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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사람은 누구라도 그가 살아온 흔적을 남깁니다. 좋은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어둠의 흔적을 남기는 이들도 있게 됩니다. 땅을 딛고 살았던 발자취가 시대를 움직이는 흔적이 되기도 합니다. 내 발자취가 가까운 사람들의 울타리를 넘어 어느 한 지역에만 남겨지는 차원을 넘어 인류 세계문화에 기록으로 남겨진다는 것은 그의 생이 한 시대에 거룩한 획을 그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계 속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실상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인류가 똑똑하다 할지라도 발자국 없이는 결코 한 걸음조차 앞으로 대 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족적이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더 나은 삶으로 도약하는 결단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발자국을 심판대에 올려놓고 난도질하기도 하고 맹목적인 신앙처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1944 – 2012) 박사는 그의 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 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 받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였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으로만 만났던 강영우 박사님의 아름다운 발자취가 그리워집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흔적은 우연히 남겨지지 않습니다. 자기 생의 명예를 걸지 않으면 결코 남겨지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흔적의 발자국 입니다. 선진국이란 단지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 조상들의 발자취들이 모여야 만이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에는 많은 발자국이 있습니다. 지역마다 그 발자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성숙한 인생으로 완성되어진다는 것은 그러한 발자국을 찾아서 자신의 롤모델을 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영국에서 찾아낸 내 인생의 롤모델의 발자국은 존 번연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지역이 있다면 그가 이 땅에 발부치고 살았고, 눈물과 땀이 젖어 있는 동네인 베드포드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 땅을 딛고 그가 걸음직했을 법한 길을 걸으며 그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국의 한 작은 도시인 배드포드에는 그의 동상만 남겨져 있습니다. 무거운 땜질 기구를 둘러매고 동네마다 들려 땀에 젖은 망치질과 함께 외쳤던 그의 복음은 잠시 꽃을 피우는 듯 했으나 시들어 버렸고, 지금은 박물관에 박제처럼 숨죽이고 있게 됩니다. 그가 받았던 세례 터에서 한 없이 울었습니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지금 그곳은 조정 경기를 위한 시설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결단하고 주님과 연합하기 위한 증표로 세례를 받고 그의 걸음걸음이 보석이 되어 전 세계를 뒤 흔들어 놓은 그 역사적인 현장은 보존되지 않고 작은 팻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천로역정을 읽고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책을 기록한 존 번연의 마을을 거닐어 보는 것이 내 인생의 소중한 꿈이었습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몇 차례 방문을 하였고, 그곳에 사랑하는 제자이면서 조카가 정착을 하고 있어서 내 인생은 마치 그 땅에서 존 번연과 함께 살고 있는 듯 한 감흥을 받곤 합니다. 작은 카페에서 낯선 이들과 만남이 있었을 때 이곳에 온 목적을 어설픈 영어로 말했을 때 그들은 존 번연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흔적들, 그의 눈물과 땀이 젖은 감옥은 이제 길거리 보도 불록에 박혀져 있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발고 지나가는 찾기 어려운 푯말로 대신하고 있게 됩니다. 

 

인생은 누군가의 흔적,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암흑과 같은 인생의 앞날을 비춰주는 작은 빛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초롱불, 작은 촛불에 불과하지만 그 빛을 만들기 위해 그의 생애 전부를 바쳐 헌신한 결과입니다. 빛의 홍수 시대인 현대는 작은 촛불 하나의 소중함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책의 홍수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책 한권에 담겨진 깊은 의미를 헤아릴 수 없게 됩니다. 책 한권 받아 들고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책장을 넘겨본 사람이 관연 몇이나 될까? 홍수가 나면 물은 넘쳐나지만 마실 물이 없어지는 것처럼 책의 홍수, 빛의 홍수 시대에가 마치 그러하다 느껴집니다. 사람을 사람 되게 고민하게 하고, 그렇게 살게 해 주도록 자극해 지고 지도해주는 인문학 보다는 현실의 만족을 위한 자극적이고 얄팍한 지식의 줄에 매어달린 시대를 한탄하며 배드포드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을 존 번연의 발자취, 그 길이 내 인생의 작은 빛이 되어줍니다.  

 

 

 

 

박심원 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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