례식(거대하고 화려한 조화, 최고의 화관), 크리스마스(비싼 선물, 풍부한 음식과 술), 어린이 생일(첨단기술로 만든 장남감, 비싼 축구 띠와 명품 운동화)과 다른 의례들도 같은 원칙에 따라 치러진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돈을 좀 쓴 것처럼, 성대하게 축하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차를 가지고 프랑스 칼레(Calais)에 건너가서 저렴한 술을 많이 사오는 것('술 구입 항해')이다.

중하층과 중중층의 의례

중하층과 중중층 통과의례는 훨씬 검소하게 치러지는 경향이 있다. 결혼식을 살펴보면, 중하층이나 중중층은 무책임하게 '결혼식에 다 날리는 것'보다 신혼부부가 살 집의 대출금 내는 걸 도와주려고 노심초사한다. 그러고도 결혼식은 제대로, 세련되게 치러야 한다(이 계급들을 위해서 결혼식 예절책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술에 취해 주정하거나 멍청한 짓을 해서 창피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망치는 친척들에 대한 스트레스와 걱정이 상당하다. 
만일 노동계급의 결혼식 표본이 영국 가수 포시(Posh)와 축구 스타 베컴(Beck)의 화려한 결혼이라면, 중하층과 중중층의 기준은 왕실 결혼식이다. 별 다른 주제도 술수도 없이 모든 것이 전통적이고 고상하며 노력한 티가 나는 우아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소자본가들이나 소자본가가 되고 싶은 계급은 결혼식을 아주 잘 계획하고 세심하게 준비한다. 이들이 '서비에테'라 부른 냅킨, 꽃, 좌석 이름표 등의 색깔 모두, 전체를 압도하는 신부 엄마의 파스텔 투피스 정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녀가 그것을 설명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없다. 음식은 자극이 없이 입에 잘 맞고 안전하며, 으깬 감자 매시 포테이토를 '크림드 포테이토'라 부르는 호텔 음식 메뉴이다. 음식 양은 노동계급 결혼식 식사만큼 많지는 않은데, 정갈하게 꽃 모양으로 조각된 파슬리(parsley)와 래디시(radish) 장식을 해서 내온다. 좋은 포도주는 사람 수를 너무 인색하게 계산해서 금세 동나고 신랑 친구 대표로 한마디 해야 하는 제일 친한 친구는 신랑의 총각 시절 야한 얘기로 분위기를 깬다. 신부는 분해서 죽으려 하고 신부 엄마는 노발대발이다. 그러나 꼴사나운 언쟁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아무도 그를 야단치지 않는다. 그러나 화가 나서 서로 식식거리고 일부 고모나 이모들은 오후 내내 서릿발 날리는 표정으로 신랑 친구를 상대도 하지 않는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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