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가 기억나시는지.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 구름 걷힌 하늘 하래 고요한 라인강 /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 저편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아가씨 /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
라인강을 끼고 전해지는 독일 전설을 하이네가 시로 쓰고 질허가 곡을 붙여 명가곡이 된 <로렐라이 언덕>. 로렐라이라는 처녀가 신의 없는 연인에게 절망하여 바다에 몸을 던진 후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여 조난시키는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바다 요정으로 변했다는 전설. 우리는 중학생 시절 음악 시간에 어딘지도 모르는 이국의 전설을 노래로 불렀다.
학창시절 이 노래를 배우면서 로렐라이를 독일 라인강에 있는 어느 아름다운 언덕으로 연상했다. 그리고 로렐라이라는 이름의 금발머리 소녀가 얼마나 예뻤길래 라인강을 지나는 배에 탄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 듯 모두 로렐라이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그 노래에 정신을 잃어 암초와 절벽에 부딪혀 라인강의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을까, 라며 순진하게 그 이국의 전설을 믿었다. 로렐라이는 무슨 한이 그리도 깊어 뱃사람을 수장시키는 물귀신이 되었을까 하는 일종의 납량특집 비극적 공포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로렐라이 언덕은 분명 운치 있고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직접 가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큰 기대를 하면 실망할 만큼 좀 썰렁한 곳이라고 한다. 절벽밖에 없어서 그렇다는데 기대를 갖지 않으면 경치는 그런대로 볼만하다고. 하지만 평범한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든 것은 역시 전설과 노래의 힘이다. 맛있는 이야기를 담아 놓으면 평범한 곳도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법칙을 로렐라이 언덕이 확실히 증명한다.
바로 이 로렐라이 언덕에 제주도 돌하르방 한 쌍이 세워졌다. 동공이 없이 불룩 튀어나온 눈, 싱긋 웃는 입, 크고 넓적한 코, 배 위에 얹어진 손... 제주도 특유의 석상이 지구 반대편 독일 로렐라이 언덕에 세워진 것을 계기로 한 쌍의 돌하르방이 앞으로 제주를 유럽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돌하르방은 최근 심심찮게 외국으로 진출하는데 중국,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이번이 여섯 번째라 한다.
문관과 무관, 한 쌍의 돌하르방은 학식과 무예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적 기능이 있다는데 로렐라이 언덕을 항해하는 배가 금발머리 소녀의 노래에 홀려 침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본다. 로렐라이 언덕은 해마다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개최되고 있다는데 이런 이야기를 만들면 우리도 많은 명소를 새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로렐라이 언덕의 돌하르방을 시작으로.
헤럴드 김종백
* 이 글은 2009년에 쓴 것인데 최근 방문한 이에 따르면 한 쌍의 돌하르방이 있는데 제주시와 로렐라이 시의 우호관계가 증진되기를 바라며 우정의 징표로 기증한다는 안내문(한국어와 독일어로 됨)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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