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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인간에게 명예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타인은 있지도 않다고 여기는데 자신은 있다고 강하게 믿은 명예 때문에 감정과 금전을 심하게 소비해서 인생을 망친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나 많이 본다. 바로 이런 사례가 영국 미술계에서도 있었다. 영국 미술계뿐만 아니라 영국 역사에서도 가장 흥미로우나 가장 허망하게 끝난 명예훼손 소송이다. 바로 미국에서 온 화가 제임스 휘슬러와 영국의 저명한 예술평론가 존 러스킨 사이에서 벌어진 소송이다.
 
 
 
러스킨을 격분하게 만든 그림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1877년 러스킨은 당시 새로 문을 연 런던의 그로브너화랑의 개관 전시회를 관람했다. 마침 거기에는 전통화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최고 왕립예술원(Royal Academy) 하계전시회에서 탈락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왕립예술원 하계전시회에서 탈락한 작품들은 전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삼류 화가들의 것이었다. 거기서 러스킨은 라파엘전파 소속 무명의 신예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 작품에 매혹되고 말았다. 러스킨은 당시 막 시작되고 있던 라파엘전파가 묘사하는 성경, 문학, 전설 등의 화재(畫材)를 담은 작품들이야말로 진짜 예술이라고 보았다. 러스킨은 평소에도 예술이란 오로지 신(神)의 선의의 상징인 자연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해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신의 진리를 깨닫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새로 발견한 걸작에 놀라고 있던 러스킨의 눈에 휘슬러의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추락하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The Falling Rocket)’이란 제목의 그림이 들어왔다. 그 그림은 구도는커녕 제대로 형체도 그려지지 않았다. 러스킨의 눈에는 유치원생이 물감으로 장난을 치다만 듯한 작품으로 보였다. 제목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림에 무슨 음악을 나타내는 야상곡이라니,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믿는 예술을 모욕하는 듯한 작품에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날 대로 난 러스킨을 격분하게 만든 것은 그림 값이었다. 당시로는 엄청난 200기니(현재 가치로 1만5000파운드, 약 2400만원)라는 가격이었다. 그런데도 작품 크기는 60.3×46.6cm에 불과했다. 한국 인물화 호수로 치면 10호에 해당한다. 제대로 정성과 시간을 들여 정밀하게 그린 그림도 아니고 그냥 멋대로 화폭에 물감을 칠한 듯한 그림에 그런 거액을 요구하다니 이건 사기라고 느꼈다.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붙이면 대중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사기술이라고 믿었다. 휘슬러 정도의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의 그림에 매기는 ‘정당한’ 가격의 서너 배에 해당하는 가격을 붙여 놓았으니 러스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러스킨은 나중에 당시를 회상하는 말에서 자신에 대한 도전 같은 그림, 심지어는 자신과 전통회화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느껴졌다고 했다.
 
 
 
비평과 비난 사이
 
그래서 러스킨은 자신의 글에서 “현대 화단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어느 정도의 기행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발칙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쓸데없이 불완전함을 마음껏 즐긴다”라고 휘슬러를 은근히 비난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휘슬러의 그림을 전시한 화상은 그림 수집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 사기꾼(willful imposture)’인 휘슬러의 작품을 전시하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는 유명한 문구 “나는 과거에도 코크니(동부 런던의 우범지대)의 철면피들을 보고 듣고 했지만, 그러나 한 어릿광대가 대중들의 얼굴에 물감 한 바가지를 퍼부어 놓고 200기니를 요구한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I have seen, and heard, much of Cockney impudence before now; but never expected to hear a coxcomb ask two hundred guineas for flinging a pot of paint in the public’s face)”라는 혹평까지 했다.
사실 러스킨이 템스강 위에서 벌어진 불꽃놀이를 현대 추상화와 전통의 구상화 중간지점에서 그린 듯한 휘슬러의 그림에 왜 그렇게까지 개인적인 모욕을 느낄 정도로 감정이입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러스킨은 휘슬러의 그 문제의 그림보다 훨씬 추상적인 조지프 터너의 작품도 지극히 호평을 한 바 있었다. 옥스퍼드대를 막 졸업하고 24살에 시작한 그를 저명한 예술비평가로 만든 운명의 대작 ‘현대 화가(Modern Painters)’ 5권의 초판 서문에서 벌써 터너를 호평했었다. 그 책에서 당시 화단의 젊은 화가들의 풍경화가 과거의 대가들 작품보다 더 우수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휘슬러의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추락하는 불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러스킨의 비판에 충분히 공감이 갈 정도로 휘슬러의 작품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러스킨의 가혹한 비평은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가혹한 비평을 넘어서서 문제가 커졌다. 러스킨이 자신의 작품만을 혹평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자질까지도 의심했다고 휘슬러가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러스킨도 단순히 휘슬러의 작품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태가 희대의 사기꾼 같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단어는 어릿광대라고 했지만 사실은 사기꾼이라는 말이었다. 그림 같지도 않은 그림을 비싸게 팔아 자신의 이름도 높이고 돈도 버는 사기꾼 말이다. 그런 비난을 간파한 휘슬러는 도저히 참고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4년 전에도 휘슬러의 작품을 두고 ‘제대로 미술 수업도 받지 않은 듯한 작품을 내놓는다’고 현역 화가에게는 좀 심할 정도의 비판을 했는데 그때는 참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기꾼이라는 단어에 휘슬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휘슬러의 노이즈 마케팅?
 
