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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우리네 인생에서 빨리 하면 할수록 좋은 말 딱 세 가지만 들라면 ‘사랑한다, 모른다, 미안하다’가 아닐까 싶다. 꼭 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미루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는 말들이다. 필자는 7남매 중 막내로 어머니가 42살에 늦게 본 자식이다. 그런 막내로서 어머니 생전에 “어메요! 사랑해!”라는 말을 못 해 드렸다. 그래서인지 내 자식들에게나마 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른다’는 말 역시 절대 하기 쉬운 말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모른다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듯한 기분 때문에 무엇이든 아는 척을 한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일에 대해 단호하고 분명하게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용감하게 보인다.
   
   그러나 ‘사랑한다’ ‘모른다’보다도 더 하기 어려운 말이 ‘미안하다’라는 사과의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과 중에도 가장 하기 어려운 사과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사과이다. 사과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으나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직무를 대표해서 하는 사과는 개인의 사과보다 더 어렵다.
   
   더 나아가 국가를 대표해서 말해야 하는 정치인, 특히 국가수반으로서의 사과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가적 이해득실을 좌고우면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사과를 역대 영국 총리는 언제, 왜 했을까. 영국 최고지도자의 사과를 살펴보면 영국 현대사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영국 총리가 한 9대 사과를 살펴보자.
   
   
   아일랜드를 향한 3번의 사과
   
   우선 영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속국으로 있었던 이웃 아일랜드에 대한 사과다. 양국의 복잡한 관계 때문인지 아일랜드 관련 사과가 3개나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과는 아일랜드의 대기근과 관계된 것이었다. 1997년 6월 2일 취임 한 달밖에 안 된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매년 열리는 대기근 추모음악제에 참석해 1800년대 중반에 일어난 아일랜드 대기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1만5000명의 아일랜드 청중 앞에 선 블레어는 “당시 감자 추수 흉작이 대기근으로 번지는 걸 가만히 지켜본 런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국민(아일랜드인)을 버렸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우리는 절대 그 끔찍한 일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생긴 수많은 사람의 죽음은 오늘날까지 양국 모두에 고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블레어의 솔직한 사과는 아일랜드인의 마음에 남아 있던 역사의 응어리를 푸는 데 일조했다. 아일랜드의 유명 연극배우 가브리엘 바이른이 대신 읽은 편지에서도 블레어는 “세계에서 가장 부국이고 강국인 한 부분에서 100만명이 희생된 일은 우리가 지금도 볼 수 있듯이 아직도 고통을 일으키고 있다”고 솔직해 말해 아일랜드인들의 공감을 불러왔다. 아일랜드 존 브루턴 당시 총리도 “블레어 총리 성명이 과거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어 미래를 위한 치유제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환영했다.
   
   블레어의 당시 연설은 북아일랜드에 평화를 가져온 1998년 4월 10월 성금요일 평화협정(Good Friday Agreement)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블레어의 사과를 받아들인 아일랜드인 사이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가장 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라는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또 블레어의 사과가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희망과 연결되어 기쁘다”라는 반응도 나왔다.
   
   따지고 보면 영국인들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감정은 유감을 떠나 원한에 가깝다. 대기근 전인 1800년대 초 영국 인구(1600만명)와 아일랜드 인구(1100만명)는 국토 크기(영국 24만3610㎢, 아일랜드 7만273㎢)를 감안하면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대기근의 비극을 거치면서 아일랜드인 100만~200만명이 아사하고, 100만~200만명이 영국을 비롯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인구가 3분의 1가량 줄었다. 그 결과 지금은 아일랜드 인구 490만명, 영국 인구 6670만명으로 엄청난 차이가 생겼다. 32% 정도 차이 났던 인구가 대기근을 겪으면서 13.6배 차로 벌어졌으니 아일랜드인의 원한의 깊이를 알 만도 하다. 이제 아일랜드의 국세는 절대 영국을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됐다.
   
