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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천년의 고뇌

hherald 2023.12.04 16:45 조회 수 : 1067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천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고민한 것에 빛을 보이거나 그 고민이 삶을 윤택하게 할 순 없습니다. 삶에 유익 되지 않는 고민을 왜 하는 걸까요? 더 깊은 인생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게 됩니다. 오른쪽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왼쪽 길이 더 좋을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고민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그저 걱정만 하게 됩니다. 걱정은 얕은 물가와 같습니다. 깊은 바다로 들어가면 오히려 파도가 잔잔합니다. 그 과정까지 들어가기까지는 거센 파도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합니다. 고뇌의 결과는 더 나은 무엇인가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고뇌의 과정까지 가지 못한 채 걱정만 합니다. 걱정은 얕은 물가에서 몰아치는 파도와 싸우는 과정일 뿐입니다. 걱정은 습관이 됩니다. 어떤 소식을 들으면 먼저 걱정부터 합니다. 걱정이 습관이 된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걱정으로 몰아갑니다. 걱정의 파도를 넘어 고뇌의 과정으로 나아간다면 더 깊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보물창고를 만나게 됩니다.

 

인간은 고뇌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뇌하는 인간이 참 인간임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습니다. 고뇌하지 않는 사람과 고뇌하는 사람은 실상 삶의 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고뇌의 방향성입니다. 닫힌 고뇌를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기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기’나라 사람 중에 하늘이 무너질까 봐 음식을 먹지도 못하며 잠을 자지도 못하고 근심했다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모든 것에 전문가가 되어 있는 듯합니다. 정치 이야기를 할 때는 정치 전문가이며, 교육 이야기할 때면 교육 전문가이며, 경제 이야기할 때면 경제 전문가이며, 연예 이야기를 할 때면 그것에 전문가가 됩니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소리가 높아집니다.

 

한 유명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겠기에 저녁 시간이 되기 직전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먹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식당의 모든 자리는 꽉 차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습관적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반주를 마시면서 서서히 이야기의 모터를 풀가동시켰습니다. 많은 테이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처음에는 소곤소곤 예의를 갖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테이블마다 볼륨이 높아졌습니다. 이런저런 소리가 혼합되어서 들려오는 소리 중에 웃지 않을 수 없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어느 테이블인지는 모르지만 한 남성이 '난 십일조 안 해!'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알 순 없습니다. 퇴근 후에 맛난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시면서 속에 있는 소리를 크게 내뱉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고뇌를 싫어합니다. 낭만 철학이 있을 때는 스스로 고민하는 존재임을 증명해 보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긴 문자를 읽는 조차도 불편하기에 짧은 문자를 더 줄일 뿐 아니라 이모티콘으로 마음을 표출하기도 하고 타인이 알 수 없는 초간편 줄임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 줄을 읽기에 고뇌스러운 현세대는 속도에 민감합니다.

 

2006년에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실상 생각에 속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은 언제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갈지라도 생각은 정속으로, 혹은 느리게 움직이기를 원했습니다.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는 이제 초민감 시대로 발전했습니다. 기다림은 이제 아름다움의 미학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기다림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초간편 앱으로 주문을 하거나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음식을 주문하는 시대입니다. 숍에 가서 물건을 고르기만 하고 구매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해 있습니다. 일단 주문해서 입어보고 만져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반품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건 구매하기 위해 고뇌하지 않아도 됩니다. 초고속의 선 구매, 후 반품하면 됩니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행동하기에 내 존재를 느끼는 시대입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활성화로 초 단위로 답을 보내지 않으면 불안한 시대입니다. 생각할 시간, 고뇌의 시간을 주지 않는 시대입니다. 물론 편리함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함의 그림자는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한때는 책을 많이 읽고 빨리 읽는 것을 선호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의 큰 기쁨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는 것이 속독보다 더 많은 유익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살이는 걱정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걱정의 파도를 넘어서서 더 깊은 바라로 나아가는 고뇌하는 인간, 적어도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걸어온 길을 볼 수 있을 때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시간은 현재의 시간뿐입니다.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은 자기 성찰입니다. 과거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살아야 할 현실 세계에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현실을 살면서 인간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과거에 집착하여 과거적 현실을 살든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미래적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걱정의 작은 파도를 넘어 깊음의 바다로 나아 갈 수 있는 고뇌는 깊은 바다에 숨겨진 보물 상자를 열 수 있는 선물입니다.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천년의 고뇌를 품고 사는 것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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