그러나 둘의 소송을 연구한 후대 전문가 일부는 휘슬러가 당시 영국 사회에서 ‘저명한 예술평론가(eminent art critic)’라고 불리던 러스킨에게 대든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분석한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소위 말하는 ‘언론의 나쁜 관심이라는 것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bad publicity)’라는 말을 실현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휘슬러는 소송으로 비록 파산을 해서 오랫동안 고통받았지만 나중에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이런 개연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작품이 팔리지 않는 무명화가임에도 생활은 유명화가만큼 사치스럽게 하던 휘슬러는 소송 전에도 이미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 거기에다 소송으로 그림도 안 팔리고 소송 비용도 갚지 못해 결국 빚쟁이를 피해 베네치아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와서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유명인사 취급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러스킨은 몰라도 최소한 휘슬러는 소송에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어찌 되었건 러스킨은 당시 대단한 유명인사였다. 그의 말 한마디에 한 예술가의 출세와 몰락이 오고 갈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휘슬러가 활동하던 시기는 대영제국이 산업혁명으로 한창 국부가 쌓이고 있던 때였다. 세계 각처에서 실려 들어온 원자재를 원료로 한 공산품 생산과 유통으로 영국 중산층은 부를 쌓았다. 해서 프티부르주아지라고 불리던 이들 소자본가들은 과거에는 왕실, 귀족, 교회만이 가질 수 있었던 예술품, 특히 초상화를 비롯한 미술품 수집에 한창 열을 내고 있었다.
예술품 감별 능력이 없던 이들은 당시 새로 탄생한 직업인 소수의 예술품 비평가들의 의견에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는 비평가들이 갑 중에서도 슈퍼 갑이었다. 비평가들의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기도 하고 형편없는 삼류화가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가와 비평가들 사이는 좋을 때는 한없이 좋지만 나쁠 때는 적도 그런 적이 없는 사이였다. 더군다나 영국 예술품 수집가들은 이제는 과거의 유럽 예술,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예술품 중심에서 차츰 벗어나 영국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수집가들은 영국 비평가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던 때였다. 이때 나온 영국 미술 작품들이 현재 영국이 가장 자랑하는 예술품들이다. 지금 영국인들이 국민화가라고 부르는 존 컨스터블, 토머스 게인즈버러,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등이 그런 화가였다.
 
러스킨은 특히 지식인층에서 추종자가 많았기에 더욱 영국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러스킨은 워낙 자아가 강해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이 뱉은 말을 절대 주워담지 않기로 유명했다. 자신의 주장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발언 직후에 밝혀져도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방면의 권위자로 선지자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또 자신의 영향력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런 노력만이 세상을 구한다는 일종의 구세주 신드롬에 빠져 있었다.
그에 비해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나 탐미주의 운동(Aesthetic Movement)을 주도하고 있었다. 탐미주의 운동은 예술은 정치와 사회적 목적보다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존재 이유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예술지상주의(art for art’s sake)다. 해서 작품은 색상, 구도, 기술에 더욱 중요한 방점을 찍어야지 프랑스의 밀레 같이 계몽주의에 경도되어 농민들의 일상을 표현하기 위한 예술품은 예술품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해서 휘슬러는 자신의 작품 제목에 어떤 특정의 그림 소재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추상적인 의미를 붙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교향곡(Symphony), 화성곡(Harmony), 야상곡(Nocturne), 변주곡(Variation), 편곡(Arragement) 등 그림의 소재와는 상관없는 추상적인 음악 단어들이 주로 제목에 들어갔다. 또 소재의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그림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색상, 구도, 물감 표피 등에 중점을 두었다. 당시 유럽을 강타하고 있던 일본풍(Japonisme)도 휘슬러를 비롯한 탐미주의 운동 화가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풍조는 단 회화뿐만이 아니라 조각, 공예, 벽지, 실내장식품, 심지어는 정원 디자인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예술과 공예 운동(The Arts and Crafts Movement)과 아르누보(Art Nouveau)라는 예술 풍조가 서구 예술의 한 장르가 되게 만들었다.
 