   블레어 총리는 아일랜드와 관련되어 또 다른 사과도 했다. 2005년 2월9일 이른바 ‘길포드 4인 재판의 오심(miscarriage of justice)’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한 것이다. 26년 전인 1974년 10월 런던 남부 도시 길포드의 한 펍에서 북아일랜드독립군(IRA) 테러리스트들이 터뜨린 폭탄으로 1명의 시민과 4명의 군인이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용의자로 4명이 체포되어 1975년 10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지만 14년 뒤인 1989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수감자들이 재심을 받고 무죄로 풀려났다. 영국 법원이 큰 오심을 저지른 것이다. 이에 대해 블레어 총리는 “오심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아주 큰 유감의 문제입니다”로 사과를 시작했다. 블레어는 “나는 그들이 그런 큰 시련과 불의의 대상이 된 것을 정말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사과를 합니다. 그들은 완벽하게, 그리고 공식적인 사면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하원에서 진지하게 사과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아일랜드 관련 사과를 한 적이 있다. 2012년 12월 12일 북아일랜드 변호사 패트릭 피누케인의 살해사건에 영국 정부 관할인 북아일랜드 정부기관이 연루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인권변호사로 유명했던 피누케인 변호사는 1989년 가족들과 식사 도중 침입한 왕당파(loyalist) 테러리스트에게 11발의 총격을 받고 살해되었다. 문제는 테러리스트가 속한 단체 얼스터방위협회(UDA·Ulster Defence Association)가 당시 북아일랜드 지역 치안 유지를 하는 영국군 얼스터방위연대(Ulster Defence Regiment)와 연계된 공식 단체였다는 데 있었다. 북아일랜드 정부는 자신들에게 건건이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덤벼드는 피누케인 변호사가 불편했을 수도 있었다. UDA의 변호사 살해가 북아일랜드 정부와의 직접적인 공모 결과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묵인했을 수는 있었다는 사실을 캐머런 총리가 23년 뒤에 공식적으로 자인한 셈이다. 캐머런은 북아일랜드 ‘정부의 공모(the extent of state collusion)’라고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깊은 사과(deeply sorry)’를 했다.
   
   
   인도 암리차르 대학살 사건
   
   영국의 가장 큰 식민지였고 영국 내 이민자 숫자가 가장 많은 인도인과 관련된 사과도 있었다. 2013년 2월 캐머런 당시 총리는 영국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919년 인도 북부 펀자브주의 암리차르에서 벌어진 대학살 사건 현장 추모비 앞에서 희생자들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그 자리에서 캐머런은 “영국 역사에서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깊은 수치를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는 방명록에 “우리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라고 썼다. 암리차르 사건은 1919년 4월 13일 암리차르시에서 열린 간디 주도의 비폭력 독립 운동에 참가한 인도 시민들에 대한 영국군의 무차별 발포가 부른 참사였다. 그 결과 인도인 379명(인도 측 주장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영국의 보도 관제로 사건 발생 후 4개월간 사건이 은폐되기도 했다. 결국 목숨을 건 인도 국민의화파의 노력으로 영국 본토 언론 보도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면서 진상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영국은 한 번도 공식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다만 1997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일 먼저 현장을 방문해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들의 과거에 어려운 사건들이 있었음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러나 역사는 다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역사에는 아주 슬픈 때도 있었고 아주 기쁜 때도 있었다. 우리는 슬픔을 통해 배워야 하고 즐거움 위에 건설해야 한다.”
   
   테리사 메이 총리도 2019년 4월 암리차르 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수치스러운 상처(shameful scar)’라면서 하원에서 사과했다. 메이 총리는 “우리는 사건과 고통에 대해 깊은 후회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인 노동당 당수는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다”라면서 “애매모호하지 않은 완벽하고 분명한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다.
   
   
   스태퍼드셔 병원 스캔들
   
   영국인들이 자신들과 직접 관련된 일 중 가장 치욕스럽게 여기는 사건은 영국 중부 스태퍼드셔 병원 스캔들이다. 2000년대 후반 이 병원에서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응급실 치사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2007년 한 환자의 딸이 자신의 어머니가 사망한 연유가 석연치 않자 ‘NHS(영국 건강보험)를 고치자(Cure the NHS)’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진상이 밝혀졌는데, 매년 500명에서 1200명의 환자가 병원의 직무유기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병원이 예산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기 위해 직원을 무리하게 줄인 탓이었다.
   
   2013년에 나온 이 스캔들 보고서를 하원에 보고한 보수당 소속 캐머런 총리는 우선 전임 고든 브라운 노동당 정권 총리가 사건이 터지자마자 바로 솔직한 사과를 하면서 신속하게 조사위원회를 결성한 것을 칭찬했다. 2009년 결성된 독립조사위원회가 4년간 조사한 결과 나온 보고서는 ‘이 사태에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고치기 전에는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병원 경영진은 환자를 보살피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일이라고 여기고 자신들은 오로지 돈과 숫자에만 관심을 가졌다’고도 했다.
   
   병원 경영진이 소극적인 자세와 안주로 일관했다는 조사 보고서 내용을 캐머런은 일일이 직접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더 나아가 이런 고통을 받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한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제도적인 학대가 방지되거나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 데 대해서도 사과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물론 우리 정부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유감 정도가 아니라 정식 사과였다.
   