 
 
예술비평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이렇게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하는, 한 시대를 분명 앞서가는 휘슬러에게 러스킨은 진정한 예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설익은 인문학적 지식만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오만한 학자에 불과했다. 러스킨이 무지한 추종자들의 환호와 예술적 가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단순히 투자 목적에 눈이 먼 무지한 소자본가들의 추종에 우쭐해 한다고 믿었다.
사실 소송은 러스킨의 건강 문제로 상당히 지연되었다. 러스킨은 자신이 호평해서 명성을 얻은 라파엘전파의 화가 중 대표인 에드워드 번 존스를 대리인으로 지명하고 당시 검찰총장을 자신의 변호사로 선임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 당시는 현직 검찰총장도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휘슬러는 동료화가들을 증인으로 불러 재판에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당시 영국 여론은 휘슬러에게 거의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 동료 작가들은 휘슬러의 작품을 좋게 보기만 해도 자신의 명성에 해가 갈까 걱정들을 했다. 결국 휘슬러는 믿을 만한 명성을 가진 화가 증인을 재판에 동원할 수가 없었다.
이 재판에 대한 영국 사회의 관심은 당연히 뜨거웠다. 과연 비평가들의 예술비평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고 예술지상주의는 과연 얼마나 신성불가침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언론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번 존스의 증언은 중립적인 입장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번 존스는 “휘슬러의 작품은 분명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못 미친다. 구도가 불완전하다. 구도는 색상만큼이나 중요하다”라고 증언했다.
재판정에서 휘슬러의 발언은 거의 연설이었다. 말을 돌려 하면서 법정 내 청중들의 박수까지 받으며 재판을 즐기는 듯했다. 러스킨의 변호사가 작품을 ‘해치우는 데(knock off)’라는 모욕적인 단어를 쓰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렸냐”고 휘슬러에게 물었다. 휘슬러의 작품이 전혀 공들이지 않고 장난치듯이 그렸다는 인상을 재판장과 배심원들에게 주려는 의도였다. 겨우 이틀의 작업의 대가가 200기니라는 엄청난 금액이냐고 다시 묻자 휘슬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그 금액을 부른 이유는 그 작품에 내가 일생을 걸쳐 체득한 모든 지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No, I ask it for the knowledge I have gained in the work of a lifetime.)”
 
 
 
“예술은 기술보다 감성”
 
판사는 이틀에 걸친 재판 뒤 2000파운드(현재 가치로 14만파운드, 약 2억3000만원)의 손해배상과 소송비용 청구 재판에서 단지 1파딩을 러스킨이 휘슬러에게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1파딩은 현재 가치로 7펜스(약 112원)에 불과하다. 법정비용은 양측이 반반 부담하라고 했다. 휘슬러는 소송을 이기고도 법정비용과 변호사 수임료를 감당하지 못해 당시 갖고 있던 대저택과 작품을 모두 팔았으나 결국 빚을 다 갚지 못해 파산하고 말았다. 결국 영국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베네치아로 떠났다. 러스킨 또한 심각한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모든 공직에서 사임하고 말았다. 경솔한 말과 글로 소송에 휘말린 탓으로 당시까지 받고 있던 존경으로부터 멀어졌다. 명예로운 옥스퍼드대학교의 슬레이드 특별교수직마저 사임했는데, 그는 사임의 변으로 “내 자신의 판단을 표현할 방법을 영국 법이 막는 한 나는 이 직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이는 예술에 대한 자유로운 평론을 보호하지 않는 영국 법정을 비난하는 논지였다.
겨우 이틀에 걸친 재판이었지만 이 소송은 두 사람의 일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영국 예술계도 배운 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이 재판 이후의 삶이 결코 그전같이 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두고두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때부터 러스킨은 현대예술 풍조에 시비를 거는 구닥다리 평론가로 비치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의 철학을 옹고집으로 주장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러스킨으로서는 대단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러스킨은 사실 유럽 화단에 당시 불고 있던 현대미술 사조를 일찍 수용했다. 기존의 전통적 화풍을 깨려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대다수의 평론가들과 일반인들이 비난할 때 용감하게 앞장서 막아 주는 몇 안 되는 평론가였다. 그런 그가 왜 휘슬러의 작품을 그런 식으로 심하게 비난했는지에 대한 후대의 분석은 분분하다.
그에 비해 휘슬러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화를 일찍 시도한 시대를 앞선 화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마르셀 뒤샹과 살바도르 달리에게 영감을 준 선배 화가라고까지 평가받고 있다.
이 재판은 이후 영국 예술계에 창조와 평론에 대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영국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와 예술가·평론가들의 창작의 자유와 역할에 대한 논쟁의 계기를 만들었다.
결국 휘슬러가 소송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러스킨에게 승리한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정확하게 대상을 묘사하는 사실화가 회화의 주를 이루던 화단에 예술가의 기술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이 금자탑 같은 진실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일러 세계적 미술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19세기가 저물게 만들었다(as the nineteenth century drew to a close)”라고 했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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