   
   축구장 압사사건과 은폐공작
   
   영국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건과 관련된 뼈 아픈 사과도 있었다. 캐머런 총리가 2012년 9월 12일 하원에서 힐스버러 축구장 압사사건과 은폐공작에 대해 사과한 일이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중부 셰필드 힐스버러 축구장에서 압사사고가 나면서 리버풀 축구클럽 팬 96명이 사망하고 766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고는 입장권 없이 몰려든 리버풀 팬들을 현장 경찰서장이 아무 생각 없이 입장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줘 발생한 사고였다. 구장 안으로 밀고 들어온 팬들이 이미 입장해 있던 팬들을 담벼락으로 밀면서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두고 나중에 조사보고서는 ‘파멸적인 실수(the catastrophic mistakes)’라고 칭했다. 하지만 당초 셰필드 경찰은 ‘술에 취한 리버풀 팬들의 책임’이라고 덮어씌우면서 은폐했다. 결국 사망한 리버풀 팬의 유족들이 23년이나 걸려 정부 조사단을 구성하게 하여 진상을 밝혀냈다. 조사단은 45만쪽의 자료를 18개월간 뒤져 결국 정부 책임을 묻는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보고서가 나온 후 캐머런 총리는 ‘술에 취해 질서를 어겨서 사고가 났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억울한 리버풀 팬의 가족들에게 ‘깊은 사과(profound apology)’를 했다.
   
   
   ‘홈 칠드런’ 아동학대사건
   
   2010년 2월 고든 브라운 총리가 식민지로 아이들을 보낸 ‘홈 칠드런(Home Children)’이란 아동 이민 프로그램에 대해 사과한 일도 있었다. 영국은 1869년부터 1970년대까지 15만여명의 가난한 집 어린이들을 호주를 비롯해 캐나다, 뉴질랜드와 남아공으로 이민시켰는데, 이민 간 아동들이 학대당한 사실이 1980년대 밝혀졌다. 결국 2009년 호주 정부가 사과한 데 이어 2010년 브라운 총리가 이민 아동들의 가족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당시 이민 아동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신세계에 가서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보냈지만 정부에 배신을 당한 셈이다. 브라운 총리는 사과 후 600만파운드를 들여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브라운 총리는 “우리는 가장 취약한 나이에 (아이들이) 멀리 보내지게 허용한 일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이 나라가 그들을 돌보기는커녕 멀리 보내 버린 데 대해 너무나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암호해독가의 자살과 명예회복
   
   2009년 9월 고든 브라운 총리가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컴퓨터 기술자이자 암호해독가로 활약한 앨런 튜링의 자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사과한 일도 있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관련 기사에서 브라운 총리의 사과를 ‘명확한 사과(an unequivocal apology)’라고 묘사했다.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1950년대 튜링은 동성애 때문에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대신 여성 호르몬을 이용한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다. 튜링은 더 이상 정부 암호해독센터에서 일할 수 없다는 사실과 세상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 실망해 1954년 자살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 총리실 웹사이트에 튜링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청원이 3만개 이상 올라오자 브라운 총리는 정부 이름으로 사과 성명문을 발표했다. 브라운 총리는 55년 전에 자살한 튜링에 대한 영국 정부의 처분은 “끔찍하고(horrifying) 너무나도 부당했고(utterly unfair) 비인간적(inhumanly)이었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가 가장 악마 같은 독재자와 싸울 때 큰 역할을 한 뛰어난 수학자에게 아주 큰 빚을 졌다. 그의 뛰어난 기여가 없었다면 2차대전의 역사는 아주 크게 달라졌을 수 있었다”면서 “공식 사과를 할 수 있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브라운 총리는 또 “우리들은 정말 미안하다. 당신은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수천 명의 동성애자가 법에 의해 끔찍한 취급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우리가 소름끼치는(appalling) 방식으로 동성애자를 취급한 일에 대해 사과한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200년 전 노예 흑역사의 기억
   
   2007년 3월 토니 블레어 총리는 노예금지법 제정 200주년을 맞아 흑역사에 대해 나름대로의 사과를 했다. 노예무역에 대해 ‘깊은 슬픔(deep sorrow)’을 느낀다고 했다가 “정식 사과(full apology)를 안 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다음해인 2008년 블레어는 “나는 이미 유감(sorry)이라고 했지만 다시 한번 더 말한다”라면서 가나 대통령을 만난 김에 정식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면서 이를 규탄하고 그것이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란 걸 말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역대 영국 총리들은 때가 되면 자신들의 흑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해왔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우선 아무리 오래된 사건이라도 해야 할 사과는 반드시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내일의 비극을 면할 수 없다. 영국 역사는 진정한 사과를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영국 총리들이 담당 장관 뒤에 숨지 않고 직접 나서 사과를 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한 치졸한 변명이나 책임회피를 위한 애매모호한 말이 아니라 진정성이 희생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분명하게 말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국 역사에서 배울 것이 또 하나 있다. 사과가 사과받을 당사자의 노력으로 성사된 때도 적지 않았다는 유감스러운 사실 말이다. 힐스버러 축구장 참사사건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리버풀 축구팬 유족들은 23년 동안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5명의 총리를 움직인 끝에 진상을 밝혀 결국 총리의 사과를 받아냈다. 영국 총리 누군가가 지금의 끔찍한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도 훗날 사과할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유럽문화탐사(2015)
번역: 영국인 발견(2010),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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